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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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닛케이225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주가연계증권(ELS)의 발행액이 지난해 4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5배 급증했다. 지수 ELS는 기초자산 값이 높을 때 발행하면 손실 위험이 커진다. 최근 홍콩 H지수 ELS가 무더기 손실 위험에 처한 것도 지수가 고점을 찍었을 때 대량 발행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이 지적한 무리한 ELS 판매 관행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닛케이225지수 ELS의 지난해 4분기 발행액은 3조7238억원으로 집계됐다. 직전 3분기(3조2036억원) 대비 16.2% 늘었고, 전년 동기(7597억원) 대비 390.2% 급증했다. 닛케이225지수는 2021~2022년 횡보하다가 지난해 초부터 급등하기 시작했다. 지수가 높아지자 이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 발행액이 함께 늘어난 것이다.
닛케이225지수 그래프
닛케이225지수 그래프
지수 ELS는 크게 녹인(knock-in)형과 노녹인(no knock-in)형으로 구분된다. 녹인형은 만기(보통 3년) 전에 지수가 한번이라도 녹인지점(발행 당시 값의 50% 내외) 아래로 떨어진 적이 있으면, 만기일에 안전마진지점(70~80%) 위로 올라와야 손실을 피할 수 있다. 노녹인형은 지수가 어떤 경로로 지나가든 관계없이 만기일에 안전마진지점(65% 내외) 위로 올라와 있으면 된다.

2000년 이후 닛케이225지수의 흐름을 보면 고점을 찍고 3년 내 50% 이하로 떨어진 사례가 몇번 있었다. 2000년 4월에는 20,800대 이상까지 높아졌다가 3년을 채우기 직전인 2003년 3월 7,800대까지 곤두박질쳤다. 2007년 7월에는 18,200대까지 높아졌다가 이듬해 7,100대까지 주저앉았다. 최근 닛케이225지수는 당시 고점보다도 높은 23,300대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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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자산 지수가 높을 때 ELS 발행이 많이 되는 건 이런 상품의 수익률을 높게 책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금융사는 ELS를 개인 투자자에게 판매한 뒤 대부분 외국계 투자은행(IB)과 백투백 계약을 맺어 수익금 지급 위험(리스크)을 관리한다. 지수가 횡보하거나 상승해 국내 금융사가 ELS 투자자에게 중도·만기 수익금을 줘야 하는 상황이 되면, 백투백 계약을 맺은 외국계가 이 돈을 국내 금융사에게 주고 국내 금융사는 이 돈을 투자자에게 지급한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외국계 IB가 고점을 찍은 지수 ELS에 대한 백투백 계약을 후하게 맺어주는 편"이라며 "이 때문에 국내 금융사는 직원에게 '이런 ELS를 높은 수익률을 내세워 적극 판매하라'고 독려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다른 증권사 관계자도 "금융사의 권유 때문이기도 하지만, 투자자 스스로도 '상승하는 지수는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낙관적 편향 때문에 이미 높아진 지수 ELS를 선택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홍콩 H지수 그래프
홍콩 H지수 그래프
H지수가 고점 대비 폭락한 최근 상황에서는 이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에 투자하는 게 오히려 안전하다. 그러나 H지수 ELS 발행은 2020년 4분기 4조2516억원에서 지난해 4분기 1조199억원으로 되려 급감했다. 주요 시중은행 등은 H지수 ELS 판매를 중단한 상태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