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김지인 씨(가명·20대 후반)는 5인 가족의 가장이다. 66.1㎡(20평) 규모 노후 주택의 월세 130만원, 통신비 20만원, 교통비 20만원 등 각종 생활비를 지출하고 나면 수중에 남는 돈은 얼마 안 된다.
김 씨가 사실상 가장 역할을 한 건 대학생 때부터다.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신용불량자가 됐고, 어머니는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아 거동이 불편하다. 김 씨와 그의 형제들은 매달 50만원씩 모아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다. 김 씨는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다. 그는 "한 학기에 400만원인 대학 등록금을 내기 위해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고 했다.
그가 졸업하기 직전 코로나19 대유행 사태가 벌어지면서 필라테스 강사이자 카페 사장인 언니가 직격탄을 맞았다. 집안 사정이 전보다 더 나빠지면서 김 씨는 졸업을 한 학기를 남기고 생계전선에 뛰어들었다. 한 중견기업에 입사해 비서로 일했다.
하지만 다니던 회사의 경영난으로 김 씨는 작년 6월 퇴사했다. 그는 서울시의 복지실험인 '안심소득' 프로그램 참여자로 선정돼 월 190만원을 받게 되면서 아직은 큰 문제 없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안심소득은 중위소득의 85%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기준액(중위소득 85%)과 실제 소득 간 차액의 절반을 지원해주는 정책이다.
김 씨는 중단했던 학업을 마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다면 영어, 미술 등 다양한 공부를 마음껏 하고 싶다고 했다. 돈 걱정 없이 자기 계발을 하는 것이 소망이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울 거주 중인 20대 후반 김지인(가명)입니다. 2남 1녀 중 막내로 집안에서 가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 언니, 오빠와 함께 생활하다가 몇 달 전 언니가 결혼하면서 4인 가족이 됐습니다.
▶원래 어떤 일에 종사하셨었나요?
건설 관련 중견기업의 비서로 3년 넘게 근무했습니다. 첫 직장이었습니다. 회사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지난해 6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게 됐습니다.
회사는 시행이 예정된 토지를 경매나 공매로 낙찰받아서 수익을 내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보상일자가 미뤄지는 일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회사를 나왔습니다.
▶직장 다닐 때 월 소득은 얼마였나요?
연봉 3500만원(월급 기준 250만원)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을 어떻게 보내셨고, 어떤 계기로 비서 일을 시작하게 됐나요?
미술 역사 등을 공부하는 미술사학과를 전공했습니다.
집안 사정이 안 좋다 보니 용돈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제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생활비를 부모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한 학기에 400만원가량 되는 학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습니다.
일하면서 장학금을 탈 수 있을 만큼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학비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다가 졸업까지 한 학기 남긴 상황에서 취직했습니다. 저축해서 마지막 학기 학비를 마련해 졸업은 하려고 합니다.
▶자신을 위해 쓰는 돈과 시간이 매우 부족했을 것 같습니다.
네, 돈을 벌면 족족 다 학비로 나가니까 다른 데 쓸 돈이 없었습니다. 대학생 때는 친구들끼리 여행도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고 그랬는데, 다 포기했던 것 같습니다.
▶현재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스마트스토어를 홍보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등 여러 마케팅 채널을 관리하는 일입니다. 매달 120만원 정도 받습니다.
▶가족 구성이 어떻게 되나요?
세대주였던 언니까지 해서 다섯 명이었는데 언니가 작년 9월에 분가하면서 세대주가 저로 바뀌었습니다.
▶다른 가족들도 경제 활동을 하나요?
월세, 생활비 등을 형제들과 나눠서 부담하고 있습니다.
언니는 필라테스 강사를 하면서 월평균 130만~150만원을 법니다. 코로나 때 직격탄을 맞아 수입이 많이 줄었습니다. 운영했던 카페도 이때 파산했습니다. 오빠는 직장을 제대로 다니는 건 아니고 친구의 가게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빚이 많습니다. 자식들에게도 그 규모를 밝힌 적이 없습니다. 신용 문제로 통장을 개설할 수도 없어서 공식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머니는 육체노동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전부터 류머티즘을 심하게 앓고 계셔서 거동이 불편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떤 분야의 사업을 하셨나요?
건강식품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일, 주유소 운영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업을 벌였습니다.
▶사업이 잘 풀리던 시절도 있었나요?
네, 당시 저희가 살던 집은 경기도에 있었는데 집 크기가 264.4㎡(80평)이 넘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저를 ‘반에서 제일 잘 사는 애’로 인식했습니다.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나요?
중학생이던 시절부터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안의 어려움을 잘 몰랐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집 크기는 80평대에서 20평대로 쪼그라들었습니다. 낡고 지저분한 30년 된 빌라에서 다섯 명이 살게 되면서 가족 모두 예민해지고 우울해졌던 것 같습니다.
▶주거 환경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나요?
물이 많이 새고, 지저분합니다. 여름과 겨울에는 벽면에 곰팡이가 많이 생깁니다. 변기는 자주 막히고, 문에 칠해놓았던 페인트도 많이 벗겨졌습니다. 벌레도 자주 나옵니다. 개미는 가족의 ‘동거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월세는 누가 내나요?
제가 부담하고 있습니다. 월세 전기세 수도세 등 각종 비용을 다 포함하면 매달 130만원이 나갑니다.보증금은 3000만원인데, 집을 계약할 때 친척들의 도움을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월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월세가 저렴한 집을 찾아본 적은 없나요?
발품을 팔아봤지만 지금 사는 집처럼 방 세 개가 있는 20평대 집이 많지 않더라고요. 일단은 집이 많이 노후되고 지저분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 쓰던 살림살이도 워낙 많아서 이사 온 지 8년이 넘었음에도 짐 정리를 다 못했습니다. 어쩌면 집안을 가득 채운 짐이 우울감을 더 증폭시킨 원인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이전 집에 맞춰 쓰던 가구가 이제는 너무 큽니다. 책과 옷더미도 집안을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패처럼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도 많고요. 쓸모는 없는데 차마 버릴 수는 없는 '애물단지'가 가득합니다.
최근에는 날을 잡고 대청소를 했습니다. 이때 당근마켓에 판 물건만 약 15만원어치나 됐습니다. 덕분에 집이 예전보다는 편안한 공간이 됐습니다.
일단은 여기서 조금 더 버텨보면서 임대주택을 신청하거나 임대료가 저렴한 곳으로 갈 계획입니다. ▶생활비는 어떻게 감당하나요?
부모님이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시는 만큼 형제들이 생활비를 50만원씩 갹출해서 냈습니다. 월세는 언니가 대부분을 내다가 현재는 제가 해결하고 있습니다.
가계 지출에서 통신비, 교통비 비중이 큽니다. 4인 가족 통신비와 교통비 각각 20만원씩 내고, 수도세 전기세 등 공공요금 약 10만 원이 나갑니다. 월세는 관리비 포함해 130만원입니다.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생활이 되나요?
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합니다. 다행인 건 저희 집이 차상위 계층이어서 정부 지원을 조금 받고 있습니다.
2022년에 월 20만원의 주거급여를 받았습니다. 같은 해 7월부터는 서울시 안심 소득을 수급하고 있습니다. 5인 가족 기준으로 초반에는 월 40만원을 받았습니다. 지난 6월 퇴사하고 5인에서 4인 가족으로 바뀌면서 수급액이 190만원으로 올랐습니다.
예전에는 물티슈, 휴지 등 생필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안 사거나 그냥 없이 살곤 했습니다.
안심 소득을 받고 나서부터는 없을만하면 채우는 식으로 소비하고 있습니다.
▶본인한테 쓰는 돈도 늘었나요?
안심 소득으로 월세 내고 뭐 내고 하면 사실 풍족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세대주가 되고 보니까 건강보험료 250만원 정도가 미납돼 있더라고요. 미납하면 계속 이자가 붙으니까 매달 30~40만원씩 분할 납부하고 있습니다.
집순이라 취미가 딱히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족들과 외식 한번 안 했습니다.
시간이 생긴 것이 나름 사치입니다. 퇴사한 뒤 월세 걱정 없이 제 시간을 쓸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안심 소득은 3년 동안 진행되는 실험입니다. 2025년 7월에 끝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수급 종료일이 다가올수록 불안함이 커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 전에 이사를 하고 연체된 보험료도 해결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고자 합니다.
▶어떤 일을 도전해보고 싶나요?
글쎄요. 현실적으로 경력을 살려서 비서직에 도전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달 중으로 구직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돈 걱정이 없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요?
배우는 곳에 돈을 아끼지 않고 싶은 마음이에요.
어학, 일러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학원에 다니고 싶습니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다양한 재능을 계발하고픈 욕심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역량개발 목적으로 교육받고 싶어요. 소득을 올리려면 그만큼 경쟁력을 키워야 하잖아요.
요즘 유튜브를 보면서 영어를 독학하고 있긴 한데 강제성이 있어야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으면 토익학원에 다니려고 합니다. 기회가 되면 대학원도 다니고 싶습니다.
▶올해 바라는 점, 계획이 있나요?
가족을 생각한다면 주거 안정화가 급선무입니다. 안심소득 수급이 끊기는 시점이 계속 다가오고 있어서 월세가 저렴한 곳으로 이사 가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잉여 시간을 잘 활용해서 자기 계발을 하는 게 가장 큰 목표인 것 같습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
김 씨가 사실상 가장 역할을 한 건 대학생 때부터다.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신용불량자가 됐고, 어머니는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아 거동이 불편하다. 김 씨와 그의 형제들은 매달 50만원씩 모아 부모님께 용돈을 드렸다. 김 씨는 학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다. 그는 "한 학기에 400만원인 대학 등록금을 내기 위해 안 해 본 아르바이트가 없다"고 했다.
그가 졸업하기 직전 코로나19 대유행 사태가 벌어지면서 필라테스 강사이자 카페 사장인 언니가 직격탄을 맞았다. 집안 사정이 전보다 더 나빠지면서 김 씨는 졸업을 한 학기를 남기고 생계전선에 뛰어들었다. 한 중견기업에 입사해 비서로 일했다.
하지만 다니던 회사의 경영난으로 김 씨는 작년 6월 퇴사했다. 그는 서울시의 복지실험인 '안심소득' 프로그램 참여자로 선정돼 월 190만원을 받게 되면서 아직은 큰 문제 없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안심소득은 중위소득의 85% 이하 가구를 대상으로 기준액(중위소득 85%)과 실제 소득 간 차액의 절반을 지원해주는 정책이다.
김 씨는 중단했던 학업을 마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다면 영어, 미술 등 다양한 공부를 마음껏 하고 싶다고 했다. 돈 걱정 없이 자기 계발을 하는 것이 소망이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울 거주 중인 20대 후반 김지인(가명)입니다. 2남 1녀 중 막내로 집안에서 가장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 언니, 오빠와 함께 생활하다가 몇 달 전 언니가 결혼하면서 4인 가족이 됐습니다.
▶원래 어떤 일에 종사하셨었나요?
건설 관련 중견기업의 비서로 3년 넘게 근무했습니다. 첫 직장이었습니다. 회사 사정이 안 좋아지면서 지난해 6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그만두게 됐습니다.
회사는 시행이 예정된 토지를 경매나 공매로 낙찰받아서 수익을 내는 일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보상일자가 미뤄지는 일이 점점 늘어났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회사를 나왔습니다.
▶직장 다닐 때 월 소득은 얼마였나요?
연봉 3500만원(월급 기준 250만원)이었습니다.
▶학창 시절을 어떻게 보내셨고, 어떤 계기로 비서 일을 시작하게 됐나요?
미술 역사 등을 공부하는 미술사학과를 전공했습니다.
집안 사정이 안 좋다 보니 용돈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제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면서 생활비를 부모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한 학기에 400만원가량 되는 학비를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었습니다.
일하면서 장학금을 탈 수 있을 만큼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었습니다. 학비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다가 졸업까지 한 학기 남긴 상황에서 취직했습니다. 저축해서 마지막 학기 학비를 마련해 졸업은 하려고 합니다.
▶자신을 위해 쓰는 돈과 시간이 매우 부족했을 것 같습니다.
네, 돈을 벌면 족족 다 학비로 나가니까 다른 데 쓸 돈이 없었습니다. 대학생 때는 친구들끼리 여행도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고 그랬는데, 다 포기했던 것 같습니다.
▶현재는 어떤 일을 하고 있나요?
스마트스토어를 홍보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블로그 등 여러 마케팅 채널을 관리하는 일입니다. 매달 120만원 정도 받습니다.
▶가족 구성이 어떻게 되나요?
세대주였던 언니까지 해서 다섯 명이었는데 언니가 작년 9월에 분가하면서 세대주가 저로 바뀌었습니다.
▶다른 가족들도 경제 활동을 하나요?
월세, 생활비 등을 형제들과 나눠서 부담하고 있습니다.
언니는 필라테스 강사를 하면서 월평균 130만~150만원을 법니다. 코로나 때 직격탄을 맞아 수입이 많이 줄었습니다. 운영했던 카페도 이때 파산했습니다. 오빠는 직장을 제대로 다니는 건 아니고 친구의 가게에서 일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사업 실패로 빚이 많습니다. 자식들에게도 그 규모를 밝힌 적이 없습니다. 신용 문제로 통장을 개설할 수도 없어서 공식적으로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어머니는 육체노동을 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전부터 류머티즘을 심하게 앓고 계셔서 거동이 불편하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떤 분야의 사업을 하셨나요?
건강식품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일, 주유소 운영 등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업을 벌였습니다.
▶사업이 잘 풀리던 시절도 있었나요?
네, 당시 저희가 살던 집은 경기도에 있었는데 집 크기가 264.4㎡(80평)이 넘었습니다. 초등학생 때는 같은 반 친구들이 모두 저를 ‘반에서 제일 잘 사는 애’로 인식했습니다.
▶가세가 기울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나요?
중학생이던 시절부터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집안의 어려움을 잘 몰랐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집 크기는 80평대에서 20평대로 쪼그라들었습니다. 낡고 지저분한 30년 된 빌라에서 다섯 명이 살게 되면서 가족 모두 예민해지고 우울해졌던 것 같습니다.
▶주거 환경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졌나요?
물이 많이 새고, 지저분합니다. 여름과 겨울에는 벽면에 곰팡이가 많이 생깁니다. 변기는 자주 막히고, 문에 칠해놓았던 페인트도 많이 벗겨졌습니다. 벌레도 자주 나옵니다. 개미는 가족의 ‘동거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월세는 누가 내나요?
제가 부담하고 있습니다. 월세 전기세 수도세 등 각종 비용을 다 포함하면 매달 130만원이 나갑니다.보증금은 3000만원인데, 집을 계약할 때 친척들의 도움을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월세 부담을 줄이기 위해 월세가 저렴한 집을 찾아본 적은 없나요?
발품을 팔아봤지만 지금 사는 집처럼 방 세 개가 있는 20평대 집이 많지 않더라고요. 일단은 집이 많이 노후되고 지저분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예전에 살던 집에서 쓰던 살림살이도 워낙 많아서 이사 온 지 8년이 넘었음에도 짐 정리를 다 못했습니다. 어쩌면 집안을 가득 채운 짐이 우울감을 더 증폭시킨 원인 중 하나였던 것 같습니다.
이전 집에 맞춰 쓰던 가구가 이제는 너무 큽니다. 책과 옷더미도 집안을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상패처럼 과거의 영광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도 많고요. 쓸모는 없는데 차마 버릴 수는 없는 '애물단지'가 가득합니다.
최근에는 날을 잡고 대청소를 했습니다. 이때 당근마켓에 판 물건만 약 15만원어치나 됐습니다. 덕분에 집이 예전보다는 편안한 공간이 됐습니다.
일단은 여기서 조금 더 버텨보면서 임대주택을 신청하거나 임대료가 저렴한 곳으로 갈 계획입니다. ▶생활비는 어떻게 감당하나요?
부모님이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시는 만큼 형제들이 생활비를 50만원씩 갹출해서 냈습니다. 월세는 언니가 대부분을 내다가 현재는 제가 해결하고 있습니다.
가계 지출에서 통신비, 교통비 비중이 큽니다. 4인 가족 통신비와 교통비 각각 20만원씩 내고, 수도세 전기세 등 공공요금 약 10만 원이 나갑니다. 월세는 관리비 포함해 130만원입니다.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생활이 되나요?
늘 허리띠를 졸라매야 합니다. 다행인 건 저희 집이 차상위 계층이어서 정부 지원을 조금 받고 있습니다.
2022년에 월 20만원의 주거급여를 받았습니다. 같은 해 7월부터는 서울시 안심 소득을 수급하고 있습니다. 5인 가족 기준으로 초반에는 월 40만원을 받았습니다. 지난 6월 퇴사하고 5인에서 4인 가족으로 바뀌면서 수급액이 190만원으로 올랐습니다.
예전에는 물티슈, 휴지 등 생필품이 다 떨어질 때까지 안 사거나 그냥 없이 살곤 했습니다.
안심 소득을 받고 나서부터는 없을만하면 채우는 식으로 소비하고 있습니다.
▶본인한테 쓰는 돈도 늘었나요?
안심 소득으로 월세 내고 뭐 내고 하면 사실 풍족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세대주가 되고 보니까 건강보험료 250만원 정도가 미납돼 있더라고요. 미납하면 계속 이자가 붙으니까 매달 30~40만원씩 분할 납부하고 있습니다.
집순이라 취미가 딱히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가족들과 외식 한번 안 했습니다.
시간이 생긴 것이 나름 사치입니다. 퇴사한 뒤 월세 걱정 없이 제 시간을 쓸 수 있게 된 것이 가장 만족스럽습니다.
안심 소득은 3년 동안 진행되는 실험입니다. 2025년 7월에 끝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수급 종료일이 다가올수록 불안함이 커지는 건 사실입니다. 그 전에 이사를 하고 연체된 보험료도 해결하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고자 합니다.
▶어떤 일을 도전해보고 싶나요?
글쎄요. 현실적으로 경력을 살려서 비서직에 도전해야 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달 중으로 구직 활동을 할 계획입니다.
▶돈 걱정이 없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요?
배우는 곳에 돈을 아끼지 않고 싶은 마음이에요.
어학, 일러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학원에 다니고 싶습니다.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다양한 재능을 계발하고픈 욕심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역량개발 목적으로 교육받고 싶어요. 소득을 올리려면 그만큼 경쟁력을 키워야 하잖아요.
요즘 유튜브를 보면서 영어를 독학하고 있긴 한데 강제성이 있어야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요.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으면 토익학원에 다니려고 합니다. 기회가 되면 대학원도 다니고 싶습니다.
▶올해 바라는 점, 계획이 있나요?
가족을 생각한다면 주거 안정화가 급선무입니다. 안심소득 수급이 끊기는 시점이 계속 다가오고 있어서 월세가 저렴한 곳으로 이사 가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잉여 시간을 잘 활용해서 자기 계발을 하는 게 가장 큰 목표인 것 같습니다.
최해련 기자 haery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