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회사, 내가 다 키웠는데…"상속 더 달라" 숟가락 내민 형제들
아버지로부터 증여받은 회사 주식이라도 자신이 대표이사로서 회사를 경영해 불린 가치만큼은 유류분 반환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결이 확정됐다. 법원은 증여받은 사람의 노력으로 회사 주식 가치가 뛰었다면, 그 상승분만큼은 본인이 직접 벌어들인 소득임을 인정했다. 유류분은 가족이 받을 수 있도록 보장된 최소한의 유산 비율을 뜻한다.

증여 후 두배 이상 뛴 회사 몸값, 상속분쟁 불씨로

8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 중소기업 대표이사인 A씨와 그의 형제인 B씨는 유류분 반환소송 2심 판결에 불복해 제기했던 상고를 최근 취하했다. 이에 따라 A씨가 B씨에게 지급해야 할 유류분은 원심대로 과거 회사 주식을 증여받았던 시기의 주식 가치(약 88억원)을 바탕으로 산정한 7억8000만원으로 확정됐다. B씨는 “유류분을 산정할 때 상속재산의 가치는 상속이 시작됐을 때(아버지의 사망시점)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A씨가 증여받은 주식의 가치는 약 220억원”이라고 주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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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2003년(4만5000주)과 2004년(2만7000주) 아버지로부터 회사 주식을 증여받았다. 2006년에는 그의 아내(9800주)와 두 자녀(1만7010주)에게도 증여가 이뤄졌다. 1983년 이 회사에 입사한 A씨는 2008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대표로 취임해 지금까지 재직 중이다. 그가 대표 자리에 앉은 이후 회사는 성장을 거듭했다. A씨가 처음 주식을 증여받은 2003년 약 5억6000만원이던 이 회사 영업이익은 아버지 사망(2018년 1월) 직전인 2017년 16억4000만원으로 늘었다. 이에 힘입어 주식 가치도 2003년 말 1주당 4만5650원에서 2018년 1월 22만2729원으로 뛰었다.

A씨는 이 같은 사실을 근거로 “증여받은 시점을 기준으로 유류분 반환대상에 포함해야 할 주식의 가치를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증여받은 주식이 특별수익이긴 하지만 그동안 뛴 주식가치는 자신의 노력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가족과 나눠선 안된다는 입장을 보였다. 특별수익은 망인의 생전에 미리 이전됐다고 간주되는 상속재산으로 유류분을 계산해야 할 때 반영하도록 돼 있다. A씨의 경우엔 본인과 아내, 자녀들이 증여받은 주식 9만8810주가 모두 특별수익으로 인정됐다.

회사 키운 기여도 인정…法 “증여 당시로 주식가치 평가해야”

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1·2심 재판부는 “A씨가 주식을 증여받은 후 경영을 주도하면서 회사는 자산이 증가하고 부채비율은 떨어지는 등 안정적으로 발전했다”며 “주식 가치 상승에 상당한 기여를 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상속 개시시점이 아닌 증여시점을 기준으로 증여받은 주식의 가치를 산정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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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판결은 상속과정에서 주식 가치를 산정하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국내 법원은 가치 상승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와 무관하게 증여받은 주식의 가치를 상속 개시시점을 기준으로 산정해 유류분을 계산한다는 원칙을 오랫동안 유지해왔다. 2020년 이번 판결처럼 예외를 인정하는 확정 판결이 처음 나왔지만 대법원이 이 쟁점을 두고 명시적 판단을 하지 않은 채 상고를 기각했기 때문에 큰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A씨를 대리한 최영노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경영을 통해 기업가치를 높인 사람의 경우엔 본인 노력으로 상승한 주식의 가치만큼은 유류분 반환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법원이 또 한 번 인정했다”며 “앞으로는 비슷한 분쟁에서 법원이 같은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