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개혁 없이 아이 낳으라고 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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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 프롤로그 」
어김없이 뜨는 태양은 애써 시간의 마디를 구분하지 않는다. 어제의 햇살은 오늘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변화무쌍한 기상은 지구 내부의 변화일 뿐이다. 하지만 인간 세상의 시간은 자연의 정속 주행(크로노스)과 다른 차원의 시간을 만들어낸다. 변화와 혁신을 가능케 하는 ‘특별히 의미 있는 시간’, 카이로스다. 동토 아래에서 추위와 어둠을 견디는 단단한 씨앗처럼 오늘을 참고 내일을 대비해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갑진(甲辰)년 새해가 밝았다. 청룡의 비상(飛翔)을 바라는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가 넘쳐나도 사람들의 낯빛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는다. 1964년 서울 세종로의 작은 건물(현재 신한은행 본점 자리)에서 시작해 국내 최고의 경제미디어를 일군 한국경제신문도 마냥 창간 60주년의 창대함을 자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면한 저성장과 수출 부진, 온존하는 지정학적 불안은 차라리 부차적이다. 가까운 장래에 가파르게 나타날 인구 구조 파행과 생산력 퇴조가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빤히 보이는데도 피할 수 없는 재앙이다. 로봇과 인공지능(AI), 연금·교육개혁과 이민청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우리 내부의 혁신(革新)-숙의(熟議)-합의(合意) 역량이 따라줄지 의문이다. 위기 앞에서 결속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지만 지금처럼 여야 대립과 이념적 격돌이 심하지 않았던 시절의 미덕이다.
대한민국은 극적 방향 전환 없이는 미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5년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될 국가는 한국”이라고 예측한 그대로 외통수에 몰렸다. 앞으로 20년 뒤, 생산가능인구의 노인부양 비율이 지금의 세 배로 치솟고, 40년 뒤 인구의 절반 이상이 63세 이상 고령층으로 채워진다는 따위의 통계청 인구 추계는 맞을 리 없다. 그 전에 무너져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희망 없는 나라에 뻔히 파국이 보이는데 누군들 탈출하려고 하지 않겠나.
저출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AI·우주여행 시대에 한국의 전통적 강점들은 ‘평범으로의 몰락’으로 속속 퇴행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진학률, 평균 지능지수(IQ), 대도시 인구 밀도, 근면성과 민첩성, 높은 성취욕은 고등교육 경쟁력 추락, 대학 순위 하락, 노동 제도의 경직성 확대, 현세적 소확행의 득세에 빛을 잃어가고 있다. 관료화의 덫에 빠진 주력 기업들은 언젠가부터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20년 전 세계 1위 제품의 구색이 거의 변하지 않았거나 정상에서 밀려났다. 정치 과잉의 사회적 인프라, 시대 흐름을 좇지 못하는 법과 제도, 사람들의 생각과 의식은 인구 구조 변화에 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 세계 첨단화·블록화하는데 韓 내부 역량은 '평범으로의 몰락' 퇴행
돌이켜보면 지금의 난제는 과거의 작은 문제들을 방치한 결과다. 사회의 활력 저하와 혁신 부재는 낡고 병든 것을 버리지 못한 데 대한 징벌이다. 대학 등록금 동결은 벌써 15년째다. 서비스산업발전법은 지난해에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2012년 이후 12전12패다. 의과대학 정원은 18년 연속 동결 상태다. 원격 의료는 더 가관이다. 1988년 서울대 등 3개 대학병원이 원격 영상진단 시범사업을 시작한 이후 시범사업만 35년째다. 이런 문제들에 걱정과 탄식만 무성한 연금개혁과 저출생 문제를 얹어놓으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기진맥진이다. 알면서도 못 고친다. 병명과 진단은 진작에 내려졌는데 정작 환자가 병원을 찾지 않는 꼴이다. 고질(痼疾)을 방치하면 중병이 들고 종국에는 목숨을 잃는다. 지금 우리가 딱 그 신세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0년이 고비라고 하지만 그때까지 갈 것도 없다. 당장 올해를 새로운 생존기를 쓰는 카이로스적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기성세대는 이렇게 살다 가도 어쩔 수 없다. 정치적 불화든, 이념적 폭주든, 기득권 집단의 저항이든, 모두 우리 탓이고 우리가 감당할 몫이다. 하지만 미래세대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일방적 피해자다. 이렇게 퇴락해가는 나라에서 아이를 더 낳으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책임하고 기만적이다.
국가 운영의 틀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정부 국회 기업 시민사회 등 현재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모두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 그리하여 새해의 화두는 청년, 미래, 개혁이다. 지구상의 어떤 국가도 가보지 않은 길을 새롭게 개척해야 할 상황이다. 지도도, 나침반도, 이정표도 없는 길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유일한 생존 비법은 변화에 대한 유연성과 위기 극복 의지다. 과거에 해오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국가의 자원 또한 유한하다. 늙어가는 사회는 점증하는 복지비용에 시달리다가 필연적으로 재정위기를 맞이한다.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겠다는 주장은 혹세무민이다. 언제든 국가에 기댈 수 있다는 기대 또한 물거품이 될 것이다.
국가와 재정의 한계가 분명하다면, 우리의 선택지는 두 곳이다. 하나는 현세대의 욕망과 기득권을 삭감해 미래세대에 넘겨주는 구조개혁, 또 하나는 민간의 인공지능(AI), 로봇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생산력 약화를 최대한 보전하면서 민간의 활력과 창의성을 증진하는 것이다. 전자의 향배는 보수와 진보 혹은 자유주의와 민중주의 세력이 격돌하는 4월 총선에서 가려질 것이다.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가 늦어도 한참 늦은 데다 국회의원 임기 4년이면 전 세계가 지각변동을 하고도 남을 시간인 만큼 사실상 나라의 명운을 건 ‘최후의 전쟁’이다. 개인적 입신과 양명에 사로잡혀 ‘꽃길’ ‘험지’ 타령하는 후보자들은 진정 국민을 위한 꽃길이 무엇인지 각성해야 할 것이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국내가 아니라 세계로, 진영이 아니라 국익으로, ‘평범으로의 몰락’이 아니라 비범한 비상으로 나라 전체를 이끌 수 있는 선량들의 도전을 기대한다.
후자 역시 절체절명의 과제다. 개인의 창의성과 기업의 도전의식을 장려하는 풍토를 만들려면 경제정책과 기업 규제의 틀을 시장친화적으로 전면 재편해야 한다. 애플,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알리바바, BYD가 세계적 경쟁자로 부상하고 첨단 부문의 공급망 전쟁이 격화하는 와중이다.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낡은 규범부터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기업집단과 동일인 규제가 있어야만 공정거래와 시장 경쟁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보다 경제적 자유가 획기적으로 신장하지 않는다면 더 효율이 크고 더 세계적인 제품과 서비스는 설 자리가 없다. 개인(기업)이 스스로 선택하고 개인이 책임지는 원칙을 확립하지 않으면 창조적 에너지는 고갈되고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내놓으라는 약탈적 에너지가 횡행할 수밖에 없다. 정치 과잉과 이념 폭주로 빠져드는 지옥의 길이다.
국가의 지향점이나 방향성은 당대 가장 똑똑한 청년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대한민국의 미래 역시 인구가 아니라 인적자본의 질과 수준으로 판가름 난다. AI가 세상을 지배하고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우주선이 지구 먼 곳을 항해하는 시대의 연구개발(R&D)도 결국 사람의 몫이다. 우리 청년들을 첨단 기술력과 국제·문화·예술적 소양을 두루 갖춘 인재로 단단하게 벼리면서 그들이 마음 놓고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20년, 30년 뒤 국가의 지속은 온전히 그들에게 달려 있다. 모든 시계를 올해 태어나는 20만 명 남짓 신생아에게 맞추고 장차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남을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모아야 할 때다.
조일훈 논설실장
갑진(甲辰)년 새해가 밝았다. 청룡의 비상(飛翔)을 바라는 희망과 긍정의 메시지가 넘쳐나도 사람들의 낯빛은 좀처럼 밝아지지 않는다. 1964년 서울 세종로의 작은 건물(현재 신한은행 본점 자리)에서 시작해 국내 최고의 경제미디어를 일군 한국경제신문도 마냥 창간 60주년의 창대함을 자축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당면한 저성장과 수출 부진, 온존하는 지정학적 불안은 차라리 부차적이다. 가까운 장래에 가파르게 나타날 인구 구조 파행과 생산력 퇴조가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빤히 보이는데도 피할 수 없는 재앙이다. 로봇과 인공지능(AI), 연금·교육개혁과 이민청이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우리 내부의 혁신(革新)-숙의(熟議)-합의(合意) 역량이 따라줄지 의문이다. 위기 앞에서 결속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지만 지금처럼 여야 대립과 이념적 격돌이 심하지 않았던 시절의 미덕이다.
대한민국은 극적 방향 전환 없이는 미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2015년 데이비드 콜먼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소멸될 국가는 한국”이라고 예측한 그대로 외통수에 몰렸다. 앞으로 20년 뒤, 생산가능인구의 노인부양 비율이 지금의 세 배로 치솟고, 40년 뒤 인구의 절반 이상이 63세 이상 고령층으로 채워진다는 따위의 통계청 인구 추계는 맞을 리 없다. 그 전에 무너져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희망 없는 나라에 뻔히 파국이 보이는데 누군들 탈출하려고 하지 않겠나.
저출생만의 문제가 아니다. AI·우주여행 시대에 한국의 전통적 강점들은 ‘평범으로의 몰락’으로 속속 퇴행하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대학 진학률, 평균 지능지수(IQ), 대도시 인구 밀도, 근면성과 민첩성, 높은 성취욕은 고등교육 경쟁력 추락, 대학 순위 하락, 노동 제도의 경직성 확대, 현세적 소확행의 득세에 빛을 잃어가고 있다. 관료화의 덫에 빠진 주력 기업들은 언젠가부터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20년 전 세계 1위 제품의 구색이 거의 변하지 않았거나 정상에서 밀려났다. 정치 과잉의 사회적 인프라, 시대 흐름을 좇지 못하는 법과 제도, 사람들의 생각과 의식은 인구 구조 변화에 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
세계 첨단화·블록화하는데 韓 내부 역량은 '평범으로의 몰락' 퇴행
미래 지속 가능성 없는 국가서 어떻게 아이 낳고 나라 지키라 하겠나
韓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시대적 소명 다해…국가 틀 전면 쇄신해야
돌이켜보면 지금의 난제는 과거의 작은 문제들을 방치한 결과다. 사회의 활력 저하와 혁신 부재는 낡고 병든 것을 버리지 못한 데 대한 징벌이다. 대학 등록금 동결은 벌써 15년째다. 서비스산업발전법은 지난해에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2012년 이후 12전12패다. 의과대학 정원은 18년 연속 동결 상태다. 원격 의료는 더 가관이다. 1988년 서울대 등 3개 대학병원이 원격 영상진단 시범사업을 시작한 이후 시범사업만 35년째다. 이런 문제들에 걱정과 탄식만 무성한 연금개혁과 저출생 문제를 얹어놓으면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기진맥진이다. 알면서도 못 고친다. 병명과 진단은 진작에 내려졌는데 정작 환자가 병원을 찾지 않는 꼴이다. 고질(痼疾)을 방치하면 중병이 들고 종국에는 목숨을 잃는다. 지금 우리가 딱 그 신세다.전문가들은 앞으로 10년이 고비라고 하지만 그때까지 갈 것도 없다. 당장 올해를 새로운 생존기를 쓰는 카이로스적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기성세대는 이렇게 살다 가도 어쩔 수 없다. 정치적 불화든, 이념적 폭주든, 기득권 집단의 저항이든, 모두 우리 탓이고 우리가 감당할 몫이다. 하지만 미래세대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일방적 피해자다. 이렇게 퇴락해가는 나라에서 아이를 더 낳으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책임하고 기만적이다.
국가 운영의 틀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정부 국회 기업 시민사회 등 현재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운영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모두 시대적 소명을 다했다. 그리하여 새해의 화두는 청년, 미래, 개혁이다. 지구상의 어떤 국가도 가보지 않은 길을 새롭게 개척해야 할 상황이다. 지도도, 나침반도, 이정표도 없는 길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숙명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유일한 생존 비법은 변화에 대한 유연성과 위기 극복 의지다. 과거에 해오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는 시대는 끝났다. 국가의 자원 또한 유한하다. 늙어가는 사회는 점증하는 복지비용에 시달리다가 필연적으로 재정위기를 맞이한다. 국가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겠다는 주장은 혹세무민이다. 언제든 국가에 기댈 수 있다는 기대 또한 물거품이 될 것이다.
국가와 재정의 한계가 분명하다면, 우리의 선택지는 두 곳이다. 하나는 현세대의 욕망과 기득권을 삭감해 미래세대에 넘겨주는 구조개혁, 또 하나는 민간의 인공지능(AI), 로봇 등 첨단기술을 활용해 생산력 약화를 최대한 보전하면서 민간의 활력과 창의성을 증진하는 것이다. 전자의 향배는 보수와 진보 혹은 자유주의와 민중주의 세력이 격돌하는 4월 총선에서 가려질 것이다.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시기가 늦어도 한참 늦은 데다 국회의원 임기 4년이면 전 세계가 지각변동을 하고도 남을 시간인 만큼 사실상 나라의 명운을 건 ‘최후의 전쟁’이다. 개인적 입신과 양명에 사로잡혀 ‘꽃길’ ‘험지’ 타령하는 후보자들은 진정 국민을 위한 꽃길이 무엇인지 각성해야 할 것이다.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 국내가 아니라 세계로, 진영이 아니라 국익으로, ‘평범으로의 몰락’이 아니라 비범한 비상으로 나라 전체를 이끌 수 있는 선량들의 도전을 기대한다.
후자 역시 절체절명의 과제다. 개인의 창의성과 기업의 도전의식을 장려하는 풍토를 만들려면 경제정책과 기업 규제의 틀을 시장친화적으로 전면 재편해야 한다. 애플,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알리바바, BYD가 세계적 경쟁자로 부상하고 첨단 부문의 공급망 전쟁이 격화하는 와중이다. ‘경제력 집중 억제’라는 낡은 규범부터 마땅히 사라져야 한다. 기업집단과 동일인 규제가 있어야만 공정거래와 시장 경쟁이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보다 경제적 자유가 획기적으로 신장하지 않는다면 더 효율이 크고 더 세계적인 제품과 서비스는 설 자리가 없다. 개인(기업)이 스스로 선택하고 개인이 책임지는 원칙을 확립하지 않으면 창조적 에너지는 고갈되고 남이 만들어 놓은 것을 내놓으라는 약탈적 에너지가 횡행할 수밖에 없다. 정치 과잉과 이념 폭주로 빠져드는 지옥의 길이다.
국가의 지향점이나 방향성은 당대 가장 똑똑한 청년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대한민국의 미래 역시 인구가 아니라 인적자본의 질과 수준으로 판가름 난다. AI가 세상을 지배하고 자동차가 하늘을 날아다니고 우주선이 지구 먼 곳을 항해하는 시대의 연구개발(R&D)도 결국 사람의 몫이다. 우리 청년들을 첨단 기술력과 국제·문화·예술적 소양을 두루 갖춘 인재로 단단하게 벼리면서 그들이 마음 놓고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20년, 30년 뒤 국가의 지속은 온전히 그들에게 달려 있다. 모든 시계를 올해 태어나는 20만 명 남짓 신생아에게 맞추고 장차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남을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모아야 할 때다.
조일훈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