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 AP=연합뉴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사진 AP=연합뉴스
사우디아라비아가 지난해 국부펀드의 투자를 급격히 늘리면서 싱가포르를 제치고 투자액 기준으로 세계 최대 국부펀드로 등극했다. 세계 국부펀드의 투자 규모가 줄어드는 동안 공격적으로 투자처를 확대한 결과다. 사우디가 국부펀드 투자를 확대하면서 석유 중심의 산업을 재편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사우디, 작년 세계 국부펀드 투자액 25% 차지

1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국부펀드 리서치기관 글로벌 국부펀드(SWF)의 예비 연례보고서를 인용해서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인 공공투자지금(PIF)이 지난해 49건의 투자 계약을 체결하며 총 315억달러(약 40조 8200억원)를 투자했다고 보도했다. 2022년(207억달러)보다 109억달러(52%) 늘어난 수치다.

지난해 세계 국부펀드의 투자 규모는 감소했다. 글로벌SWF는 지난해 세계 국영 투자기관의 총투자액은 전년 대비 20% 감소한 1247억달러로 추산했다. 2020년(891억달러)부터 2022년(1558억 달러)까지 3년 연속 증가하던 추세가 꺾였다. 사우디의 투자가 없었다면 투자 규모는 더 급격히 줄었을 것이란 평가다.

사우디 국부펀드는 지난해 축구·골프 등 스포츠 분야에서 대형 인수합병(M&A)을 추진했다. 지난해 6월 사우디 국부펀드는 자국 4대 축구 클럽인 알 이티하드, 알 알리, 알 힐랄, 알 나스르의 지분을 75% 확보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또 PIF가 후원하는 LIV 골프 투어를 미국프로골프(PGA), DP 월드투어와 합병하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사우디 국부펀드는 미국 게임업체 스코플리도 49억 달러에 인수했으며, 스탠다드차타드의 항공기 리스 사업부 인수에 36억 달러, 철강업체 하디드 인수에 33억 달러를 투자했다. 항공사와 자체 전기차 브랜드 사업도 새로 선보일 예정이다. 사우디 정부가 추진하는 투자 다각화의 일환이다.

디에고 로페즈 글로벌SWF 전무는 "사우디가 '비전 2030'을 달성하기 위해 투자처를 다각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비전2030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석유산업에 치우친 사우디의 산업구조를 재편하려는 경제 개혁 프로젝트다.

오일 머니 앞세운 중동 국부펀드

사우디 외에도 중동 국부펀드가 지난해 공격적으로 투자를 확대했다.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청(ADIA), 무바달라, 아부다비 국영 지주회사(ADQ) 등 세 곳과 카타르투자청(QIA)이 PIF와 함께 투자 상위 10위 안에 들었다. 중동 지역 국부펀드의 운용자산(AUM)은 4조 1000억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싱가포르 앞지른 사우디, 세계 최대 국부펀드 등극
시장에서는 2022년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중동 국부펀드의 투자 규모가 증가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1년간 축적한 오일 머니를 원천으로 삼은 것이다. 미국과 유럽의 은행 위기에도 투자 규모를 늘릴 수 있었던 이유다.

로페즈 글로벌SWF 전무는 "중동 내 부국이 화석연료 수출액을 기반으로 세계 투자 시장을 흔들고 있다"며 "특히 사우디와 아부다비, 카타르 등의 국부펀드 5곳인 '오일 파이브'가 딜메이킹(기업의 인수합병)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동 국부펀드의 투자 규모는 더 늘어날 전망이다. 국제금융연구소에 따르면 UAE, 사우디, 카타르, 쿠웨이트 등 중동 지역의 국부펀드는 올해 말까지 해외 총자산을 4조 4000억달러까지 늘릴 계획이다.

투자에 신중한 국부펀드들

반면 싱가포르의 국부펀드인 싱가포르투자청(GIC)의 투자가 급격히 감소했다. GIC는 지난해 전년 대비 46% 감소한 199억달러를 투자하는 데 그쳤다. 2022년 GIC는 싱가포르 재정부가 소유한 국부펀드 테마섹의 작년 투자액은 전년 대비 53% 줄어든 63억달러로 집계됐다. 캐나다의 국부펀드 세 곳도 지난해 투자액을 전년 대비 36% 감축했다.

글로벌 국부펀드의 투자 성향이 보수적으로 바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럽의 주식 시장이 위축되고 미국 경제가 불안정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선진국 주식 시장의 성장세가 둔화하자 국부 펀드들이 신흥 시장에 눈을 돌렸다. 위험도가 높은 탓에 투자를 더 신중히 결정했다는 분석이다.

글로벌SWF에 따르면 지난해 투자액 중 절반이 신흥시장에서 이뤄졌다. 중국에 대한 투자 규모가 가장 컸고, 인도네시아, 브라질, 인도가 뒤를 이었다. 산업별로는 투자액의 25%가 부동산 매입에 쓰였다. 2014년 이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금융업(19%)과 인프라 투자(18%)에도 대형 투자가 이뤄졌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