법원 "형법상 파괴 아냐, 개념 축소 필요"…유죄 인정하되 선처
법이 정한 '선고유예 기준' 넘어 문제…검찰·피고인 모두 항소
브라질 침수 스텔라배너호 선장 선고유예…'아차' 형량 실수
3년 전 브라질 해역에서 약 30만t의 철광석과 함께 침수된 스텔라배너(Stellar Banner)호를 이끈 선장에게 법원이 징역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유죄는 인정되지만 여러 정황상 선처하는 취지다.

그런데 형량 산정에 실수가 있었고 검찰은 종합적으로 상급심 판단을 다시 받겠다며 항소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31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4단독 이종광 부장판사는 지난 8일 한국인 12명과 필리핀인 9명이 타고 있던 선박을 파괴한 혐의(업무상 과실 선박파괴)로 재판에 넘겨진 심모(52)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는 2년이 지나면 형 선고의 효력을 잃게 하는(면소) 제도다.

현행법상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자격정지 또는 벌금형을 내릴 경우에만 선고유예가 가능하다.

그러나 징역 1년을 초과한 형의 선고유예 판결이 내려지자 검찰은 양형 부당과 법리 오해 등을 이유로 항소했다.

스텔라배너호 선장이었던 심씨는 2020년 2월 브라질 폰타 다 마데이라 항구에서 철광석 29만4천800t을 중국 칭다오 항구로 운송하던 중 계획 항로를 벗어나 사고를 냈고 선박은 끝내 침수됐다.

선원은 모두 다른 선박으로 옮겨져 인명피해는 없었다.

심씨는 사고 당시 출항 지연과 역조류 등으로 항로 진입이 지연되자 다음 만조 시각까지 기다리기 번거롭다는 이유로 계획 항로를 벗어나 최고속력인 12.3노트(시속 약 22.7㎞)로 항행하다 수중 사구를 들이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고로 선박 우현 외판에 약 25m의 구멍이 생겨 침수가 발생했고 배는 결국 폐선됐다.

재판부는 이씨에게 적용된 혐의와 관련해 그의 행위가 형법 제187조에서 정한 '파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형법 187조는 사람이 현존하는 기차, 자동차, 선박 또는 항공기를 전복, 매몰, 추락 또는 파괴할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재판부는 여기에서 '파괴'는 "교통기관으로서 기능·용법의 전부나 일부를 불가능하게 할 정도의 파손"을 의미한다는 대법원 판례를 언급하며 보험사 등과 상의해 경제적 이유로 선박을 자침시켰다는 해운회사 안전구조팀장 증언 등에 따라 이같이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또 "회사도 징계를 내리지 않았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 등의 사정에다가 21세기 최대 조선국인 대한민국에서 선박 '파괴' 개념에 대한 정의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다만 이 같은 법리 판단에도 불구하고 선고유예 조건에 어긋나는 형량 산정 실수로 인해 판결은 효력을 가질 수 없게 됐다.

또한 검찰뿐 아니라 심씨도 항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내년 2심에서 다시 유무죄를 다투게 됐다.

스텔라배너호는 폴라리스쉬핑 소유로, 이 회사는 2017년 3월 남대서양 해역에서 침몰해 선원 22명이 실종된 스텔라데이지호의 선사이기도 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