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우리가 놓쳤을 위대한 작은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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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목적지보다 중요한 건
'이르는 길'에 마주하는 사소함
김현호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과 겸임교수
'이르는 길'에 마주하는 사소함
김현호 한양대 실내건축디자인과 겸임교수
![[아르떼 칼럼] 우리가 놓쳤을 위대한 작은 풍경들](https://img.hankyung.com/photo/202401/07.35491895.1.jpg)
지난가을, 어쩌면 <설국>의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한 번쯤은 지나쳤을지도 모를 일본 중북부 산악지대를 다녀온 적이 있다. 나고야에서 출발해 은둔의 마을 시라카와고, 가나자와 등을 여행했는데 어림잡아 60여 개의 터널을 연이어 지나야만 했다. 그 ‘국경의 긴 터널은 이런 것이었겠구나’ 생각하고 혼자 웃었다.
여행을 시작한 후 목적지만을 향해 무심코 풍경을 지나칠 때마다, 보물 같은 장면들을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아닌지 걱정될 때가 있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랜드마크’라는 이름의 목적지보다 그곳까지 ‘이르는 길’에 더 관심을 둔다. 비행기 안에서 착륙 직전 바라본 호주 시드니의 도시 풍경, 멜버른 와인 농장으로 이동하며 마주한-마치 하나의 악보 같았던-목가적 풍경들 말이다.
포르투갈의 포르투서 리스본까지 기차를 타고 이동할 때는 지나는 정거장마다 이야기가 가득했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중요한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교육 도시 코임브라역부터 세계적인 건축가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설계한 오리엔테 역사의 나무를 닮은 철재 구조물까지, 자칫 지나치기 쉬운 장소를 온몸으로 통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결같이 ‘고개를 잠시 돌려’ 구경한 작은 풍경과 오래된 이야기다.
우주의 별처럼 펼쳐진 ‘양’의 기억저장소에는 인간 가족과 얽힌 추억이 담긴 장소를 비롯해 ‘그야말로 특별할 것도 없는 풍경’이 가득 차 있다. ‘양’은 숲의 녹음, 벽에 드리워진 아침 햇살과 나무 사이로 지는 해넘이를 소중하게 기록해 놓았다.
다만, 영화와 상관없이 우리는 알고 있다. 오랜 사진 귀퉁이 한쪽마다 볼품없이 쌓아 놓은 책더미, 낡은 책상, 빛바랜 장난감, 차려입지 않은 가족의 자연스러운 모습 등이 우리를 더 아련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무엇을 향하는지도 모른 채 종종 작은 목표에 집착한 때가 있다. 그때 원인 모를 불안함을 느낀 이유는 아마도 ‘출발지’와 ‘목적지’에만 의미를 부여하려고 한 좁은 생각 때문이었던 건 아닐까. 흘러가는 시간 속에 두리번거리며 사소한 풍경을 바라볼 줄 알았다면 참 좋았을 텐데…. 오늘의 산책에선 고개를 돌려 조금은 다른 장면을 보기를, 후회도 아쉬움도 없는 나날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