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음악마저 1등부터 줄을 세워야 하는가
학기 말에 전공 실기시험 심사를 마치고 나면 여러 종류의 학생을 만난다. 성적이 올라가서 기뻐하는 학생, 반대로 성적이 내려가 눈물까지 보이는 학생도 본다. 분야를 막론하고 예나 지금이나 일류 대학이 인생의 목표이다 보니 교육과정은 기형적으로 바뀌고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열린 사고는 더욱 어려워졌다. 음악 역시 주입식 교육으로 오직 입시를 위한 레슨을 받고 치열한 경쟁을 어려서부터 경험하며 우월의식 또는 패배의식을 경험한다.

물론 기본기를 다지는 데 주입식 교육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음악은 정답이 없다.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으며 음악에선 자신만의 색깔을 낼 줄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한 소양인데 모두가 그저 큰 소리, 높고 화려한 음역대를 보여주기 위한 공부에만 너무 집중해 아쉽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입시에서 몹시 어려운 레퍼토리를 잘 부르던 학생을 입학 후 만나 보면 아주 쉬운 곡도 어떻게 악보를 보고 혼자 연습해야 하는지 모르는 학생이 너무 많아서 놀란 적이 여러 번이다.

독일 유학 시절을 떠올려 보니 입학시험을 제외하고는 졸업 연주까지 시험이라는 제도하에 학생들의 음악을 등수로 평가하는 일이 없었다. 매 학기 각 지도교수 클래스 연주로 학생들의 기량을 보여주는 연주가 있었을 뿐 등수를 위한 음악 공부는 없었다.

성악은 신체 조건, 성량, 음역대, 소리의 질감 등 타고난 각각의 악기에서부터 이미 큰 차이가 날 수 있다. 또 그런 조건과 더불어 타고난 음악성, 가사의 적절한 표현 등이 올바른 발성과 함께 요구된다. 발성에 대한 고민과 연구 그리고 연습은 당연한 숙제이나 소리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한마디로 득음, 즉 소리가 트이는 때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인내가 필요하다. 어느 날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소리의 길을 찾았다고 하더라도 방심하는 순간 다시 잃을 수 있으므로 끝없이 연습하고 탐구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활동하는 한국 음악가가 적지 않고, 글로벌한 음악 교육을 받고 한국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선생님도 많아진 가운데 과연 우리나라 음악 교육은 얼마나 성장한 걸까? 독일, 프랑스, 미국, 영국, 일본, 한국의 음악 교육에 대한 논문을 보니 유럽권 국가들은 인격 형성과 집중력, 사회성을 기르는 데 음악 교육의 목적을 두고 역사 등 다양한 교양교육을 병행한다. 반면 미국, 일본, 한국은 음악적 능력과 감성교육에 치중된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음악 교육의 목표를 한국은 학년에 구분 없이 한 가지로 정리해 놓았지만 다른 나라들은 몇 개의 단계로, 또는 학년별로 구분해 정리했다. 외국에서는 학생들의 성장에 따른 구체적인 음악과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아주 기초적인 음악 교육의 시작부터 다른 나라와 비교해 짜임새 없이 음악적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소위 ‘틀에 박힌’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지도하는 학생들에게 어떤 무대든 성의있게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무대 등장부터 퇴장까지가 음악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또 ‘시험’이라는 이름으로 노래를 할지라도 ‘연주’라고 생각하고 무대에 임하길 바라며 시험 잘 보라는 말 대신 좋은 연주를 들려주길 바란다고 응원한다.

한국의 교육 시스템을 한순간에 바꾸긴 매우 어렵겠지만 음악적 능력을 일등부터 꼴등까지 나열하는 음악 교육이 아니라 음악의 가치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심미적 교육으로 성장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