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인류가 창조한 질서다. 2024년 1월 1일에 떠오른 태양은 전날의 태양과 같지만, 인간만이 새해 새 날에 의미를 부여하고 해돋이 명소로 몰린다. 인간 사회는 시간이라는 단위를 측정하고 관리하기에 비행기와 기차는 약속된 시간에 맞춰 떠나고, 사람들은 시계를 수시로 들어다보며 하루 일정을 가늠한다.

최근 국내 출간된 <1초의 탄생>은 해시계부터 원자시계까지 시간 측정의 역사와 그것의 의미를 들여다보는 책이다. 물리학자가 쓴 책이지만 과학책 그 이상이다. 과학기술과 인류 문명의 발전사가 시간을 주제로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저자인 채드 오젤 뉴욕주 스키넥터디의 유니온칼리지 교수는 "시간 측정의 역사에는 과학기술에 관한 추상적 이야기만이 아니라, 정치와 철학의 매우 흥미로운 요소도 포함돼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을 감수한 김범준 성균관대 물리학과 교수 역시 "시간의 측정은 과학이지만 시간의 약속은 사회적 합의의 결과"라고 말했다.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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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1초 단위에서 계절, 1년으로 확장된다. 1~2장에서 책은 지구 자전축과 계절, 지구의 공전 주기와 별자리의 관계 등 과학적 기초 사실을 먼저 짚은 뒤 3장 '자연의 시간 vs. 사회적 시간'을 통해 시간 측정이 인류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다양한 일화를 통해 보여준다.

1752년 영국 의회는 9월 2일 바로 다음 날을 9월 14일로 한다는 법령을 가결했다. 11일이 통째로 사라진 것. 율리우스력을 써오다가 그레고리우스력으로 역법 개혁을 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지만, 지주들은 19일 만에 한달치 임대료를 요구하고, 고용주는 11일에 대한 급료를 지급하지 않는 등 나라 곳곳이 혼란에 빠졌다.
9월 2일 바로 다음 날이 9월 14일이라면 [책마을]
책은 기본적으로 시간 측정에 대한 기술 발달사를 토대로 관련된 역사적 사건과 파장 등을 덧붙이며 전개된다. 그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시간의 의미, 시간 측정 기술의 가치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다소 따분한 과학 설명 부분도 중간중간 '딴 길'로 새는 덕분에 읽어낼 수 있다.

아직도 정확한 시간 측정은 인간의 꿈이다. 1967년부터 1초는 "세슘-133 원자의 에너지 바닥 상태의 두 초미세 준위에서 방출되는 전지가파가 91억 9263만 1770번 진동하는 시간"으로 정의됐다. 하지만 이 복잡한 정의로도 태양의 겉보기운동으로 정의한 천문학적 '하루'와 표준시간 사이에 오차가 발생했다. 지구의 공전 궤도는 타원형이고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져 있고 지구 내부에 액체 상태로 녹아있는 거대한 맨틀이 존재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결국 인류는 2016년 '윤초'를 도입했다. 윤초는 몇 년에 한 번씩 6월이나 12월 마지막 날에 23시 59분 60초라는 형식으로 추가돼 지구의 움직임과 인간 사회의 '1년' 사이 간극을 메꾸고 있다.

인간은 왜 '정확하게 시간을 측정하고 관리한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꿈을 계속해서 꾸는 걸까. 그건 미래를 정확하게 알고 싶기 때문이다.

시간 측정이란 흔히 과거나 현재의 일로 생각하기 쉽지만, 시간 측정에 관한 과학 기술은 미래의 시간을 추정하는 일과 밀접하다. 당신이 다가올 휴가를 휴대폰 달력에 미리 입력해두듯이. 신석기시대에는 다시 찾아올 봄을 기다리기 위해, 유대인과 초기 기독교인들은 유월절과 부활절을 준비하려 시간을 측정했다. 오늘날 천문학자들은 미래 천체 움직임을 예측하기 위해 우주를 바라본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많은 독자들이 지금도 무심하게 흘러가고 있는 시간에 숨겨진 의미를 깨닫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연초에 읽기에 시의적절한 책이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