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와 교토가 옛 모습을 간직한 비결은 위정자들의 정통성 욕망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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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
로버트 파우저 지음
혜화1117
336쪽|2만4000원
로버트 파우저 지음
혜화1117
336쪽|2만4000원
이탈리아 로마와 일본 교토는 옛 모습이 잘 보존된 유명 관광지다. 선조들의 ‘선견지명’ 덕분일까. <도시는 왜 역사를 보존하는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이 책은 2008~2014년 서울대 국어교육과 부교수를 지냈던 로버트 파우저가 썼다. 언어학자인 그는 자신을 ‘각국 도시 생활자이자 탐구자’라고 소개한다. 서울과 대전, 교토, 구마모토, 가고시마, 더블린 등 다양한 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책은 역사적 경관 보존의 원동력을 종교, 국가, 민족주의, 애국주의, 애향심 등에서 찾는다. 시대에 따라 바뀌는 지배 세력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시의 역사성을 활용하곤 한다. 로마와 교토가 그런 예다. 기원전 27년, 로마제국 첫 황제로 등극한 아우구스투스는 새로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혼란기를 거치며 황폐해진 로마 재건에 나섰다. 황제 즉위 첫 해, 그는 로마 안에 있는 약 82개 신전을 보수하고 복원했다. 로마 한복판에 보기 싫게 남아 있던 훼손된 건물들도 수리했다.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됐다. 게르만족이 세운 동고트 왕국이 그랬고, 교회의 권위를 높이려던 교황이 그랬다. 덕분에 로마는 여러 차례 파괴되고 황폐화됐지만 항상 재건됐다. 교토도 마찬가지였다. 오다 노부나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일본의 새 통치자로 등극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통성 확보를 위해 교토에 머물며 도시를 재건했다. 히데요시를 무찌르고 권력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수도는 에도(도쿄)로 옮겼지만, 교토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현재 교토를 대표하는 성(城)인 니조성을 지은 것이 이에야스였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윌리엄스버그는 18세기 미국의 풍경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역사 경관이 보존된 건 지배 계급의 정통성과는 상관없다. 다른 원동력이 작용했다. 바로 애국심이다. 사실 윌리엄스버그는 특별한 것 없는 시골 마을이었다. 그러다 1920~30년대에 이곳에 18세기 미국의 모습을 되살렸다. 산업혁명, 도시화, 이민자의 급증으로 ‘미국적인 것’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일종의 ‘세트장’ 혹은 ‘테마파크’처럼 복원된 사례다.
샌 안토니오, 뉴욕, 베를린, 히로시마, 드레스덴 등을 설명하던 책은 마지막 장에 이르러 한국의 경주와 전주, 서울을 다룬다. 한국은 1960년대까지 전쟁, 분단, 빈곤을 겪었다. 역사 경관 보존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러다 박정희 정부가 들어섰다. 책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 이후 한국을 찾기 시작한 일본 관광객들에게 보여줄 곳을 찾다가 경주를 단장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경주는 일본인 관광객들에게는 대표적인 한국 관광지가 되었고, 한국인들에게는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심어주는 교육 전시장이 되었다.”
서울의 북촌 한옥 마을도 비슷했다. 전두환 정권이 88서울올림픽 때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적 경관’을 보여주기 위한 볼거리로 북촌을 주목했다고 한다.
처음 취지야 어쨌든 경주와 전주, 서울 한옥마을 모두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관광지가 됐다. 물론 젠트리피케이션이 문제가 되곤 한다. 서촌 한옥마을에 살기도 했던 저자는 자신도 처음엔 못마땅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옥 차림으로 셀카를 찍는 젊은이들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분명히 그런 그들의 모습은 그동안 내가 믿어온 역사적 경관 보존의 쓰임새와는 조금 달랐다. 그런데, 그래서 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어쩌면 저 젊은이들의 저 표정이 오늘날 이 시대에 어울리는, 역사적 경관을 보존하는 새로운 명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깔끔한 문장이 돋보인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에 주제를 깊게 파고들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도시를 생각해 온 저자의 사유가 엿보인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이 책은 2008~2014년 서울대 국어교육과 부교수를 지냈던 로버트 파우저가 썼다. 언어학자인 그는 자신을 ‘각국 도시 생활자이자 탐구자’라고 소개한다. 서울과 대전, 교토, 구마모토, 가고시마, 더블린 등 다양한 도시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책은 역사적 경관 보존의 원동력을 종교, 국가, 민족주의, 애국주의, 애향심 등에서 찾는다. 시대에 따라 바뀌는 지배 세력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해 도시의 역사성을 활용하곤 한다. 로마와 교토가 그런 예다. 기원전 27년, 로마제국 첫 황제로 등극한 아우구스투스는 새로운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혼란기를 거치며 황폐해진 로마 재건에 나섰다. 황제 즉위 첫 해, 그는 로마 안에 있는 약 82개 신전을 보수하고 복원했다. 로마 한복판에 보기 싫게 남아 있던 훼손된 건물들도 수리했다.
이런 일은 계속 반복됐다. 게르만족이 세운 동고트 왕국이 그랬고, 교회의 권위를 높이려던 교황이 그랬다. 덕분에 로마는 여러 차례 파괴되고 황폐화됐지만 항상 재건됐다. 교토도 마찬가지였다. 오다 노부나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일본의 새 통치자로 등극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정통성 확보를 위해 교토에 머물며 도시를 재건했다. 히데요시를 무찌르고 권력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수도는 에도(도쿄)로 옮겼지만, 교토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 현재 교토를 대표하는 성(城)인 니조성을 지은 것이 이에야스였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윌리엄스버그는 18세기 미국의 풍경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역사 경관이 보존된 건 지배 계급의 정통성과는 상관없다. 다른 원동력이 작용했다. 바로 애국심이다. 사실 윌리엄스버그는 특별한 것 없는 시골 마을이었다. 그러다 1920~30년대에 이곳에 18세기 미국의 모습을 되살렸다. 산업혁명, 도시화, 이민자의 급증으로 ‘미국적인 것’이 사라지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일종의 ‘세트장’ 혹은 ‘테마파크’처럼 복원된 사례다.
샌 안토니오, 뉴욕, 베를린, 히로시마, 드레스덴 등을 설명하던 책은 마지막 장에 이르러 한국의 경주와 전주, 서울을 다룬다. 한국은 1960년대까지 전쟁, 분단, 빈곤을 겪었다. 역사 경관 보존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러다 박정희 정부가 들어섰다. 책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 이후 한국을 찾기 시작한 일본 관광객들에게 보여줄 곳을 찾다가 경주를 단장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경주는 일본인 관광객들에게는 대표적인 한국 관광지가 되었고, 한국인들에게는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심어주는 교육 전시장이 되었다.”
서울의 북촌 한옥 마을도 비슷했다. 전두환 정권이 88서울올림픽 때 서울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에게 ‘한국적 경관’을 보여주기 위한 볼거리로 북촌을 주목했다고 한다.
처음 취지야 어쨌든 경주와 전주, 서울 한옥마을 모두 이제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관광지가 됐다. 물론 젠트리피케이션이 문제가 되곤 한다. 서촌 한옥마을에 살기도 했던 저자는 자신도 처음엔 못마땅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옥 차림으로 셀카를 찍는 젊은이들을 보고 생각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분명히 그런 그들의 모습은 그동안 내가 믿어온 역사적 경관 보존의 쓰임새와는 조금 달랐다. 그런데, 그래서 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어쩌면 저 젊은이들의 저 표정이 오늘날 이 시대에 어울리는, 역사적 경관을 보존하는 새로운 명분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깔끔한 문장이 돋보인다.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에 주제를 깊게 파고들지는 않지만, 오랫동안 도시를 생각해 온 저자의 사유가 엿보인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