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인 1일(현지시간)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한 혼슈 중부 이시카와현 주민들이 현 청사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번 지진은 2일 새벽까지 여진이 지속됐다./사진=AP
새해 첫날인 1일(현지시간) 규모 7.6의 강진이 발생한 혼슈 중부 이시카와현 주민들이 현 청사에 마련된 임시 대피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번 지진은 2일 새벽까지 여진이 지속됐다./사진=AP
"대피소에 있는 소녀들은 성폭행에 주의하세요."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일본 여성들이 지진 대피소를 찾는 사람들에게 '성폭행'에 대한 주의를 당부했다. 동일본 대지진 당시 경험담을 공유하며 "무리를 지어 다니고, 위급한 상황에는 열쇠 등의 금속으로 급소를 찌르라"는 등의 조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난 1일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 반도에서 규모 7.6 강진이 발생했다.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이시카와현 당국은 3일 0시 기준 지진 사망자가 57명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지역별로는 와지마시 24명, 스즈시 22명, 나나오시 5명 등이다. 부상자는 136명이다. 강진 직후 발생한 화재로 건물 200동이 사라지면서 이시카와, 니가타현 등에서 955개 대피소에서 5만7360명이 대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SNS 캡처
/사진=SNS 캡처
이후 대피소에서 성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SNS를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

한 네티즌은 'SOS'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자고 있을 때나, 화장실에 갈 때, 여자들끼리 붙어 다녀야 한다"며 "동일본대지진 때에도 많은 분이 피해를 봤다"고 전했다. 자신을 "동일본대지진을 겪은 학생"이라고 소개한 인물도 "중년 남성으로부터 강간, 절도 미수가 있었다"며 "귀중품이 들어간 가방은 항상 착용하고 있어야 하고, 범죄가 발생하면 급소를 때려 자신을 지켜야 한다"는 글을 공유했다.

동일본대지진은 2011년 3월 11일 오후 일본 태평양 앞바다에서 규모 9.0의 지진이 발생해 거대한 쓰나미가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에도 대피소에서 이재민들 대상으로 상습적 성폭행이 일어났다는 증언이 나왔고, 일본 공영방송 NHK는 동일본 대지진 10주기를 맞는 2021년 '묻힌 목소리들(Buried voices)'라는 제목으로 대피소에서 성범죄 피해를 본 여성들의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도 했다.

'묻힌 목소리들'에 출연한 한 여성은 "지진으로 남편이 사망한 후 대피소장으로부터 성행위를 강요받았다"며 "대피소장이 수건이나 음식을 줄 테니 밤에 자신에게 오라며 노골적으로 성관계를 강요했다"고 말했다.

20대였던 또 다른 여성은 "대피소에 있는 남자들이 밤이 되면 여자가 누워있는 담요 속으로 들어오기도 하고, 여자를 잡아 어두운 곳으로 데려가 옷을 벗기기도 했다"면서 "주위 사람들은 도와주기는커녕 보고도 못 본 척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피해자도 "여러 남성에게 몹쓸 짓을 당했는데, 이런 사실을 주변에 알렸다가 살해당할까 두려웠다"며 "죽어도 바다에 버려져 쓰나미 핑계를 댈까 싶어 알릴 수가 없었다"고 털어놨다.

동일본 대지진으로부터 9년이 지난 2020년 2월, 2013~2018년 사이 여성 전용 상담 라인인 '동행 핫라인'에 접수된 36만여 건의 상담 내용을 분석한 결과 동일본대지진 피해 지역 3현(이와테, 미야기, 후쿠시마)에서 상담의 50% 이상이 성폭력 피해에 관한 내용임을 확인하기도 했다. 특히 10~20대 젊은 층의 피해는 약 40%에 달했다.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