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은 왜 비트코인을 달러로 사야 하나 [한경 코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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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현물 ETF, 미국 시장 승인

가상자산 업계와 전통 금융 업계 모두의 관심사를 한 몸에 받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가 10년 만에 미국에서 승인됐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미국시간 10일 오후 4시경 “거래소법 제19조 b(2)에 따라, 신청서들이 거래소법 요건 및 그에 따라 국내 증권거래소에 적용되는 규칙과 규정, 특히 거래소법 제6조 b(5) 및 제11A(a)(1)(C)(iii)에 부합함을 확인한다”며 11개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서 전부를 승인했다.

이어 게리 겐슬러 의장은 성명서를 통해 “(과거와) 상황이 달라졌다”며 “비트코인 현물 ETP(상장지수상품)의 상장과 거래를 승인하는 것이 가장 지속할 수 있는 길”이라고 승인 이유를 밝혔다.

SEC의 헤스터 퍼스 위원은 별도의 성명서에서 “축하할 시간이다. 미국 투자자들이 비트코인 현물 ETP를 거래하며 비트코인에 대한 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를 축하하며, 투자자들이 원한다고 생각하는 상품을 시장에 출시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장 참여자들의 인내심을 축하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승인 당일까지도 블랙록, 아크21셰어스 등 ETF 신청사들은 경쟁적으로 거래수수료를 인하하며 초기 고객 유치에 총력전을 펼쳤다. SEC의 공식 X(옛 트위터)에 승인 소식이 게시됐다 ‘해킹이었다’며 삭제된 해프닝이 일어난 한국시간 10일 오전 6시께 비트코인 가격은 약 6000만원, 다음 현물 ETF 대상으로 기대되는 이더리움은 약 300만원을 기록했다. 승인된 ETF가 상장돼 거래가 시작한 한국시간 11일 오후 11시30분께 비트코인은 약 10% 오른 6600만원, 이더리움은 약 20% 상승한 360만원대까지 상승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 미국 시장 상장의 시사점

비트코인이 시장에서 거래된 지는 10년이 넘었고, 이미 국내외 수많은 거래소가 성업 중이다. 즉, 비트코인을 사고파는 거래 인프라는 이미 매우 잘 갖춰져 있다. 그런데도 ETF 승인 소식이 이렇게 중요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ETF의 편의성 때문이다.

금이나 원유, 원자재 등에 투자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은 자산을 생산지에서 매수한 후 운송, 보관하다가 매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산자 접촉이나 가격 협상, 운송과 보관 등 제반 절차에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이를 직접 구매하지 않고 자산의 가격을 추종하는 금융상품(financial instrument)에 투자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비트코인도 마찬가지다. 비트코인을(정확히 말하자면 비트코인 지갑의 프라이빗키를) 안전하게 보관하는 데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지식과 시설이 필요하다. 특히 기업이나 금융기관의 경우, 특히 고객 자산을 운용하는 경우에는 더 높은 수준의 관리를 필요로 한다. 비트코인에 직접 투자할 경우 뒤따르는 회계처리 등 조직 내부의 법적, 절차적 문제도 무시할 수 없다. 비트코인 ETF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금융상품이다. 이미 거래되고 있는 선물 ETF와 달리 현물 ETF는 롤오버(차월물 재투자) 비용 등 운용비용이 낮아 매력도가 높다. 특히 가장 유동성이 높은 미국 증권시장에 비트코인 현물 ETF가 출시된다는 것은 제도권 금융시장이 비트코인을 건전한 투자자산으로 인정했다는 상징성과 더불어 장기적으로 비트코인에 글로벌 자본시장의 자금이 대규모로 유입될 경로가 열렸다는 뜻이다.

코빗 리서치센터는 지난해 9월 1일 자 리포트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을 정조준하는 기관 자금>에서 출시 후 1년 안에 최소 200억 달러 유입을 전망하기도 했다.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 성명. SEC 캡처
게리 겐슬러 SEC 위원장 성명. SEC 캡처

기관의 가상자산 투자는 이제 필수

SEC의 초법적 반대에도 불구하고 블랙록을 위시한 11개 금융기관이 비트코인 현물 ETF의 상장을 강력히 추진한 이유는 수요 때문이다.

비트코인의 시가총액은 1월 7일 기준 약 8360억 달러, 자산 시가총액 순위 10위로 버크셔해서웨이(7933억 달러), 테슬라(7550억 달러)를 상회한다. 비트코인은 2023년 한 해 동안 1만6542달러에서 4만2643달러까지 158% 성장했다. 이는 S&P 500의 상승률 24.73%, 나스닥의 44.52%, 코스피의 19.60%를 아득히 추월하는 수치다. 작년 한 해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은 애플(53.94%), 아마존(77.04%), 인텔(87.99%), 테슬라(129.86%), AMD(130.26%)보다도 높다.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과 기관에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은 이미 필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선택지 중 하나가 됐다. 미국 연기금 또한 예외는 아니다. 2022년 CFA인스티튜트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내 주(州) 및 정부 연금의 94%가 직간접적으로 가상자산 관련 투자 내역이 있다고 한다.

미국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 직원 및 경찰 연금이 2018년부터 여러 가상자산 관련 펀드에 투자한 것을 비롯해, 2021년에는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 소방관구호퇴직연금(HFRRF)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약 2500만 달러 매입했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전부터 미국 언론은 미국 퇴직연금(401(k))에 가상자산 익스포저가 추가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 퇴직연금 제공자 중 가장 규모가 큰 피델리티는 이미 2022년에 업계 최초로 401(k)에 비트코인 펀드 옵션을 제공했다.

연금뿐 아니다. 하버드와 예일, 브라운 등 유명 대학 기금도 2019년 이전부터 벤처캐피털 펀드에 유한책임투자자(Limited Partner)로 참여하거나 코인베이스 등 거래소를 통해 직접 매수하는 방식 등을 통해 가상자산에 대한 투자를 집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각 대학의 기금 규모는 수백억 달러를 상회한다.
미 페어팩스 카운티가 발표한 블록체인 펀드 투자 비중 및 수익률. 2022.12.31 기준.
미 페어팩스 카운티가 발표한 블록체인 펀드 투자 비중 및 수익률. 2022.12.31 기준.

국민연금은 비트코인을 달러로 사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민연금 기금은 올해 약 1000조원이다. 규모 면에서 전 세계 국가 운영 연금 중 2위, GDP 대비로 따지면 1위이다. 2023년 3분기에 코인베이스 주식을 약 260억원 규모 매입한 것을 볼 때 국민연금은 가상자산 관련 투자에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내 다수의 연기금처럼 국민연금도 비트코인 투자를 검토해야 한다. 국민연금은 인구 고령화로 인해 기금 고갈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장기적으로 리스크를 높이지 않고 기대수익률을 올려야 하기에, 현대 포트폴리오 이론에 따라 기존 보유 자산과 상관관계가 낮은 자산에 투자해야 한다. 이제 글로벌 제도권 시장에서 투자재로 인정받은 비트코인에 대한 투자 검토는 선관주의 의무의 범주에 포함된다.

안타까운 점은 국민연금이 비트코인을 원화로 구매할 수 있는 방법이 원천 봉쇄 되어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기관은 물론, 모든 법인의 가상자산 거래소 원화 마켓 이용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이나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에 명시된 내용이 아닌, 당국이 거래소에 실명확인입출금계좌(실명계좌)를 제공하는 은행들을 통해 ‘행정지도’ 형태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비트코인 현물 ETF가 미국 증시에서 거래 시작되기 직전인 11일 오후 비트코인 현물 ETF의 거래 중개가 자본시장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통보했고 이에 국내 증권사들은 허둥지둥 상장 공지를 삭제했다. 금융위는 미 증시의 비트코인 현물 ETF는 자본시장법상 기초자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이를 국내에서 상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금융위가 금융투자협회를 통해 "비트코인을 포함한 가상화폐는 파생상품의 기초자산으로 인정할 수 없는 만큼, 선물거래는 할 수 없다"라는 유권해석을 증권업계에 전달한 2017년과 동일한 논리다. 국내 금융기관이 가상자산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금융상품을 국내에 출시 또는 중개하려는 움직임은 지난 7년간 전무했으며, 앞으로도 매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만약 국민연금이 비트코인에 투자한다면 어떤 선택지가 있을까? 법인의 국내 거래소 이용은 차단되어 있고, 국내 금융기관은 상품을 제공할 수 없다. 미국 증시에 상장된 현물 ETF도 국내 증권사를 통해 매매는 불가능하다. 결국 해외 지사 또는 해외 가상자산 거래사업자 등을 우회해야만 합법적인 매매가 가능하다. 달러를 확보하고, 환리스크에 대비해야 하며, 달러로 투자를 집행하고 수수료를 해외 기업에 내야 한다. 늘어나는 절차와 추가되는 리스크는 모두 비용 손실로 이어진다.

이는 국내 금융기관의 기회 손실, 더 나아가 국부 유출로도 연결된다. 미국 비트코인 현물 ETF의 수수료는 평균 0.5% 정도이며, 만약 국민연금이 1000조원 규모 기금의 1%만 투자한다고 해도 수수료는 500억원이 된다. 국내 금융기관이 국민연금에 현물 ETF를 판매한다면 500억원의 수수료 매출을 낼 기회인 것이다. 이 또한 금융당국의 7년 전과 동일한 유권해석으로 차단된 것이 현실이다.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

봄이 되면 고민은 더 깊어질 것이다.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전부터 시장에서는 “다음은 무엇인가(What’s next)?”를 묻고 있다. 비트코인 다음으로 시총이 큰 이더리움의 현물 ETF 출시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으며, 리플(XRP), 솔라나(SOL) 등 다른 자산들의 현물 ETF 승인에 대한 기대감도 존재한다. 이더리움 생태계 발전에 큰 영향을 줄 덴쿤(DenCun, Deneb + Cancun) 업그레이드가 1월 중 테스트넷 배포가 예정돼 있다. 큰 이변이 없으면 상반기 중 메인넷 업그레이드가 기대된다. 오는 4월 중으로 예상되는 비트코인 반감기와 이더리움 업그레이드, 이더리움 등 알트코인 현물 ETF 출시가 우연히 타이밍이 맞아 시너지가 촉발될 가능성도 있다. 만약 미 연준의 금리 인하 제스쳐가 이 타이밍에 보인다면 그 시너지는 매우 커질 것이다.

이러한 시장 상황에 발맞춰 국민연금이 가상자산 투자를 결정한다면 국내 금융기관이 그 수요에 즉시 대응이 가능할까? 내부 의사 결정, 업무 프로세스 준비, 제반 시설 확보, 법적 준비까지 마치고 가상자산 투자상품을 국내에서 출시할 때까지 시장이 기다려 줄까?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는 거래 규모에서 전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고, 비트코인 현물 거래량도 세계 수위권이다. 원화 시장의 가상자산 거래량이 달러 시장 거래량을 상회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개인은 물론 기업과 기관의 가상자산 투자 수요도 매우 높다. 당국의 눈초리에도 불구하고 가상자산 금융상품 출시에 필요한 시장 인프라는 이미 자생적으로 만들어져 있다. 탄탄한 국내 시장을 기반으로 만든 가상자산 기반 금융상품은 국내 수요 충족은 물론 수출까지 가능하다.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하루빨리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 준비의 시작은 금융당국의 입장 전환이다. 가상자산 시장은 주식시장보다 5배 빠르게 움직인다고 한다. 35년 전 정부가 시장에 극약처방을 내린 ‘89년 1212사태’와 현재의 시장이 다르듯, 혼란의 도가니였던 2017년 가상자산 시장과 현재의 가상자산 시장은 체질이 다르다. 당국과의 대화에서 ‘코인’은 언급조차 죄악시되던 시절은 과거로 흘려보내야 한다. 국내 금융투자사들이 가상자산 투자상품 준비를 즉시 시작할 수 있도록 당국이 제스처를 줘야 한다.

법인과 기관의 가상자산 거래소 이용은 즉시 허용해야 한다. 금융기관은 가상자산 기반 금융상품 출시를 서둘러야 한다. 정부가 실기(失期)하면 그 대가는 온 국민이 오랫동안 치르게 된다.

JP모건의 다이먼 회장은 "암호화폐는 범죄자들이나 사용하는 사기일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정작 JP모건은 자체 블록체인을 운영할 뿐 아니라 이더리움 생태계의 중요 인프라인 메타마스크(Metamask)와 인퓨라(Infura) 등을 개발 및 운영하는 콘센시스 (Consensys AG)에 2020년에 이미 대규모 투자를 집행했다. 최근에는 블랙록 비트코인 현물 ETF의 지정참가회사(Authorized Participant, AP)로 참여했다는 점도 상기해야 한다.

만약 아직도 기관의 가상자산 투자 필요성에 대해 공감과 동의가 어렵다면 2022년 2월 25일 자 코빗 리서치 '기관투자자를 위한 가상자산 배분 전략'을 읽어 주시기를 당부드린다.
김민승 코빗 연구위원
김민승 코빗 연구위원
김민승 코빗 리서치센터 연구위원은...

코빗 리서치센터 설립 멤버이자 연구위원이다.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생태계에서 벌어지는 복잡한 사건과 개념을 쉽게 풀어 알리고,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블록체인 프로젝트 전략 기획,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경력을 가지고 있다.


▶이 글은 암호화폐 투자 뉴스레터 구독자를 대상으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기 위해 소개한 외부 필진 칼럼이며 한국경제신문의 입장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