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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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드라마가 아니라 비극이 됐습니다.”

지난해 10월 결혼식을 올린 박모 씨(29)는 "돈보다는 평생 한 번 남는 추억을 잃어버린단 생각에 잠 못 이루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예비부부들의 결혼식 사진을 찍어 주기로 계약한 뒤 찍은 사진을 돌려주지 않고 잠적한 웨딩 스냅 업체 대표가 경찰에 붙잡혔다. 몇년 새 치솟은 결혼 비용에 돈을 아끼고자 하는 예비 부부들의 심리를 이용한 사기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성비' 앞세워 예비 부부들 현혹

대전서부경찰서는 사기 등 혐의로 최모 H업체 대표(29)를 입건해 수사 중이라고 15일 밝혔다. 최 씨는 지난해 11월부터 예비부부들의 결혼식 스냅과 DVD를 제공키로 하고 돈을 받은 뒤 잠적한 혐의를 받는다. 결혼식 스냅, DVD는 각각 결혼식 과정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찍은 뒤 원본이나 보정본을 제공하는 서비스를 의미한다.
사진=독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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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카카오톡 채팅방 모인 피해자는 현재까지 210여명에 달한다. 피해자들은 1인당 33만원에서 100만원 사이의 피해를 입었다고 호소한다. 평균 50만원가량의 손해를 봐 총 1억원 이상의 사기 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아직 사기 피해를 인지하지 못한 사람을 감안하면 피해 규모가 더 커질 수도 있다.

웨딩 스냅 시장은 사진의 퀄리티에 따라 저가와 고가의 업체들로 나뉜다. 비용을 더 들이면 경력이 많은 사진 작가가 촬영에 참여하거나 촬영 작가 수가 늘어나 사진의 퀄리티가 높아진다. 최 씨는 이점을 노려 저가에 높은 퀄리티의 스냅 사진을 찍어준다고 유혹했다. 최 씨는 고가의 스냅 업체에서 제공하는 수준의 포트폴리오를 전면에 앞세웠다.

또 할인 정책으로 예비 부부들을 현혹했다. 피해자 김모 씨(35)는 "계약 당일에 계약금 전액을 입금 시 5~10%가량을 할인해준다고 했다"며 "할인까지 받으면 타 업체에 비해 가격이 30%이상 저렴해 H업체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대표 사진 작가라더니...경찰 조사에서 "나는 중개업자"

하지만 지난해 11월 13~15일 사이 최 씨는 돌연 잠적했다. H 업체가 홍보하던 온라인 플랫폼상 게시글도 모두 사라졌다. 지난해 8월 결혼식을 올린 장모 씨(31)는 "사진의 원본이라도 받기 위해 최 씨에게 연락했으나 현재까지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최 씨는 촬영한 원본 사진을 돌려주지 않을 뿐 아니라 결혼식 이전 환불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에게 환불을 하지 않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최 씨는 촬영한 원본 사진을 돌려주지 않을 뿐 아니라 결혼식 이전 환불을 요구하는 피해자들에게 환불을 하지 않고 있다. 사진=독자 제공
H업체와 계약을 파기하고 다른 업체로 변경하기 위해 환불을 요청하는 부부들의 요구에도 최 씨는 응답하지 않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취재에 따르면 '서비스 시작 당일 기준 120일 전에는 100% 환불이 가능하다'며 미리 계약금을 받는 식으로 영업했다.

최 씨는 경찰 조사에서 본인은 부부들과 사진작가를 이어주는 중개업자였을 뿐이고, 사기를 칠 의도가 아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최 씨는 계약 당시 "H 업체가 홍보하는 포트폴리오는 모두 직접 촬영한 포트폴리오니 안심해도 된다"고 피해자들을 속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급증한 결혼 비용을 조금이라도 아껴보려는 예비부부의 절박함을 이용한 사기라는 분석이다. 결혼정보 업체 듀오의 '2023 결혼비용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총 결혼 비용은 3억3050만원으로 2021년 2억8739만원 대비 15.0% 증가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8년의 2억3186만원과 비교하면 42.5% 올랐다.

한 웨딩 업계 관계자는 "업계 평균 시세보다 특정 업체의 가격이 지나치게 저렴하다면 의심해봐야 한다"며 "부부가 직접 서면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거나 전체 금액 중 예약금만 지불하는 식으로 사기 예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정훈 기자 ajh632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