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자가 AI로 바뀔 뿐, 인간은 늘 무엇인가의 지배를 받아왔다”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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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런시먼 지음
조용빈 옮김
와이즈베리
372쪽│1만9800원
하지만 학계에서 AI를 바라보는 시선은 기대 반 우려 반이다. 기술 발전의 속도와 방향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래학자 레이 커즈와일은 2005년 <특이점이 온다>에서 기술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순간을 '기술적 특이점'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특이점을 넘어서면 사회·경제적으로 한계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를 패러디한 삽화. 신과 기계가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이 이미지는 한국경제신문이 생성형 AI '챗GPT 4.0'을 활용해 생성했다. '로봇과 인간이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유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스타일'이란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박시온 기자](https://img.hankyung.com/photo/202401/01.35474907.1.jpg)
미래학자나 테크 기업 관계자가 아닌 정치학자가 AI 사회를 내다본 책이다. 그래서 특이하다. 책을 쓴 데이비드 런시먼 영국 케임브리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우리는 이미 300년 동안 AI와 살아왔다"고 말한다. 인간처럼 생각하고 결정하지만, 인간은 아닌 '인공 대리인'들의 지배를 받아왔다는 이유에서다. 17세기 등장한 근대국가와 18~19세기 현대적 기업이 여기 해당한다.
저자는 미래를 내다보기 위해 과거를 돌아보는 방식을 택했다. 주인 대리인 이론, 권력, 법인격 등 정치적 개념을 통해 국가와 기업이 형성됐던 과정을 설명하고, 이와 '닮은꼴' AI가 가져올 미래 모습을 전망한다. 이들 셋은 같은 듯 다르다. 국가나 기업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돼 자연스럽게 형성된 반면, AI는 보다 인위적으로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다.
![<핸드오버>(데이비드 런시먼 지음, 조용빈 옮김, 와이즈베리)](https://img.hankyung.com/photo/202401/01.35474894.1.jpg)
런시먼은 국가와 기업이 등장한 순간을 '첫 번째 특이점'이라고 명명한다. 첫 번째 특이점 이후 사회의 안정성이 늘고 전반적인 생활 형편이 개선되는 등 변화를 겪었다. 좋은 일만 있던 건 아니다. 편안함과 안락함을 위해 국가와 기업은 다른 집단과 다퉜다. 상대방을 착취하거나 자연을 파괴하기도 했다.
'두 번째 특이점'은 AI에 의한 변화다. 첫 번째 특이점이 사회적 변화 위주였다면, 두 번째 특이점은 인간의 생물학적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저자는 "인위적인 수명 연장, 자연사 후 기억 보존, 자손의 유전적 구성을 선택할 수 있는 지점에 이르면 우리는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것"이라고 말한다.
문제는 인공 시스템이 인간을 배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런시먼에 따르면 국가와 기업, AI는 '기계적인 속성'을 공유한다. 인간보다는 이들끼리의 결합이 용이하다는 소리다. 효율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인공 대리인들의 작동 방식은 사회의 인간성을 말살할 수 있다. AI로 인한 일자리 상실, AI의 의사결정에 대한 책임의 소재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다.
저자는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제언에 대해서는 답변을 미룬다.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옵션을 나열할 뿐이다. 효율적이지만 그만큼 비인간적인 사회, 종종 나쁜 선택을 내리지만 인간적인 사회 중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기계가 답변하듯 뻔한 얘기다. 속 시원한 해결책이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