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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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에 위치한 A공공기관은 지난 2021년 발표된 감사 결과 임금피크 적용 대상자 39명 가운데 8명이 퇴직금을 의도적으로 최대 2000만원까지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퇴직 직전 초과근무를 몰아서 해 수당을 늘려 평균임금을 증가시키는 방식이었다.

B기업 창업주는 회사가 어려운 가운데에도 퇴직 직전에 월 급여를 갑자기 '셀프 인상'했다. 40년 가까이 재직한 그는 이 조치로 퇴직금을 백억 원 넘게 챙겨 눈총을 받았고 결국 국세청 조사를 받게 됐다.

6일 노무 업계에 따르면 퇴직연금 미도입 사업장을 중심으로 퇴직 직전에 근무량이나 근무 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퇴직금을 부풀리는 일이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퇴직금은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계산한다. 평균임금이란 퇴직 사유가 발생한 날 이전 3개월 동안에 근로자에게 지급된 임금의 총액을 그 기간의 총일수로 나눈 금액이다. 근속기간 1년에 대해 30일 치의 평균임금이 퇴직금으로 지급된다.

○장기근속자, 3개월 바짝 일하면 '수천만 원' 급증

장기근속자라면 평균임금이 10만원만 늘어나도 최소 수백만 원의 퇴직금이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어 퇴직금 끌어올리기의 유혹이 작지 않다.

한 공인노무사는 "근로 시간 등 초과근로를 늘리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라며 "성과 수당 등을 통해 단시간에 임금을 부쩍 늘릴 수 있는 영업직군이나 택시업계 등에서 주로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진 바 있다"고 설명했다.

한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는 "일부 대형 공기업에서도 업무 분담을 할 때 퇴직을 앞둔 직원에게 예우 차원에서 일감이나 수당이 있는 업무를 대폭 몰아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장기 근속자의 경우 3개월 바짝 일하면 퇴직금이 수천만 원까지 늘어나는 경우가 있다"고 귀띔했다.

법원은 평균임금 '뻥튀기'가 도를 지나친 경우엔 통제하기도 한다. 퇴직금의 목적이 근로자의 '통상적인 생활임금'을 보장하는 데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퇴직 사유가 발생한 날 이전 3월간 그 근로자에게 지급된 임금 총액이 '특별한 사유'로 평소보다 '현저하게' 적거나 많을 경우에는 이를 평균임금으로 인정하지 않는다(97다5015).

실제로 △퇴직 전 3개월의 임금이 그 이전 5개월간 월 평균임금에 비해서 약 73%가량 증가한 사안(94다8631 판결) △택시 기사가 퇴직금을 더 많이 받기 위해 의도적으로 퇴직 직전 5개월 동안 평소보다 사납금 초과 수입금을 납부한 사안(2007다72519)에서는 일반적인 퇴직금 산정 기준을 쓸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대법원은 퇴직 직전 3개월간 근로자의 임금이 과도하게 적었던 경우엔, 정상적으로 임금을 지급받은 최종 시점의 직전 3개월분 평균임금을 퇴직금으로 계산한 바 있다.

하지만 퇴직금 부풀리기를 기업 차원에서 단속하기는 쉽지 않다. 평균임금이 평소보다 어느 정도로 적거나 많아야 법원의 말대로 '현저한 차이'가 있다고 볼 것인지, 그리고 어떠한 경우를 '특별한 사유'가 존재한다고 볼 것인지는 모호하기 때문이다.

○경영성과급도 퇴직금에 포함?...대법원 판결 올해 나올듯

사기업의 경영성과급(PS·PI)이 평균임금에 해당하는지도 퇴직금 급등 이슈와 직결된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삼성SDI, LG디스플레이 등에서는 근로자들이 "성과급(PS-PI)을 포함해 평균임금을 다시 계산하고, 모자란 퇴직금을 추가로 달라"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대법원에 수년째 계류 중이다. 올해 안에 선고될 것이 유력하다.

기업들은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이슈다. 특히 대기업의 경우 성과급이 기본급의 수백, 많게는 수천 퍼센트에 달하는 경우도 있다. 단순하게 계산해서 20년을 일한 근로자가 600만원의 성과급을 받은 경우 이를 평균임금에 포함한다면 대략 잡아도 4000만원가량의 퇴직금이 늘어나는 셈이다. 특히 성과급을 '임금'으로 볼 수 있을지의 문제로도 연결돼 치열한 노사 간 대립이 벌어지고 있는 이슈다.

최근에는 HD 현대중공업 등 주요 대기업 노조도 추가로 참전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미 공공기관의 '경영평가성과급'은 평균임금이라는 대법원판결이 나온 바 있다.

일각에서는 퇴직금 제도의 평균임금 개념과 산정 시기를 좀 더 명확하게 손봐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된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퇴직연금제도에서는 사용자의 부담금을 '연간' 임금총액의 12분의 1 이상으로 정하고 있다"며 "퇴직금 제도 역시 평균임금 산정 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1년 단위로 개정하는 방법을 고민해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