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채납(공공기여)으로 건설된 서울 양재동 헌릉로 사용권을 두고 서울시와 하림그룹이 치열한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1심에선 서울시가 패해 그동안의 무단점유 비용 362억원을 이미 지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 진행 중인 2심 재판 결과에 따라 점유 종료일까지 매달 5억8300만원의 사용료도 물어야 할 상황이다. 양재동 일대를 물류단지로 개발하다가 좌초한 ‘양재 파이시티 사업’의 불똥이 서울시로 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기부채납 받았는데 서울시 ‘날벼락’

[단독] 양재동 도로 놓고 서울시-하림 '360억 혈투'
8일 김인제 서울시의원에 따르면 케이비부동산신탁과 사업시행자 하림산업은 2021년 3월 서울시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 청구소송을 냈다. 소송 대상지는 양재동 225 등 5필지(8675.25㎡)에 완공된 헌릉로 연결도로다. 복합유통센터 건립을 추진하던 파이시티와 파이랜드가 서울시에 공공기여한 시설이다. 시는 2008년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열고 업무시설 비율을 20%까지 올려주는 조건으로 도로를 기부채납 받는 내용의 도시계획안을 조건부 승인했다. 이후 관할 자치구인 서초구가 실시계획을 인가했다.

하지만 서울시 인허가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사건이 터진 여파로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한 파이시티가 2014년 파산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파이시티가 지으려던 물류시설은 삽을 뜨기도 전에 무산됐다. 반면 도로시설은 이에 앞서 2013년 준공됐다. 서울시가 인근에 짓기로 한 서울추모공원 진입도로 확보를 위해 해당 부지 공사를 서두른 결과였다.

2016년 도로를 포함한 양재동 물류센터 부지를 매입한 하림그룹은 2021년 서울시가 그동안 도로용지를 무단으로 사용·점유해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라고 소를 제기했다.

양측은 1심 재판에서 파이시티와 파이랜드가 서울시에 제출한 기부채납 확약서와 토지사용승낙서가 유효한지 여부를 두고 다퉜다. 하림 측은 “도로용지의 무상 사용은 기부채납 조건이 효력을 상실한 즉시 중단돼야 했으나 현재까지 서울시가 해당 도로를 점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서울시 측은 “공매로 취득한 하림이 도로편입 부지에 대한 수익제한 부담을 알고도 토지를 매수했다”며 “부당이득반환을 청구할 수 없다”고 맞섰다.

하림 “부당 이용” vs 시 “반환 대상 아냐”

1심 재판부가 하림의 손을 들어주면서 시는 362억원의 무단사용료를 지급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22부(부장판사 정재희)는 “파이시티는 이 사건 부지의 소유자가 아니므로 처분권한을 갖고 있지 않고, 처분권한을 부여받은 사정도 보이지 않는다”며 하림 측 주장을 상당 부분 들어줬다.

기부채납 계약을 맺을 당시 파이시티가 해당 토지를 한국자산신탁과 우리은행에 신탁한 상황인 관계로 법적 권한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시가 재산권 행사 권한이 없는 상대와 기부채납 계약을 체결했다는 얘기다.

1심 판결로 서울시는 2016년 5월부터 6년간의 사용료와 이자 8억6000만원가량을 더해 총 362억원을 하림 측에 지급했다. 점유 종료일까지 매달 5억8300만원의 사용료도 내야 하는데 시는 이 부분은 2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지급을 유예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사용료의 경우 1심 판결 이후부터 월 12%의 이자가 붙기 때문에 예비비를 활용해 가집행했다”고 설명했다. 양측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현재 2심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번 사건으로 시민들의 혈세가 새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