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 게임 플랫폼 ‘스팀’ 운영사인 미국 밸브가 내놓은 핸드헬드 PC인 ‘스팀 덱’. /밸브 제공
PC 게임 플랫폼 ‘스팀’ 운영사인 미국 밸브가 내놓은 핸드헬드 PC인 ‘스팀 덱’. /밸브 제공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모든 PC 게임은 스팀으로 통한다.”

PC 게임 플랫폼인 스팀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이 플랫폼에서 지난해에만 신작 게임 1만4500여 개가 쏟아졌다. 일개 게임의 업데이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플랫폼이 지금은 PC 게임 경연장이 됐다. 이 플랫폼에서의 성공이 곧 게임 흥행의 척도가 될 정도다. 휴대용 게임기 시장과 AI 기반 게임 시장에도 대응하면서 스팀이 앞으로 당분간 최대 PC 게임 플랫폼으로서의 자리를 유지할 것이란 업계 전망이 나온다.

○3300만 명 동시 접속하는 ‘공룡’

15일 게임 시장 분석 서비스인 스팀DB에 따르면 지난해 스팀을 통해 출시된 신작 게임 수는 1만4528개. 전년(1만2556개)보다 16% 늘었다. 정보기술(IT) 시장 분석업체인 뉴주가 추정한 지난해 게임 시장 성장률(0.6%)을 웃도는 수치다. 연초인 지난 7일 스팀의 동시 접속자 수는 3368만 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 기록을 썼다.

스팀은 게임 개발사인 미국 밸브가 2003년 출시했다. 처음엔 이 회사 PC 게임들의 자동 업데이트를 위한 소프트웨어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회사의 총쏘기 게임인 ‘카운터 스트라이크’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자 스팀은 게이머 수백만 명을 한데 모으는 플랫폼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사업 확장 기회를 본 밸브는 스팀에서 타사 게임도 공급하는 쪽으로 전략을 잡았다. 뒤늦게 블리자드, 에픽게임즈 등 경쟁 게임사들이 비슷한 플랫폼을 선보였지만 이미 스팀이 시장을 평정한 뒤였다.

스팀은 국산 게임을 세계 무대에 올리는 등용문 역할도 했다. 크래프톤은 총쏘기 게임 ‘배틀그라운드’를 2017년 스팀을 통해 처음 선보였다. 배틀그라운드는 300만 명이 넘는 동시 접속자 수를 달성하며 ‘대박’을 냈다. 스팀 플랫폼을 활용하지 않았더라면 기대하기 어려웠을 성과였다. 넥슨이 지난해 6월 출시한 데이브 더 데이버도 스팀에서 입소문을 탔다. 이 게임은 지난해 스팀에서 5만 건 이상의 이용자 평가를 받은 신작 중 긍정 평가 비율(95.96%)이 다섯 번째로 높았다. 넥슨의 또 다른 신작인 ‘더 파이널스’, 네오위즈 ‘P의 거짓’ 등도 스팀으로 해외 게이머들과 만났다.

○수집욕 자극 전략 통했다

스팀의 성공에는 수집욕을 자극하는 화면 구성과 공격적인 프로모션 전략이 뒷받침됐다. 스팀은 플랫폼 화면 왼쪽에 이용자가 구매한 게임들의 목록을 표시한다. 새로운 게임을 살 때마다 이 리스트가 늘어나는 방식이다. 블랙프라이데이나 설날 같은 이벤트 시기엔 여러 게임을 묶어 90%까지 할인한다. 게이머들은 쿠팡 같은 e커머스 앱을 쓰듯 클릭 몇 번으로 게임들을 사들일 수 있다. 스팀이 게임에 즐기는 재미뿐 아니라 수집하는 재미를 더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게이머 간 소통에 힘을 쏟았다는 점도 성공 요인이다. 스팀에선 실제 게임을 즐긴 이용자들이 긍·부정 평가를 할 수 있다. 이 평가 건수와 긍·부정 비율은 즉각 게임 정보에 반영된다. 게임을 구매하려는 이들은 게임 업데이트에 따른 평가 변화 추이도 알 수 있다. 평가 의견을 남긴 글엔 작성자의 해당 게임 이용 시간이 표시된다. 게임사가 과장 광고로 소비자를 현혹하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PC 게임 플랫폼 ‘스팀’ 운영사인 미국 밸브가 내놓은 핸드헬드 PC인 ‘스팀 덱’. /밸브 제공
PC 게임 플랫폼 ‘스팀’ 운영사인 미국 밸브가 내놓은 핸드헬드 PC인 ‘스팀 덱’. /밸브 제공
스팀은 휴대용 게임 시장도 넘보고 있다. 밸브는 스팀으로 게임을 즐길 수 있는 초소형 PC인 ‘스팀덱’을 2022년 출시했다. 대중교통에서 이용하기에 부담이 없는 크기다. 지난해 11월엔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업그레이드 제품도 내놨다. 밸브는 지난 10일 생성형 AI 기반 게임에 대한 운영 정책도 발표했다. AI 활용 콘텐츠의 구분 기준, 신고 시스템 등도 마련하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스팀의 AI 정책은 생성 AI 기반 게임을 준비하는 업체들엔 가이드라인과도 같다”며 “AI 기술이 보급되더라도 PC 게임 플랫폼으로서 스팀의 위상은 여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현 기자 de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