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수단 히자니쉬빌리 ‘Touch’(2023).
루수단 히자니쉬빌리 ‘Touch’(2023).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심수봉 작사 ‘백만송이 장미’ 中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금도 여전히 많은 이의 사랑을 받는 노래 ‘백만송이 장미’다. 프랑스 출신 여배우와 조지아 출신 화가의 사랑에서 모티브를 얻은 번안곡은 이후 한국과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번안돼 인기를 누렸다. 이 때문인지 조지아 출신 작가 루수단 히자니쉬빌리(사진)의 작품을 보면 자연스레 이 노래가 떠오른다.

신들과 와인의 고향, 조지아

백만송이 장미에 강인함 숨겼다…탄압에 저항한 조지아의 여신들
신들의 고향이자 와인의 고향인 조지아. 캅카스(코카서스)산맥 남쪽에 있는 조지아는 그리스 신화와 성경의 배경이 된 곳이다. 인간에게 불을 건넨 프로메테우스가 벌을 받던 산(카즈베기산)이 있는 곳이며, 이아손이 황금 양털을 구하러 온 곳이기도 하다.

서아시아의 끝이며 동유럽의 시작점인 동시에 북쪽의 기독교 문화와 남쪽의 이슬람문화가 교차하고 좌우로는 흑해와 카스피해가 있는 지리적 요충지다. 이 문명의 교차로를 얻기 위해 열강이 주도권 다툼을 했기에 페르시아 문화권에 속하기도 했으며, 이슬람 문명과 몽골제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기도 했다.

소비에트연방의 공산당 서기장이자 대원수였던 스탈린의 고향인 동시에 그루지야(Gruzija)라는 러시아식 국가명을 버리고 조지아(Georgia)를 국가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나라. 잦은 외부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지만 오랜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언어와 민속을 지켜온 조지아는 세계 역사와 문명의 압축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조지아에서 나고 자란 작가 루수단 히자니쉬빌리는 성스러운 종교의 진리와 속세의 현실성을 넘나드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부드러운 것의 힘

루수단의 작품에는 많은 여성이 등장한다. 그리스 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여신들을 비롯해 조지아의 황금시대를 이뤘던 타마르 여왕 등이 그녀의 여성주의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줬다. 이들은 대부분 야생의 옷을 입고 신화나 꿈속에 나올 법한 캐릭터처럼 등장한다.

‘The Armor’에서는 달빛 아래 연약한 속살을 보이는 여성에게 자연을 닮은 옷을 입히는 여성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빠른 적응과 교감이다. 부드러움은 강한 것을 넘어설 때가 많다. 부드러운 물은 바위를 깎고, 유연한 갈대는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다. 체코에서 일어난 벨벳혁명은 비폭력 저항으로 권력을 교체했기에 부드러운 벨벳의 이름을 붙였다.

새로운 환경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 그것은 오랜 침략을 받았던 조지아 사람들을 지속 가능하게 했던 능력이다. 오늘날 조지아가 훌륭한 관광지로서 인기를 끌 수 있는 비결은 천혜의 자연과 더불어 이방인에게 쉽게 집의 문을 열어주고, 처음 만나는 사람과도 와인을 나누는 그들의 교감 능력이 큰 몫을 했으리라 생각한다.

이처럼 조지아는 올지도 모르는 미래를 걱정하기보다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감수하고 사랑하는 아모르 파티(Amor fati·사랑하라, 지금)를 실천하는 곳이다.
루수단 히자니쉬빌리 ‘The Black Horse River’(2023).
루수단 히자니쉬빌리 ‘The Black Horse River’(2023).
‘The Black Horse River’에서는 거대한 산맥을 등지고 달처럼 보이는 거울 앞에 반인반수가 있다. 발 아래는 검은 강이 흐르고 하늘엔 별이 가득하다. 강과 골짜기 등에 머물며 자연을 수호하는 님프가 연상되는 이 그림은 여성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남성성을 상징하는 수사슴 뿔이 있기에 달의 여신이자 사냥의 여신 아르테미스도 떠오른다.

이 간성의 존재는 거울 속에 비치는 과거를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자기 모습을 다짐이라도 하듯이 아르테미스가 들고 다닌 활 대신 간절한 소망의 장미 덩굴을 감싸 안고 있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산은 캅카스 지역의 산지로 보이는데, 그림 ‘A Walker’에서도 비슷한 지형의 산을 볼 수 있다. 작품 제목에서 ‘물 위를 걷는 자’라는 종교적 이미지를 떠올릴 수도 있고, 캅카스 너머의 거인이 산을 넘어와 강제로 묶은 연대의 역사, 소비에트 연맹에 속했던 조지아의 역사(부동항을 얻기 위한 러시아의 남하정책)를 말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꿈과 현실의 경계에 선 ‘모든 여신의 딸’

루수단은 한 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 손에 자랐다. 소비에트연방의 붕괴 후 조지아는 독립과 함께 자유시장경제를 채택했지만, 정치·경제적인 어려움은 지속됐다. 오랜 전쟁의 여파로 가부장적 문화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는 곳에서 작가는 어렸을 때부터 꿈꿔온 화가의 길을 꿋꿋이 걸어왔다.

한편으론 남성 중심 문화에 젖어 자신을 한계 짓지 않고 주도적인 삶을 살게 된 것은 이런 환경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루수단의 작품에는 여러 나라의 신화나 역사 철학, 그리고 문학작품 등에서 영향을 받은 다양한 내러티브가 전개된다.

그녀의 그림 속에서 인간과 동물 그리고 식물은 서로의 경계를 넘나들며 공존한다. 원시시대의 벽화와 그리스의 신화를 비롯한 고대 서사시, 조지아와 이민족의 민속, 그리고 기독교 도상학 등이 버무려진 그녀의 그림은 자신만의 사진적 프레임(클로즈업, 크로핑)을 통해 영화의 한 장면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생명, 보살핌, 치유로 상징되는 모든 여신의 딸인 그녀는 작품을 통해 꿈과 현실을 넘나들며 자신만의 활기차고 차별화된 마술적 사실주의를 완성하고 있다.

이장욱 스페이스K 수석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