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을 위한 은행은 없습니다 [하준삼의 마켓톡]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한경닷컴 더 머니이스트
홍콩H지수 연계 주가연계증권(ELS) 상품의 만기가 본격적으로 돌아오면서 투자자들이 이자는 고사하고 원금의 상당부분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상반기에 홍콩H지수가 큰 폭으로 상승하지 않으면 손실을 입는 투자자의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은행 생활 30년 중 20여년을 투자상품 개발과 판매 관련 업무로 보냈던 필자로서는 매우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고객들은 은행 거래시 증권회사, 제2금융권과 비교해 안정적인 자산관리, 안전한 상품을 기대합니다. 무엇보다도 신뢰감의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시중은행은 국내에서 제일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금융기관 중 하나입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ELS 상품을 비롯한 펀드상품, 파생금융상품 등은 원금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시장 상황에 맞게 적정한 금액을 투자하는 경우, 원금보장형 상품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구조의 상품들입니다. 문제는 투자상품 경험이 없는 초보 투자자에게 많은 금액이 권유된다거나, 투자상품을 이해하기 어려운 노년층에 투자상품이 권유되거나, 보유한 금융자산 전체가 한꺼번에 투자되는 경우 등입니다. 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투자상품 손실사례가 금융기관에서 특히 은행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날까요? 첫째, 은행권의 평가 시스템이 문제입니다. 은행의 직원 및 부서를 평가하는 핵심성과지표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는 손익 위주로 구성돼 있습니다. 상품을 판매해서 이익을 많이 올리면 좋은 점수를 받는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정기예금을 판매하면 약 0.1%, 투자상품을 판매하면 약 1%의 수익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어느 은행을 가더라도 직원들이 투자상품을 먼저 권유하려는 동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정기예금 10억원을 판매하는 것과 투자상품인 펀드를 1억 판매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성과을 인정받으니까요.
둘째,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 정부나 감독당국의 사전예방조치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자유경제, 자본주의 시스템은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므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사회적으로 큰 문제나 피해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냥 지켜봅니다. 문제가 터진 곳을 우선 수습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입니다.
정부 당국도 한정된 인력과 자원으로 나라전체의 금융시스템과 상황을 관리하기는 만만치 않을 겁니다. 따라서 기존에 불거진 문제를 수습하고, 또 다른 빅 이슈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치를 취합니다. 그런데 문제를 완벽하게 처리하기도 전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죠. 왜 사전에 이런 문제를 예방하지 못했냐며 정부에 책임을 묻고 원망한들 피해를 당한 투자자들의 손실이 100% 회복되지는 않습니다.
그럼 반복되는 투자상품 사고 사례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 은행의 평가시스템을 확 바꿔야 합니다.
은행도 사기업으로서 이윤추구를 해야 하는 조직입니다. 그러나 손익에만 치우친 평가제도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투자상품 권유와 가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손익의 배점 비중을 줄이고 고객만족도, 자산관리 포트폴리오 구성 비율 등 다양한 기준으로 변경해 적용해야 합니다.
또한 금융당국의 은행 평가도 외형 및 손익 외에 사회공헌, 고객만족 등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돼야 합니다. 매 분기 또는 매년말 기준으로 각 은행이 얼마를 더 벌었느냐의 숫자가 경쟁적으로 공표되고, 이는 은행 경영진의 손익을 위한 경쟁 압력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2. 은행내에 개인별 투자상품 투자한도를 부여해 관리합니다.
'내 돈으로 내가 투자하는 데 뭐가 문제냐?'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투자상품 문화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일정기간 동안 금융자산 내 투자상품 한도 관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투자성향 및 위험 감내도, 나이, 자산현황 등을 고려한 투자상품의 비중관리를 합니다. 가령 나이가 70세 이상이면 해당 은행에서 가입가능한 투자상품 비중은 그 은행에서 전체 보유한 금융자산 중 10% 이내만 가입 가능하게 합니다. 30, 40대 투자자라고 하더라도 해당 은행에서 처음 투자상품을 거래하는 경우, 전체 금융자산의 10% 이내로 한도를 제한합니다. 이후 투자상품 투자 경험이 쌓이면 20%, 30% 비중을 확대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투자상품 투자한도를 해당 은행의 금융자산중 일정비율로 제한하면, 시장상황에 따라 손실이 발생하거나(공모펀드), 만기에 손실이 확정되더라도(ELS 상품), 손실비중은 제한됩니다. 그리고 은행 직원의 무리한 투자상품 권유도 일정수준까지 제한할 수 있습니다. 금융자산 전체를 투자상품에 투자하는 것을 제한한다면 경제상황 악화 및 투자여건이 어려워지더라도 전체 금융자산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주식시장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증권회사의 주식 약정고가 올라갑니다. 투자자들이 주식투자를 꼭 권유받지 않더라도 위험을 감수하고 좀 더 나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주식투자를 늘리는 겁니다.
2000년 초반에서 2006년까지 글로벌 증시 활황으로 국내에서도 해외펀드 투자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펀드에 투자하고 큰 수익을 올리니 '펀드를 투자하세요'라고 권유하지 않아도 은행 창구에 펀드 가입자들이 늘어났습니다. 이처럼 원금 손실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올리고자 하는 투자상품은 고객의 자발적인 판단에 의해 투자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장기투자가 가능하고, 발생할 수 있는 손실에 대한 분쟁사례도 줄어들 것입니다.
은행 투자상품 투자자도 스스로의 자산 관리가 필요합니다. 은행뿐만 아니라 다른 금융기관에서도 '내 자산처럼 고객의 자산을 확실하게 관리해드리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말을 100% 곧이 곧대로 믿으면 안됩니다. 은행에서 30년을 근무했던 필자도 많지 않은 나의 금융자산을 관리하는 데 때로는 귀찮고 관리의 어려움을 느낍니다. 하물며 50~200명 정도의 고객 자산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전적으로 자산관리를 맡기고 그냥 놔두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나의 소중한 금융 자산이 관리되고 있는 은행에 주기적으로 나의 관심도를 표현해야 합니다. 1달에 한 번, 분기에 한 번, 적어도 6개월에 한 번은 은행에 가서 나의 자산 관리 현황에 대해 묻고 이상 여부도 확인하고 리밸런싱 의견도 물어봐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지키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공부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나를 전적으로 도와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거래하는 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만을 위해 은행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내 자산의 운용 결정, 결과의 책임은 온전히 나의 것입니다. 투자한 상품에서 손실이 발생해도 그 손실을 온전히 회복하거나 보상받을 길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금융자산 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나의 금융자산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누군가 알아서 잘해주겠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 것에서 '바람직한 나의 자산관리'가 출발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하준삼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 교수, 경영학 박사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고객들은 은행 거래시 증권회사, 제2금융권과 비교해 안정적인 자산관리, 안전한 상품을 기대합니다. 무엇보다도 신뢰감의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시중은행은 국내에서 제일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운영되는 금융기관 중 하나입니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ELS 상품을 비롯한 펀드상품, 파생금융상품 등은 원금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시장 상황에 맞게 적정한 금액을 투자하는 경우, 원금보장형 상품보다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구조의 상품들입니다. 문제는 투자상품 경험이 없는 초보 투자자에게 많은 금액이 권유된다거나, 투자상품을 이해하기 어려운 노년층에 투자상품이 권유되거나, 보유한 금융자산 전체가 한꺼번에 투자되는 경우 등입니다. 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는 투자상품 손실사례가 금융기관에서 특히 은행에서 주기적으로 일어날까요? 첫째, 은행권의 평가 시스템이 문제입니다. 은행의 직원 및 부서를 평가하는 핵심성과지표 KPI(key performance indicator)는 손익 위주로 구성돼 있습니다. 상품을 판매해서 이익을 많이 올리면 좋은 점수를 받는 시스템입니다. 그런데 정기예금을 판매하면 약 0.1%, 투자상품을 판매하면 약 1%의 수익이 발생합니다. 따라서 어느 은행을 가더라도 직원들이 투자상품을 먼저 권유하려는 동기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정기예금 10억원을 판매하는 것과 투자상품인 펀드를 1억 판매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성과을 인정받으니까요.
둘째, 큰 문제가 발생하기 전까지 정부나 감독당국의 사전예방조치는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자유경제, 자본주의 시스템은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므로,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사회적으로 큰 문제나 피해가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냥 지켜봅니다. 문제가 터진 곳을 우선 수습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일반적인 상황입니다.
정부 당국도 한정된 인력과 자원으로 나라전체의 금융시스템과 상황을 관리하기는 만만치 않을 겁니다. 따라서 기존에 불거진 문제를 수습하고, 또 다른 빅 이슈가 발생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치를 취합니다. 그런데 문제를 완벽하게 처리하기도 전에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죠. 왜 사전에 이런 문제를 예방하지 못했냐며 정부에 책임을 묻고 원망한들 피해를 당한 투자자들의 손실이 100% 회복되지는 않습니다.
그럼 반복되는 투자상품 사고 사례를 현저하게 줄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 은행의 평가시스템을 확 바꿔야 합니다.
은행도 사기업으로서 이윤추구를 해야 하는 조직입니다. 그러나 손익에만 치우친 평가제도로 인해 의도하지 않은 투자상품 권유와 가입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손익의 배점 비중을 줄이고 고객만족도, 자산관리 포트폴리오 구성 비율 등 다양한 기준으로 변경해 적용해야 합니다.
또한 금융당국의 은행 평가도 외형 및 손익 외에 사회공헌, 고객만족 등 다양한 기준으로 평가돼야 합니다. 매 분기 또는 매년말 기준으로 각 은행이 얼마를 더 벌었느냐의 숫자가 경쟁적으로 공표되고, 이는 은행 경영진의 손익을 위한 경쟁 압력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2. 은행내에 개인별 투자상품 투자한도를 부여해 관리합니다.
'내 돈으로 내가 투자하는 데 뭐가 문제냐?'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투자상품 문화의 연착륙을 위해서는 일정기간 동안 금융자산 내 투자상품 한도 관리가 필요해 보입니다. 투자성향 및 위험 감내도, 나이, 자산현황 등을 고려한 투자상품의 비중관리를 합니다. 가령 나이가 70세 이상이면 해당 은행에서 가입가능한 투자상품 비중은 그 은행에서 전체 보유한 금융자산 중 10% 이내만 가입 가능하게 합니다. 30, 40대 투자자라고 하더라도 해당 은행에서 처음 투자상품을 거래하는 경우, 전체 금융자산의 10% 이내로 한도를 제한합니다. 이후 투자상품 투자 경험이 쌓이면 20%, 30% 비중을 확대하는 식입니다.
이렇게 투자상품 투자한도를 해당 은행의 금융자산중 일정비율로 제한하면, 시장상황에 따라 손실이 발생하거나(공모펀드), 만기에 손실이 확정되더라도(ELS 상품), 손실비중은 제한됩니다. 그리고 은행 직원의 무리한 투자상품 권유도 일정수준까지 제한할 수 있습니다. 금융자산 전체를 투자상품에 투자하는 것을 제한한다면 경제상황 악화 및 투자여건이 어려워지더라도 전체 금융자산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주식시장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증권회사의 주식 약정고가 올라갑니다. 투자자들이 주식투자를 꼭 권유받지 않더라도 위험을 감수하고 좀 더 나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주식투자를 늘리는 겁니다.
2000년 초반에서 2006년까지 글로벌 증시 활황으로 국내에서도 해외펀드 투자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펀드에 투자하고 큰 수익을 올리니 '펀드를 투자하세요'라고 권유하지 않아도 은행 창구에 펀드 가입자들이 늘어났습니다. 이처럼 원금 손실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올리고자 하는 투자상품은 고객의 자발적인 판단에 의해 투자되는 것이 자연스럽고, 장기투자가 가능하고, 발생할 수 있는 손실에 대한 분쟁사례도 줄어들 것입니다.
은행 투자상품 투자자도 스스로의 자산 관리가 필요합니다. 은행뿐만 아니라 다른 금융기관에서도 '내 자산처럼 고객의 자산을 확실하게 관리해드리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말을 100% 곧이 곧대로 믿으면 안됩니다. 은행에서 30년을 근무했던 필자도 많지 않은 나의 금융자산을 관리하는 데 때로는 귀찮고 관리의 어려움을 느낍니다. 하물며 50~200명 정도의 고객 자산관리를 담당하는 직원에게 전적으로 자산관리를 맡기고 그냥 놔두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나의 소중한 금융 자산이 관리되고 있는 은행에 주기적으로 나의 관심도를 표현해야 합니다. 1달에 한 번, 분기에 한 번, 적어도 6개월에 한 번은 은행에 가서 나의 자산 관리 현황에 대해 묻고 이상 여부도 확인하고 리밸런싱 의견도 물어봐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지키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고, 공부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세상의 그 누구도 나를 전적으로 도와주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거래하는 은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만을 위해 은행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내 자산의 운용 결정, 결과의 책임은 온전히 나의 것입니다. 투자한 상품에서 손실이 발생해도 그 손실을 온전히 회복하거나 보상받을 길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금융자산 관리에서 중요한 것은, 나의 금융자산에 관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누군가 알아서 잘해주겠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는 것에서 '바람직한 나의 자산관리'가 출발합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하준삼 한국외국어대학교 겸임 교수, 경영학 박사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