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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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이모 씨는 최근 모바일 중고거래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회사 근처 한 백화점의 ‘VIP 주차권’을 구입했다. 1년 이용권 가격은 80만원. 상당한 금액이지만 당초 알아보던 공용주차장(연간 280만원)보다는 쌌다. 발레파킹(주차대행)이 가능해 편하게 주차할 수 있는 이점도 감안했다.

백화점에서 연간 6000만원에서 많게는 1억2000만원 이상을 구매한 고객들에게 주는 VIP 주차권이 온라인에서 무단 거래되고 있다. 스티커만 붙이면 전국 점포에서 사실상 무제한 주차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다. 서울 강남, 명동, 여의도 등 주요 업무지구에 점포를 많이 둔 백화점의 주차권 매물은 "없어서 못 판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요가 많다.

4일 당근마켓·중고나라 등 주요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에는 백화점별로 VIP 주차권 거래 글이 수십건씩 올라와 있다. 서울 강남구, 용산구, 마포구 등에서 ‘백화점 주차권’으로 검색한 결과 최근 사흘 간 거래 게시 글만 30건 이상이었다. 백화점 정책상 타인 양도가 금지됐지만 판매자들은 “주차 줄이 길어도 차만 두고 가면 돼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다”거나 “주차난이 심한 도심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다”고 소개했다.

신세계백화점이 구매 실적 상위 999명에게만 주는 최상위 ‘트리니티’ 주차권의 경우 80만~90만원 선에 거래되는 것으로 파악된다. 현대백화점의 최상위 ‘재스민 블랙’은 호가가 90만∼130만원이다. 현대백화점 VIP권은 서울 압구정, 무역센터, 여의도, 신촌 등 주요 지역에 매장이 있어서 인기가 높다. 실적 상위 고객에게 주차권 2~3장을 주는 롯데의 경우 최고 등급 ‘에비뉴엘’ 주차권이 70만∼90만원에 판매되고 있다.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올라온 백화점 VIP 주차권 거래들. 사진=당근마켓 캡처
온라인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마켓에 올라온 백화점 VIP 주차권 거래들. 사진=당근마켓 캡처
주차권 등록은 안내데스크에서 본인 확인 후 주차 스티커를 발급받거나 고객이 알려주는 차량 번호를 주차관제 시스템에 입력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일부 점포에선 차량 등록증 대조 등 고객이 실제 소유한 차량인지 확인하긴 하지만 명확한 규정이나 등록 절차가 정해지지 않아 여분의 주차 스티커나 차량 번호 등록을 손쉽게 넘길 수 있다.

백화점들은 주차권 거래는 불법이라며 VIP 회원들에게 주차권 거래 금지를 안내하고 있다. 적발하면 등급 혜택을 취소해 판매자와 구매자 모두에게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했지만, 주차권이 중고거래 사이트에 익명으로 거래되는 탓에 신원 파악이 어려운 실정이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 “판매자가 VIP 고객이라 대응하기에 조심스럽다”면서도 “최근엔 VIP 고객들 사이에서도 주차난 등을 호소하며 주차권 거래 행태 등을 항의하는 경우가 많아 온라인 거래 글을 최대한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