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길과 떠나버리고 싶은 세상의 어느 중간 '운전 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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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최지인의 탐나는 책
-장류진 소설집 <연수>(창비, 2023)
당신은 운전으로 자유를 찾았나요?
-장류진 소설집 <연수>(창비, 2023)
당신은 운전으로 자유를 찾았나요?
대학 새내기 시절 캠퍼스 안에서 길을 건너다가 차에 치인 적이 있다. 교정 안이어서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몸이 튕겨 나가 보도블록에 연이어 부딪히는 바람에 크게 다쳤다. 그 뒤로 범퍼와 헤드라이트를 정면으로 보면 몸이 굳어서 30대가 되어서도 운전을 배울 엄두를 못 냈다.
하지만 어느새 지방에 일을 하러 가거나 육아를 해야 해서, 혹은 아픈 가족을 돌보기 위해 운전을 배우기 시작한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필요한 순간에 스스로 물건을 옮기거나 사람을 데려다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3년 전에 운전면허를 땄다.
그러나 면허를 땄다고 운전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단 주차도 못하고 차선도 못 바꿨다. 면허 시험장에서 환호하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을 때 바로 <연수>의 저자인 장류진 작가가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예고했고 그 말은 반만 사실이었다. 남아 있는 또 하나의 관문은 얄궂게도 정말 ‘연수’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유턴과 좌우 회전을 반복하며 길을 달리다가 어느새 옆자리에서 잠든 (얕게 코도 골며 주무셨다) 연수 강사님을 발견하고 황당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남들도 다 한다는 운전이지만 나도 남들처럼 쩔쩔매며 배웠다.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나는 장류진의 <연수>를 두 번 읽었다. 2019년 잡지에 처음 발표되던 당시에 나는 운전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책이 나온 작년에는 여전히 어설프기는 하지만 운전에 익숙해진 뒤였다. 사실 처음에 화자 ‘주연’의 두려움과 절박함에 너무 이입했던 터라 다시 읽을 때까지는 ‘운전 연수’에 관한 소설이라는 인상만이 남아 있었는데, 단행본의 표제작이자 첫머리의 작품으로 읽기 시작하니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한 이야기가 선명하게 다가와서 새롭고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과업과 도전에서 실패해본 적 없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지만 비혼이라는 사실만으로 엄마에게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주연. 그녀가 갖고 있는 ‘엄마 세대’를 향한 ‘너무 싫지만 미워만 할 수 없는 마음’, 그리고 여러 역할에 부대끼면서도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에 응원받는 삶에 관해 생각했다.
왜 운전이었고 연수였을까. 친구들은 독립적인 중년 여성이 되기 위해 우선 해야 일로 운전을 꼽곤 했다. 스스로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무엇이든 옮길 수 있는 자립과 자유의 기술이 운전이라면 이를 익히는 과정이 연수였던 건 아닐까. 난감한 흙길을 지나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만나게 되는 행운이 예비된 여정이기도 하니까. 물론 장류진의 소설집 <연수>에는 다른 탁월한 작품들도 많다. 그의 첫 작품집인 <일의 기쁨과 슬픔>(창비, 2019)에서는 사회가 눈에 들어왔는데, 이번 책에서는 인물 하나하나가 보여주는 의미에 집중하게 된다는 점에서 더 마음을 끄는 점이 있었다. 특히 수록작들 전반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이 나이대를 불문하고 멋진 언니들인데, 완벽해서 멋진 게 아니고 싫고 지긋지긋한 순간들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자기만의 생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었다. 반대로 <펀펀 페스티벌>의 이찬휘나 <공모>의 김 이사, <라이딩 크루>의 화자 같은 남성 인물들도 그 특이점이 잘 잡혀서 읽는 내내 속으로 ‘맞아, 맞다’ 이러며 읽었음을 고백한다.
마감에 늦지 않고 늘 평균 이상의 작품을 내놓으며 열광적인 팬덤을 가진 그에게 원고를 받고 싶지 않은 편집자가 얼마나 있을까. 언제나 규모 있는 설계로 연간 일정을 정하고 준수하며 자신의 강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늘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자 고민하는 근면한 소설가.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소탈하고 솔직해서 협업하는 사람에게 최선의 시너지를 이끌어내는 사람이 내가 기억하는 장류진이다.
많은 사람이 관용어구처럼 쓰곤 하는 “○○의 기쁨과 슬픔”의 원조로서 우리의 언어 생활을 바꾸었다는 면에서 이미 문학사 안에 기억되고 기록될 장류진이지만 그래서 나는 그의 어제보다 그의 내일이 더 궁금하다.
하지만 어느새 지방에 일을 하러 가거나 육아를 해야 해서, 혹은 아픈 가족을 돌보기 위해 운전을 배우기 시작한 친구들을 보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기대지 않고 필요한 순간에 스스로 물건을 옮기거나 사람을 데려다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렇게 3년 전에 운전면허를 땄다.
그러나 면허를 땄다고 운전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일단 주차도 못하고 차선도 못 바꿨다. 면허 시험장에서 환호하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을 때 바로 <연수>의 저자인 장류진 작가가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예고했고 그 말은 반만 사실이었다. 남아 있는 또 하나의 관문은 얄궂게도 정말 ‘연수’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유턴과 좌우 회전을 반복하며 길을 달리다가 어느새 옆자리에서 잠든 (얕게 코도 골며 주무셨다) 연수 강사님을 발견하고 황당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남들도 다 한다는 운전이지만 나도 남들처럼 쩔쩔매며 배웠다.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나는 장류진의 <연수>를 두 번 읽었다. 2019년 잡지에 처음 발표되던 당시에 나는 운전학원을 다니고 있었고, 책이 나온 작년에는 여전히 어설프기는 하지만 운전에 익숙해진 뒤였다. 사실 처음에 화자 ‘주연’의 두려움과 절박함에 너무 이입했던 터라 다시 읽을 때까지는 ‘운전 연수’에 관한 소설이라는 인상만이 남아 있었는데, 단행본의 표제작이자 첫머리의 작품으로 읽기 시작하니 이 작품에서 보여주고자 한 이야기가 선명하게 다가와서 새롭고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과업과 도전에서 실패해본 적 없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이지만 비혼이라는 사실만으로 엄마에게 부족한 사람으로 여겨지는 주연. 그녀가 갖고 있는 ‘엄마 세대’를 향한 ‘너무 싫지만 미워만 할 수 없는 마음’, 그리고 여러 역할에 부대끼면서도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에 응원받는 삶에 관해 생각했다.
왜 운전이었고 연수였을까. 친구들은 독립적인 중년 여성이 되기 위해 우선 해야 일로 운전을 꼽곤 했다. 스스로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무엇이든 옮길 수 있는 자립과 자유의 기술이 운전이라면 이를 익히는 과정이 연수였던 건 아닐까. 난감한 흙길을 지나 예상치 못한 풍경을 만나게 되는 행운이 예비된 여정이기도 하니까. 물론 장류진의 소설집 <연수>에는 다른 탁월한 작품들도 많다. 그의 첫 작품집인 <일의 기쁨과 슬픔>(창비, 2019)에서는 사회가 눈에 들어왔는데, 이번 책에서는 인물 하나하나가 보여주는 의미에 집중하게 된다는 점에서 더 마음을 끄는 점이 있었다. 특히 수록작들 전반에 등장하는 많은 여성이 나이대를 불문하고 멋진 언니들인데, 완벽해서 멋진 게 아니고 싫고 지긋지긋한 순간들을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자기만의 생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매력이 있었다. 반대로 <펀펀 페스티벌>의 이찬휘나 <공모>의 김 이사, <라이딩 크루>의 화자 같은 남성 인물들도 그 특이점이 잘 잡혀서 읽는 내내 속으로 ‘맞아, 맞다’ 이러며 읽었음을 고백한다.
마감에 늦지 않고 늘 평균 이상의 작품을 내놓으며 열광적인 팬덤을 가진 그에게 원고를 받고 싶지 않은 편집자가 얼마나 있을까. 언제나 규모 있는 설계로 연간 일정을 정하고 준수하며 자신의 강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늘 새로운 것을 보여주고자 고민하는 근면한 소설가. 자신에게는 엄격하지만 소탈하고 솔직해서 협업하는 사람에게 최선의 시너지를 이끌어내는 사람이 내가 기억하는 장류진이다.
많은 사람이 관용어구처럼 쓰곤 하는 “○○의 기쁨과 슬픔”의 원조로서 우리의 언어 생활을 바꾸었다는 면에서 이미 문학사 안에 기억되고 기록될 장류진이지만 그래서 나는 그의 어제보다 그의 내일이 더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