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를 변형한 카드 게임인 ‘텍사스 홀덤’(홀덤)이 서울 홍대와 강남 일대에서 인기를 끄는 가운데 ‘시드권’을 현금으로 사고파는 행태가 성행하고 있다. 정부 허가를 받은 카지노 등 합법 도박장 밖에서 ‘현금 베팅’을 하는 건 불법이다. 이에 대회 참가권 명목으로 발행되는 시드권을 활용해 법망을 피해 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4일 홀덤업계에 따르면 지난 12일 하루 전국에서 열린 홀덤대회 중 총상금 1000만GTD(1GTD는 1원 상당)가 넘는 대회는 모두 18개, 총상금은 34억GTD 규모로 집계됐다. 장소는 서울 강남과 경기 성남시 분당구, 남양주시, 화성시 등으로 다양했다. 총상금 1000만GTD란 ‘1000만원 이상의 상금을 현금 혹은 상위 대회 시드권으로 보장한다’는 의미다. 대형 스포츠 홀덤 프랜차이즈인 WFP가 최근 부산에서 연 대회의 총상금은 10억GTD로 메이저급 골프대회 상금과 맞먹는다.

홀덤은 4~5년 전 국내에 소개됐다. 전직 유명 프로게이머가 해외 포커대회에서 입상했다고 알려졌는데, 실제로는 홀덤 대회였다. 포커와는 달리 최대 11명이 칩을 걸고 우승자를 가린다. 음료를 마시며 즐기는 펍 형태로 일반인에게 퍼졌다. 펍은 전국에 2000개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3만~5만원을 내면 누구나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 우승하면 펍과 제휴를 맺은 업체가 운영하는 상위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5~10장가량의 시드권을 받는다. 2장 정도의 시드권을 내면 총상금 2500만GTD급, 10장 이상을 내면 ‘억대’ 상금의 최상급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

문제는 대회 시드권이 유가증권처럼 현금으로 거래된다는 점이다.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과 스마트폰 앱을 통해 발행가(장당 10만원)보다 낮은 8만5000원~9만원에 사고팔린다. 12일 1400명이 가입된 카카오톡 ‘딩거방1’에서 팔겠다고 올라온 시드권만 2000장(시가 1억8000만원가량)이 넘었다. 시드권을 파는 큰손 격인 이런 딩거방은 카카오 채팅방에 다섯 곳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대 정모씨는 “상위 대회에 참가하고 추가로 베팅하려면 시드권을 살 수밖에 없다”며 “대규모 대회에선 대회장 앞에서 수십, 수백 장을 사고파는 사람도 많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도박을 처벌하는 사행행위규제법상 시드권 거래 행위에 불법성이 있지만 개인 간 거래를 모두 적발할 순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최상급 대회 운영사가 과도하게 시드권을 발행하는 게 현금 거래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있다. 대한스포츠홀덤협회 관계자는 “일부 회사가 참가권(시드권) 발행과 회수 과정에서 나오는 차익으로 대회를 운영하고 있다”며 “올림픽 종목으로 거론될 만큼 건전한 스포츠인 홀덤의 이미지를 망치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정희원 기자 top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