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호의 저작권 세상] 창작자의 꿈을 응원해줘야 하는 이유
여전히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고 즐거워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눈이 오면 다니기도 어렵고 교통사고의 위험도 있을 테지만, 우리는 눈 오는 성탄절을 운치 있고 낭만적이라 여긴다. 또 서울 을지로나 광화문 거리의 크리스마스 장식은 해가 갈수록 경쟁적으로 화려해진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예전에 거리를 가득 채웠던 캐럴은 점점 사라져갈 뿐 돌아올 기미가 없다.

누군가는 이를 저작권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저작권이 캐럴에 대해서만 엄격할 리 없고, 거리의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자체가 사라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캐럴 없는 크리스마스는 각종 차트에서도 확인되는데, 머라이어 캐리의 캐럴이 잠시 ‘역주행’을 하다가 사라지고 만다. 인기 가수라면 누구나 캐럴 음원을 내던 시기가 있었고, 한때 소속사 중심으로 모음앨범이 나오기도 했다. 극 중 노래 실력을 인정받은 배우나 위트 넘치는 코미디언들도 캐럴 부르기에 참여했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아이돌이 캐럴 음원을 내기도 했으나, 역시 캐럴을 구해내지 못했고 시장은 전반적으로 침체에 빠졌다. 냉정하게 따져보자면 캐럴이 사라진 것은 우리에게 낭만을 주거나 향수를 자극하는 데 실패해서다.

콘텐츠에는 트렌드가 있다. 지금은 캐럴이 진부한 것일 수 있지만 과거에는 시즌을 대표하는 콘텐츠였고, 어쩌면 언젠가 다시 유행할지 모른다. 이런 현상은 비단 캐럴에만 국한된 것은 아닌데, 캐럴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새겨야 하는 곳은 바로 K콘텐츠다. 아직은 더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매력적인 분야가 K콘텐츠라 해도 그 인기는 영원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지만, K콘텐츠를 떠받쳐온 것은 다름 아닌 다양성과 참신함이다. 그런데 현재는 ‘뜨는 장르’와 성공작의 아류들이 시장을 장악했다고 느낀다. 신인의 등장과 성장은 어려워지고, 플랫폼과 인기 작가가 구축한 세계관이 퍼지면서 재미있지만 어딘지 뻔한 콘텐츠들이 양산되고 있다. 물론 콘텐츠 산업계에 ‘성공하더니 변했다’는 비판만 가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글로벌 콘텐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많은 투자가 필요하고, 기껏 노력해서 만든 콘텐츠로 손해만 본다면 콘텐츠 재생산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다양성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을 창작하는 이들은 누구일까? 지금도 어려움을 각오하고 작가가 되기 위해 도전하는 이들이 있고, 이들은 기존 콘텐츠와 차별화된 작품을 쉼 없이 창작하고 있다. 이 중 극히 일부만 좋은 평가를 받고 안정적으로 다른 작품을 만들 기회를 얻지만, 이들의 계속된 도전이 없었다면 K콘텐츠가 누리는 현재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왜 하필 작가를 해서 생활고를 겪느냐고 말하지만,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들 역시 과거 생활고를 겪었다고 고백하는데도 똑같은 비판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겨울에는 캐럴’이라는 등식이 깨진 것처럼, 또 영원할 것 같았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인기가 시들해진 것처럼, K콘텐츠에 대한 수요나 애정도 사라지거나 식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용기를 갖고 어려움 속에서도 작가로서 꿈을 키우는 이들이 있다면 K콘텐츠는 희망적인 미래를 꿈꿀 수 있다.

우리는 스포츠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것이 국민에게 즐거움을 주고, 국위선양을 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창작자가 더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돕는 정책과 분위기가 마련돼야 한다. 무엇보다 창작자가 계속 창작을 이어갈 수 있도록 지원하고, 그들이 생활고나 질병에 시달릴 때 지원하는 체계를 촘촘하게 구성해야 한다. 국가가 이들을 돌봐야 K콘텐츠는 지속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