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고두현의 아침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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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꽃·1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새해 첫 시로 나태주 시인의 ‘풀꽃·1’을 골랐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이 작품은 5행 24자로 이뤄진 짧은 시죠. 30여 년간 ‘광화문 글판’에 실린 글귀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시가 실린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집 중에서 최고 판매 부수를 기록했죠. 그의 시가 이렇게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누구에게나 쉽게 와 닿는다는 것입니다. 시가 쉽고 가깝고 작은 것 속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듯하죠. ‘풀꽃·1’은 시인이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때 아이들에게 들려준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합니다.
숲속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도 한 반씩 돌아가며 수업을 해야 했습니다. 미술 시간을 맡은 어느 날,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 풀꽃을 그리자고 졸랐어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아이, 아픈 엄마와 함께 사는 아이, 아빠가 안 계시는 아이, 그림 그리기를 싫어하는 아이….
저마다 사연 많은 아이들이 풀꽃 앞에 앉아 서투르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그림 같았습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풀꽃을 그리려면 눈을 바짝 갖다 대고 관찰해야 하지요. 그렇게 아이들은 풀꽃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면서 “예쁘다”고 말했습니다. 외로운 것 같지만 함께 모여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면서 깔깔거리기도 했죠.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 그 모습을 하나씩 떠올리며 시를 써서 칠판에 적어 놓았습니다.
이 시의 첫 구절, 첫 표현인 ‘자세히’가 핵심어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쁜 줄 알지요. 그렇게 자세히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습니다. 그런 꽃이 바로 ‘너’죠.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물어도 이 시에서 가장 와 닿는 구절은 ‘너도 그렇다’라고 합니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모두 이 말을 ‘나도 그렇다’고 받아들이지요.
‘풀꽃·2’도 참 좋습니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두 번째는 위로와 공감 코드를 겸비했다는 점입니다. 그가 “시는 투 티치(to teach)도 아니고 투 액션(to action)도 아니고 투 무브(to move)”라고 설명했듯이, 시인이 함께 울어주고 공감하며 동행하자고 손을 건네는 지점에서 독자들은 마음의 문을 엽니다.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시 ‘행복’ 전문)
이 작품에서 시인과 독자는 ‘저녁때’ ‘힘들 때’ ‘외로울 때’라는 삶의 그늘을 지나 ‘집’ ‘사람’ ‘노래’라는 따스함의 세계로 함께 가는 동행자가 됩니다. 시가 사람을 위로하고 보듬어주고 울릴 때 독자들은 시의 행간과 함께 울고 웃지요. 시의 근본적인 효용에도 자연스럽게 공감하고요.
세 번째는 간결하다는 점입니다. 그는 이를 ‘SSEB’로 설명합니다. “심플(Simple), 쇼트(Short), 이지(Easy), 베이직(Basic)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작고 짧은 형식 속에 크고 중요한 의미를 담아내려고 애쓰지요.”
예를 들어 ‘묘비명’이라는 시가 그렇습니다.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딱 두 줄밖에 안 되지만 인생의 근본 의미를 담고 있지요. 자녀들은 무덤 앞에 찾아올 때마다 그 묘비명을 보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보고 싶어서 왔는데, 우리 아버지가 미리 써놨네. 조금만 참으라고.” 여기서 ‘조금만 참자’는 것은 ‘너도 죽을 것’이라는 생의 한계와 삶의 근본에 대한 생각을 일깨웁니다.
시인 자신은 “나태주 시의 특징은 별것 아닌 게 특징”이라며 “나는 멀고 크고 위대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 가까운 것, 그러나 중요한 것에 마음을 주고 눈길을 모은다”고 얘기합니다.
시인이 된 계기도 별것 아니라고 말하지요. 그저 열여섯 살 때 어떤 여자가 좋아서 연애편지를 쓰다가 시인이 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는 연애편지”라고 말합니다. 살아오면서 그 대상이 다른 여자로 바뀌고, 세상으로 바뀌었기에 지금은 세상에 보내는 러브레터가 그의 시라고 하지요.
그 대상이 사람이든 세상이든 그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전히 소년처럼 순수하고 담백합니다.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시 ‘사랑에 답함’ 전문)
그의 시집은 나태주 시가 어떻게 대중과 소통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대중이 어떤 시에 끌리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는지도 알려주지요. 그의 시는 인터넷 블로그나 트위터에 자주 오르내리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시인과 대중이 시를 매개로 서로의 감성을 주고받는 공감각적 접점을 이룬 결과죠. 결국 ‘가장 짧은 문장으로 가장 긴 울림을 주는 것’이 시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작품이 사랑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 새해 첫 시로 나태주 시인의 ‘풀꽃·1’을 골랐습니다. 너무나 잘 알려진 이 작품은 5행 24자로 이뤄진 짧은 시죠. 30여 년간 ‘광화문 글판’에 실린 글귀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시가 실린 시집 <꽃을 보듯 너를 본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집 중에서 최고 판매 부수를 기록했죠. 그의 시가 이렇게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 번째는 누구에게나 쉽게 와 닿는다는 것입니다. 시가 쉽고 가깝고 작은 것 속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듯하죠. ‘풀꽃·1’은 시인이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 때 아이들에게 들려준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라고 합니다.
숲속 마을의 작은 초등학교에서는 교장 선생님도 한 반씩 돌아가며 수업을 해야 했습니다. 미술 시간을 맡은 어느 날, 아이들이 밖으로 나가 풀꽃을 그리자고 졸랐어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아이, 아픈 엄마와 함께 사는 아이, 아빠가 안 계시는 아이, 그림 그리기를 싫어하는 아이….
저마다 사연 많은 아이들이 풀꽃 앞에 앉아 서투르게 그림을 그리는 모습은 그 자체로 그림 같았습니다. 작지만 아름다운 풀꽃을 그리려면 눈을 바짝 갖다 대고 관찰해야 하지요. 그렇게 아이들은 풀꽃을 섬세하게 들여다보면서 “예쁘다”고 말했습니다. 외로운 것 같지만 함께 모여 있는 모습이 보기 좋다면서 깔깔거리기도 했죠. 교장 선생님은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뒤 그 모습을 하나씩 떠올리며 시를 써서 칠판에 적어 놓았습니다.
이 시의 첫 구절, 첫 표현인 ‘자세히’가 핵심어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쁜 줄 알지요. 그렇게 자세히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습니다. 그런 꽃이 바로 ‘너’죠.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물어도 이 시에서 가장 와 닿는 구절은 ‘너도 그렇다’라고 합니다.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모두 이 말을 ‘나도 그렇다’고 받아들이지요.
‘풀꽃·2’도 참 좋습니다.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 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 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아, 이것은 비밀.’
두 번째는 위로와 공감 코드를 겸비했다는 점입니다. 그가 “시는 투 티치(to teach)도 아니고 투 액션(to action)도 아니고 투 무브(to move)”라고 설명했듯이, 시인이 함께 울어주고 공감하며 동행하자고 손을 건네는 지점에서 독자들은 마음의 문을 엽니다.
‘저녁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힘들 때/ 마음속으로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혼자서 부를 노래 있다는 것.’(시 ‘행복’ 전문)
이 작품에서 시인과 독자는 ‘저녁때’ ‘힘들 때’ ‘외로울 때’라는 삶의 그늘을 지나 ‘집’ ‘사람’ ‘노래’라는 따스함의 세계로 함께 가는 동행자가 됩니다. 시가 사람을 위로하고 보듬어주고 울릴 때 독자들은 시의 행간과 함께 울고 웃지요. 시의 근본적인 효용에도 자연스럽게 공감하고요.
세 번째는 간결하다는 점입니다. 그는 이를 ‘SSEB’로 설명합니다. “심플(Simple), 쇼트(Short), 이지(Easy), 베이직(Basic)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 과정에서 작고 짧은 형식 속에 크고 중요한 의미를 담아내려고 애쓰지요.”
예를 들어 ‘묘비명’이라는 시가 그렇습니다. ‘많이 보고 싶겠지만/ 조금만 참자.’ 딱 두 줄밖에 안 되지만 인생의 근본 의미를 담고 있지요. 자녀들은 무덤 앞에 찾아올 때마다 그 묘비명을 보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보고 싶어서 왔는데, 우리 아버지가 미리 써놨네. 조금만 참으라고.” 여기서 ‘조금만 참자’는 것은 ‘너도 죽을 것’이라는 생의 한계와 삶의 근본에 대한 생각을 일깨웁니다.
시인 자신은 “나태주 시의 특징은 별것 아닌 게 특징”이라며 “나는 멀고 크고 위대한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 가까운 것, 그러나 중요한 것에 마음을 주고 눈길을 모은다”고 얘기합니다.
시인이 된 계기도 별것 아니라고 말하지요. 그저 열여섯 살 때 어떤 여자가 좋아서 연애편지를 쓰다가 시인이 됐다는 겁니다. 그래서 “시는 연애편지”라고 말합니다. 살아오면서 그 대상이 다른 여자로 바뀌고, 세상으로 바뀌었기에 지금은 세상에 보내는 러브레터가 그의 시라고 하지요.
그 대상이 사람이든 세상이든 그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전히 소년처럼 순수하고 담백합니다.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시 ‘사랑에 답함’ 전문)
그의 시집은 나태주 시가 어떻게 대중과 소통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대중이 어떤 시에 끌리고 적극적으로 반응하는지도 알려주지요. 그의 시는 인터넷 블로그나 트위터에 자주 오르내리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시인과 대중이 시를 매개로 서로의 감성을 주고받는 공감각적 접점을 이룬 결과죠. 결국 ‘가장 짧은 문장으로 가장 긴 울림을 주는 것’이 시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작품이 사랑을 많이 받는 것 같습니다.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