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중 참변 故임세원 교수 5주기 "정신병동에 아침 오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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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지기 백종우 교수 인터뷰…"'독일 병정'이었지만 환자에 살갑던 친구"
소송 끝 의사자 인정되자 펑펑 울어…"'정신건강은 국가 책임' 인식 필요" "별명이 '독일 병정'이었던 친구였어요.
꼼꼼하고 완벽주의자인 데다 무표정하고 입도 아주 무거운 친구였죠. 그런데 환자들한테는 그렇게 살가울 수가 없었던 의사였어요.
"
지난 29일 만난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5주기를 앞둔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떠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백 교수의 대학 동기인 임 교수(당시 47세)는 2018년 12월 31일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서 진료 도중 환자 박모(34)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세상을 떠났다.
당시 박씨의 공격을 피해 복도로 빠져나온 임 교수는 간호사 등 동료에게 "신고해! 도망가!"라고 외치며 피신시켰다.
임 교수는 간호사가 무사히 피했는지 확인하다 박씨의 흉기에 끝내 목숨을 잃었다.
임 교수는 생전 자신의 책에서 백 교수를 '평생의 동반자'로 칭했다.
28년 지기(知己)인 이들은 나란히 우울증과 트라우마 치료를 전공했고 2011년 한국형 표준 자살 예방 교육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를 함께 개발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죠. 사건 이틀 뒤 유족들에게서 '마음이 아픈 분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고인의 유지'라는 전화를 받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여기에 방향을 맞춰서 마땅히 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백 교수는 추모사업위원회 간사를 맡아 임 교수가 의사자(義死者)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발 벗고 뛰었다.
사망 1년 9개월 뒤인 2020년 9월 보건복지부는 소송 끝에 마침내 임 교수를 의사자로 인정했고 그제야 백 교수는 펑펑 울 수 있었다.
2019년 4월에는 안전한 진료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병원에 보안 인력 배치와 비상 경보장치 설치 등을 의무화한 이른바 '임세원법'(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폭행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 의료인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그러나 "갈 길은 여전히 멀다"는 게 백 교수의 얘기다.
임 교수가 숨진 지 4개월 뒤인 2019년 4월 조현병 환자인 안인득이 경남 진주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주민 5명을 흉기로 살해하고 17명을 다치게 하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졌다.
유족들의 국가배상 소송을 도왔던 백 교수는 "우리 사회가 비극을 막을 기회를 계속 놓치면서 올해도 잇따른 흉기난동으로 무고한 시민이 죽고 다쳐야 했다"며 "임 교수 살해범과 안인득, 그리고 '서현역 흉기 난동범' 최원종 모두 고립되고 방치된 중증 정신질환자였다"고 말했다.
"이런 사건들이 벌어지면 열심히 치료받고 노력하는 환자들이 '선생님, 저도 살인자가 될 수 있나요' 물어보곤 합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괴롭습니다.
이런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으려면 정신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이 시급합니다.
"
백 교수는 보호의무자가 아니라 국가의 판단으로 스스로나 타인을 다치게 할 우려가 큰 중증 정신질환자의 치료재활을 지원하는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도입을 주장한다.
그는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를 가족에게만 떠넘긴 결과 비극적 사고가 일어나고 편견과 혐오가 증폭되면서 다시 환자와 가족들이 숨어버리는 악순환의 늪에 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지낸 백 교수는 10대 학생이 SNS로 생중계하며 목숨을 끊은 사건, 잇따라 세상을 등진 교사들의 사례 등을 언급하며 "올 한 해가 대중의 주목을 받는 극단적 선택이 유난히 많았던 해였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특히 백 교수는 "2008년 10월 배우 최진실 씨가 사망한 다음 주에 우울증을 앓던 환자가 똑같은 방식으로 목숨을 끊었다.
처음으로 잃은 외래 환자였다"며 "고(故) 이선균 씨 사망의 충격이 '베르테르 효과'(모방 자살)를 불러오지 않도록 학계와 언론 모두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연예인과 정치인 등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수사 과정이 굉장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며 "사생활 노출을 막고 위험이 예상되는 피의자에게 경찰 내 심리 전문가를 지원하는 등 엄정한 범죄 수사와 별개로 인권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최근 인기를 끈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 대해 "간호사와 의사, 환자, 가족 모두가 주인공인 의미 있는 드라마"라고 호평했다.
그렇다면 실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올 수 있을까.
"핵가족화된 산업사회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무책임합니다.
정신건강을 국가의 책임으로 보고 환자들을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예산과 인력을 확충해 아픈 사람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치료받을 때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오지 않을까요?"
/연합뉴스
소송 끝 의사자 인정되자 펑펑 울어…"'정신건강은 국가 책임' 인식 필요" "별명이 '독일 병정'이었던 친구였어요.
꼼꼼하고 완벽주의자인 데다 무표정하고 입도 아주 무거운 친구였죠. 그런데 환자들한테는 그렇게 살가울 수가 없었던 의사였어요.
"
지난 29일 만난 백종우 경희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5주기를 앞둔 고(故) 임세원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떠올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백 교수의 대학 동기인 임 교수(당시 47세)는 2018년 12월 31일 서울 종로구 강북삼성병원에서 진료 도중 환자 박모(34)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세상을 떠났다.
당시 박씨의 공격을 피해 복도로 빠져나온 임 교수는 간호사 등 동료에게 "신고해! 도망가!"라고 외치며 피신시켰다.
임 교수는 간호사가 무사히 피했는지 확인하다 박씨의 흉기에 끝내 목숨을 잃었다.
임 교수는 생전 자신의 책에서 백 교수를 '평생의 동반자'로 칭했다.
28년 지기(知己)인 이들은 나란히 우울증과 트라우마 치료를 전공했고 2011년 한국형 표준 자살 예방 교육프로그램인 '보고 듣고 말하기'를 함께 개발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죠. 사건 이틀 뒤 유족들에게서 '마음이 아픈 분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쉽게 치료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고인의 유지'라는 전화를 받고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여기에 방향을 맞춰서 마땅히 할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백 교수는 추모사업위원회 간사를 맡아 임 교수가 의사자(義死者)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발 벗고 뛰었다.
사망 1년 9개월 뒤인 2020년 9월 보건복지부는 소송 끝에 마침내 임 교수를 의사자로 인정했고 그제야 백 교수는 펑펑 울 수 있었다.
2019년 4월에는 안전한 진료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병원에 보안 인력 배치와 비상 경보장치 설치 등을 의무화한 이른바 '임세원법'(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폭행에 대한 처벌도 강화해 의료인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도록 했다.
그러나 "갈 길은 여전히 멀다"는 게 백 교수의 얘기다.
임 교수가 숨진 지 4개월 뒤인 2019년 4월 조현병 환자인 안인득이 경남 진주에 있는 자신의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주민 5명을 흉기로 살해하고 17명을 다치게 하는 충격적 사건이 벌어졌다.
유족들의 국가배상 소송을 도왔던 백 교수는 "우리 사회가 비극을 막을 기회를 계속 놓치면서 올해도 잇따른 흉기난동으로 무고한 시민이 죽고 다쳐야 했다"며 "임 교수 살해범과 안인득, 그리고 '서현역 흉기 난동범' 최원종 모두 고립되고 방치된 중증 정신질환자였다"고 말했다.
"이런 사건들이 벌어지면 열심히 치료받고 노력하는 환자들이 '선생님, 저도 살인자가 될 수 있나요' 물어보곤 합니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괴롭습니다.
이런 사고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으려면 정신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할 수 있는 시스템이 시급합니다.
"
백 교수는 보호의무자가 아니라 국가의 판단으로 스스로나 타인을 다치게 할 우려가 큰 중증 정신질환자의 치료재활을 지원하는 '중증정신질환 국가책임제' 도입을 주장한다.
그는 "중증 정신질환자 관리를 가족에게만 떠넘긴 결과 비극적 사고가 일어나고 편견과 혐오가 증폭되면서 다시 환자와 가족들이 숨어버리는 악순환의 늪에 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앙자살예방센터장을 지낸 백 교수는 10대 학생이 SNS로 생중계하며 목숨을 끊은 사건, 잇따라 세상을 등진 교사들의 사례 등을 언급하며 "올 한 해가 대중의 주목을 받는 극단적 선택이 유난히 많았던 해였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특히 백 교수는 "2008년 10월 배우 최진실 씨가 사망한 다음 주에 우울증을 앓던 환자가 똑같은 방식으로 목숨을 끊었다.
처음으로 잃은 외래 환자였다"며 "고(故) 이선균 씨 사망의 충격이 '베르테르 효과'(모방 자살)를 불러오지 않도록 학계와 언론 모두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또 "연예인과 정치인 등 명예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수사 과정이 굉장한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며 "사생활 노출을 막고 위험이 예상되는 피의자에게 경찰 내 심리 전문가를 지원하는 등 엄정한 범죄 수사와 별개로 인권도 보호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최근 인기를 끈 넷플릭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에 대해 "간호사와 의사, 환자, 가족 모두가 주인공인 의미 있는 드라마"라고 호평했다.
그렇다면 실제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올 수 있을까.
"핵가족화된 산업사회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보는 것은 무책임합니다.
정신건강을 국가의 책임으로 보고 환자들을 언제든지 도와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예산과 인력을 확충해 아픈 사람들이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치료받을 때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오지 않을까요?"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