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저출산 시대, 방송의 사회적 책임
‘나 혼자 산다’ ‘금쪽같은 내 새끼’ ‘결혼지옥’ 등 일부 방송 프로그램이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모습을 멋지게 그리다 보니 초저출산 시대에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이다.

지난해 11월 실시한 저출산 인식조사에서 방송, 미디어가 결혼과 출산에 영향을 미친다는 응답 비율이 81%에 달했다. 필자도 일부 방송이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은 하지만 이를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다. 이 같은 방송 프로그램은 변화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나름의 공감을 이끌어내면서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고 있다. ‘나 혼자 산다’는 제목 그대로 늘어나는 비혼과 만혼의 세태를 보여주고, ‘금쪽’과 ‘결혼지옥’은 그동안 밖으로 드러내지 않던 양육과 결혼 관계의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꼭 좋은 방송 프로그램이 되는 것은 아니다. 모두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성격을 갖고 있어 시청률을 높이려는 과정에서 시청자의 인식을 왜곡하는 콘텐츠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나 혼자 산다’는 유명인의 미혼 생활을 보여주다 보니 종종 현실과 괴리가 큰, 화려한 삶을 묘사한다는 지적이 있다. ‘금쪽’과 ‘결혼지옥’은 자극적인 사례들을 보여주면서 시청자가 심적 불편을 느끼게 한다.

제작진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현실과 동떨어진 타인의 삶을 보면서 결혼보다는 화려한 독신을 선호하게 되고, 내 미래의 아이와 배우자도 저런 문제가 있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게 된다. 방송을 시청하지 않더라도 뉴스 포털에서는 자극적인 제목의 방송 관련 기사들을 송출하고 있어 노출을 피하기 어렵다.

시청률로 평가받는 프로그램 제작진에게 문제의 책임을 돌리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방송의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해 시청률보다는 공익과 사회적 책임감을 더 높이는 방송사의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2000년대 이전에는 방송에서 흡연 장면이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흡연 장면을 볼수록 시청자의 흡연 욕구가 높아진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컸다. 오랜 설득 끝에 2003년 KBS와 SBS가, 2005년에는 MBC가 흡연 장면의 방송 노출 금지를 선언했다. 이때도 흡연 장면이 그렇게 문제가 되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방송사의 결단은 흡연율을 낮추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지금은 2003년처럼 저출산 위기 극복을 위해 방송사의 동참이 절실한 시점이다. 반가운 것은 요즘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를 흥미와 공감으로 잘 풀어내는 예능 프로그램이 부쩍 늘었다는 점이다. 즐겨보던 ‘김창옥쇼 리부트’는 가족, 부부, 연인 간의 갈등을 새로운 소통 방식으로 풀어내면서 큰 공감을 끌어냈다. 이런 방송들은 결혼과 출산 인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