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태 칼럼] 대통령이 사무관 보고를 받아보면 어떨까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서울 통의동에서 당시 편집국장 몇 명과 번개 오찬을 한 적이 있다. 여러 질문답변이 오가던 중 국정 운영 방식과 관련해 “박정희 리더십을 공부하고 있다”며 “박 전 대통령은 사무관을 직접 불러 보고받기도 했다고 하는데 나도 그런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했다. 박정희의 ‘관료 용인술’을 배워보고 싶다는 거였다.

그러면서 본인의 경험도 얘기했다. “검찰총장 때 중요한 수사 보고를 받을 때는 항상 선임검사를 자리하도록 했다. 회의가 끝나면 다 내보내고 그 선임검사와 마주 앉아 30분가량 더 대화하곤 했다. 그러면 수사의 전체 맥락이 정확히 파악된다.”

당시 윤 대통령의 말을 듣고 귀가 솔깃했다. 대통령이 나서 일선 공무원과 직접 소통하면 ‘복지부동(伏地不動)’으로 대변되는 관료사회가 많이 달라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였다. 사실 정책이란 게 아무리 훌륭해도 실행하는 공무원들이 밑에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모든 정권마다 규제를 혁파하겠다며 대통령이 부르짖어도 한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는 실행 조직인 공직사회가 꿈쩍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대가 컸던 걸까. 윤 대통령 취임 후 2년이 가까워 오지만 지금까지 대통령이 사무관, 과장한테 직보를 받았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다. 대통령과 관료들이 한 몸처럼 움직여도 부족할 판에 대통령을 대하는 공무원들의 자세는 더 굳어지는 분위기다.

사실 지금 공직사회는 최악을 넘어 붕괴 직전이다. 대한민국을 이끌던 관료 조직이 이렇게 된 데는 지난 문재인 정부가 결정적인 단초를 제공했다. 모든 부처마다 이른바 ‘적폐 청산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이전 정부에 충성한 공무원을 일망타진하다시피 했으니, 가뜩이나 영혼 없는 공무원들의 몸 사리기는 더욱 심해졌다. 익히 알고 있는 대로 탈원전 등 정권 핵심 아젠다에 미온적이던 산업통상자원부 등 몇몇 부처는 핵심 공무원이 줄줄이 옷을 벗고 산하 기관장까지 숙청 대상에 오르는 등 쑥대밭이 됐다. 산업부 공무원들은 전 정권 지시를 충실히 이행했다는 죄목으로 현직 국·과장이 구속까지 된 트라우마에서 아직도 헤어나지 못한다.

이 정부 들어서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공무원 조직이 잘 움직이지 않는다며 책임 있는 장관은 그대로 둔 채 중앙부처 실·국장을 잇달아 경질하는 것을 보면서 하급 공무원들 사이에선 “바짝 엎드려 있는 게 최선이구나”라는 생각이 빠른 속도로 확산했다. 세종 관가에서는 복지부동은 옛말이고, 이젠 얼음장 밑에 꽁꽁 얼어붙어 눈조차 깜빡하지 않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 한다. 대통령이 노동, 연금, 교육 등 3대 분야 개혁을 외쳐도 디테일을 채우고 실행해야 할 관료사회는 요지부동이다. 급기야 하급 공무원조차 보고서를 만들 때 자신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실수’(실장이 수정을 지시했다는 의미) ‘국수’ ‘과수’를 메모해 넣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니,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다.

윤 대통령이 닮고 싶어 한 박정희는 확실히 관료를 다루는 데 능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본격 추진하던 시기에는 매달 경제기획원을 찾아가 경제동향을 보고받는 자리에 사무관이나 과장들을 참여시켜 수시로 질문을 던졌다. 브리핑을 사무관이나 과장한테 맡긴 경우도 많았다. 비슷한 장면은 윤 대통령이 산업부 창고에서 찾아 읽어봤다는 당시 수출진흥회의 자료에도 나온다. 박정희는 이런 식으로 젊은 관료들의 열정과 충성을 끌어냈고, 고위직에는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대다수 공무원이 ‘박정희 주식회사’ 사원이라는 사명감으로 똘똘 뭉쳤다. 박정희 집권 18년 동안 대통령과 관료가 한 몸처럼 움직였기에 ‘한강의 기적’이 가능했다는 게 당시 관료들의 술회다.

마침 윤 대통령이 새해 부처 업무보고를 민생 주제별로 현장을 찾아 토론회 형식으로 열고 있다고 한다. 현장 목소리를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무관이나 서기관한테 보고를 시켜 직접 대화해보는 것은 어떨까. 일선 공무원들은 대통령 앞에서 정책을 브리핑할 기대감에 부풀어 밤을 새워 보고서 작성에 매진할 것이다. 이런 식의 작은 변화라도 시도해 공직 사회에 신바람을 불어넣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