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산타클로스

가상의 산타클로스가 지구촌의 상공을 일주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경로추적 서비스 ‘산타 위치추적사이트’가 지난 67년간 매년 성탄절 전후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2023년에는 24일 오후 11시 20분쯤 한국 상공에 들어와 부산, 서울 등을 거쳐 11시 27분경 중국 상공으로 빠져나갔고, 전 세계의 도시들에 76억 개 이상의 선물을 전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일종의 암호화된 이야기다. 실제는 다음에 가깝다. 지구촌 위를 비행하는 사슴들이 끄는 썰매는 첩보 위성이고, 산타는 북미 항공우주방위사령부며 산타의 선물은 북미 항공우주방위사령부의 감시(surveillance)다.

성탄절에 지구촌의 상공을 누비는 가상의 산타클로스 이야기의 진정한 주제는 위장(Camouflage) 이다. 위장, 이것이 이 시대와 이 시대 예술의 진정한 이야기다.

2017년 북한과 미국 간 갈등이 고조되고 전운이 감돌 당시, 주한 미국인들 사이에는 ‘화이트 크리스마스’ 캐럴이 전쟁의 시작이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한다. 실제로 미군이 베트남에서 철수할 때 동일한 캐럴이 작전 신호였다고 한다. “전쟁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니... 미국의 군사 신호는 퍽이나 로맨틱하다.”1)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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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모닝 미스터 오웰〉

백남준의 초기 예술은 과거와 싸우고 현세를 조롱하는 데 있어 치열했다. 적어도 <굿모닝 미스터 오웰>까지는 그렇게 보였다. 그의 퍼포먼스는 과격한 것으로 정평이 났다. 연주 후에는 피아노를 태웠고 도끼로 부쉈다. 바이올린은 끈에 매달아 끌고 다녔고, 연주 중인 존 케이지의 넥타이를 가위로 싹둑 잘랐다. 종이의 사망을 선언하면서 TV를 사용했던 초기 작품만 해도 수십년간 기술자들이 노력해 쌓아온 TV 영상 기술에 가하는 공격이자 해킹의 성격이었다.

동료 전위주의 작가들조차 그를 ‘미래를 훔치는 밀수꾼’으로 비유할 정도로, 기술에 대한 백남준의 관심은 집요했다. TV, 로봇, 70년대 말의 몇몇 ‘위성-통신-컴퓨터(Sat-Tel-Comp)’ 실험을 거쳐 드디어 1984년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 당도했다. 흥미로운 건 이 밀수꾼에게 미래는 디스토피아가 아니라 유토피아에 가까운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예측의 중심에 있는 것이 인공위성이 있다.

미국시간으로 1984년 1월 1일 정오에 백남준이 기획한 인공위성-TV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시작되었다. 제목이었던 ‘굿모닝 미스터 오웰’은 조지 오웰의 소설 <1984>의 패러디에서 온 것이다. 오웰의 소설 속에서 오세아니아(ceania)로 통칭되는 미래사회는 유토피아와는 거리가 멀다. 인간은 빅 브라더(Big Brother)의 핵심적인 통치 기제인 텔레스크린을 통해 노예로 전락한다. 반면 백남준은 오웰의 가설을 조급하고 비관주의적인 것으로 규정하고, 미래가 밝고 희망적일 거라 전망하면서 그런 자신의 역사적 전망의 근거로서 첨단 인공위성 기술을 사용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기획했던 것이다. 이 진취적인(?) 기획에 신, 구대륙의 동료들이 호응했다. 퐁피두 센터에선 요셉 보이스의 퍼포먼스가, 뉴욕에선 존 케이지의 연주가 있었다. 이 외에도 머스 커닝햄, 샬럿 무어맨을 비롯한 100여 명의 예술가가 위성-예술(sat-art) 시대의 출범을 기념하는 자리에 함께했다.

이로부터 불과 10년도 채 안 된 1990-91년의 걸프전(The Gulf War)에서 인공위성이 무기체계로서 얼마나 광범위하게 사용될 것인가를 알았더라도 분위기가 그렇듯 축제적이었을까? 당시 미국의 선제공격에 사용된 무기의 70%가 첩보 위성과 관련된 것이었다.2) 어떻든 이 세계 최초의 위성-예술(sat-art)쇼는 백남준을 세계적 작가로 높이 쏘아 올리는 계기가 되었다.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1984년작 ‘굿모닝 미스터 오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의 1984년작 ‘굿모닝 미스터 오웰’.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 임할 때 백남준의 태도는 재치, 쇼맨십 같은 이전의 견유주의적 태도와는 크게 달랐다고 한다. 과거에 대해선 알러지 반응을 보이다가도 자신의 시대에는 로맨틱한 태도마저 취하는 이중성이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영혼들에서 흔히 보이곤 하는 지적 특성이긴 하다. 그렇더라도 철저하게 무정부적이고 탈 자본주의적인 플럭서스의 정신에 깊이 매료되었던 것과 달리, 과학기술이 약속하는 장밋빛 미래를 진심으로 믿고, 인공위성이 전 세계를 하나로 엮는 평화의 가교역할을 할 거라는 낙관주의의 인상은 별도의 설명을 요구하는 대목이다.
바스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백남준: 마이애미 시절' 전시.
바스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백남준: 마이애미 시절' 전시.

〈굿모닝 미스터 백〉

백남준은 관 속에 있는 오웰 씨에게 “당신의 예측은 너무 앞서 나갔다”고 했다. 미디어 기술이 가져올 평화와 소통의 잠재력을 누락했다는 의미다. 백남준은 자신의 글 '위성과 예술'에서 인공위성이 사람들 간의 만남을 만들고, 그 만남이 새로운 내용을 만드는 선순환을 일으킬 거라 했다. 위성이 중심이 되는 역사가 ‘강자의 승리’를 보다 촉진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슬쩍 곁들이기는 했다. “할리우드의 불도저가 에스키모의 전통문화를 흔적도 없이 쓸어버릴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위험이 있다.

걸프전 당시 CNN이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송출한 영상은 평화와 소통과는 거리가 먼, 미국 폭격기들이 지상을 폭격하는 장면이었다. 강자의 승리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전쟁과 비디오 게임의 구분이 무의미해진다는 것이다.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보는 것이 실제인지 비디오 게임인지 혼란스러워해야 했다. 걸프전의 별명이 ‘비디오 게임’이었다.

2022년의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은 현대전이 이미 우주 전쟁의 양상을 띠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들은 소련의 탱크와 진지를 정확하게 공격했는데, 이는 일론 머스크(Elon Musk)의 스페이스 X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스타링크)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3)

미국 등의 민간 위성 기업들도 해상도가 높은 영상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전쟁에 개입했다.

인공위성이 소통과 만남을 촉진하는 건 틀린 예측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소통 어떤 만남인가?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지구 반대편에 이메일을 보내고, 화상전화로 얼굴을 마주보며 통화한다. 하지만, 소통과 관계가 새로운 가능성으로 나아가는지는 의문이다. 위성통신 시대의 통신은 감시되고, 통제가 그 기반이 되는 통신이다. 거의 모든 소통과 관계가 감시된다. 무엇이 말해지든 도청에 노출된다. 구체화된 것은 "Big Brother is watching you”(빅 브라더가 당신을 보고 계시다)”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

120여 개의 첩보위성으로 구성된 첩보 위성망 ‘에셜론(ECHELON)’이 전 세계의 모든 통신, 이메일과 팩스, 무선통신, 국제전화통화의 90%(매일 30억 건의 통신)를 가로챈다. 이런 수치조차 거의 매일처럼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강대국들이 쏘아올리는 위성의 수를 생각할 때 무의미할 뿐이다. 은밀한 대화, 긴밀한 관계는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사건이 되어가고 있다. 백남준에게 ‘앞서나간 건 당신의 예측이예요’라고 해야 할까.
백남준은 몰랐단 말인가… 산타 클로스가 빅브라더였다는 것을

새로운 예술의 시대(?)

백남준은 “고등예술은 새로운 세계를 추구한다”고 했다. 하지만 무엇이 새로운 세계인가? 스파이 위성(정찰위성)이 뉴욕 센트럴파크 벤치에서 뉴요커가 읽는 신문 제목을 판독해내는 세상인가? 미국의 첩보위성 키홀(KH-12)의 첨단 카메라가 지상의 사람들을 낱낱이 식별하고 자동차 번호판을 읽는 세상인가?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전하는 ‘새로운 세계’의 복음은 의심스럽다. 아마도 지난 세기 두 차례의 대전에서 확인되었던 역사, 산업기계가 얼마나 살인 기계로 빠르게 전유되는지, 과학기술이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괴물의 등장을 막는 데는 무기력한 반면, 그들의 파괴력을 배가시키는 데 있어서는 멀마나 탁월했던가를 밝히는 역사의 맥락에서 다시 독해되어야 할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는 인공위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제 반짝거리며 밤하늘을 수놓는 것들은 그 기계덩어리들이다. 이젠 그것들이 우리의 시(詩)고, 우리의 예술이며 드디어 우리의 신(神)이다. 그것이 우리를 굽어살피고 적들로부터 보호한다. 정작 뉴튼은 500년에 한 번쯤 신의 신성한 손길이 있어야 태양계가 유지될 것이라 여겼건만, ‘프랑스의 뉴턴’이라 불리는 18세기의 물리학자 라플라스(Pierre Simon de Laplace)는 나폴레옹에게 우주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신이라는 가설은 더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비로소 우리는 몽매한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신을 영접한 셈이다. 이 새로운 기계-신의 통치 아래서 우리는 제까지의 불안과 위축, 공황감을 딛고 일어나 새로운 평화와 소망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는 중인지 진지하게 물어볼 일이다.
‘전쟁 세대’였던 백남준은 1956년 한국을 떠나 해외 아방가르드 예술을 이끌며 혁신가로 살았다. 사진은 미국 뉴욕 스튜디오에서의 백남준.  앳나인필름 제공
‘전쟁 세대’였던 백남준은 1956년 한국을 떠나 해외 아방가르드 예술을 이끌며 혁신가로 살았다. 사진은 미국 뉴욕 스튜디오에서의 백남준. 앳나인필름 제공
1) 박보나, 『태도가 작품이 될 때』, (서울: 바다출판사, 2019), p.126.
2) 당시 ‘켄난’으로 불리는 KH-11(주간정찰용), ‘이콘’으로 불리는 KH-12(적외선 탐지 기능을 갖춘 주·야간 정찰용), 레이더와 레이저를 이용하는 ‘라크로스(Lacrosse)’ 4~5기로 이라크 상공을 하루에도 몇 번씩 돌며 정보를 수집했다.
3) https://jmagazine.joins.com/art_print.php?art_id=2813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