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의 시칠리아노와 임윤찬의 스타카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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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임성우의 클래식을 변호하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연주하는 곡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킵니다. 심지어 그가 연주한 앵콜곡들도 늘 애호가들의 관심의 대상인데, 그 중 하나가 바흐의 시칠리아노입니다.
임윤찬 시칠리아노 실황
이 시칠리아노는 바흐의 플루트 소나타 BWV 1031의 2악장에 해당하는 곡입니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 플루트 소나타가 과연 바흐의 작품인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우수에 가득한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 흔히 '바흐의 시칠리아노'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곡 (플루트)
이 바흐의 시칠리아노는 피아노 솔로를 위한 곡으로 다양하게 편곡이 이루어졌는데, 샤를발랑텡 알캉이나 빌헬름 켐프 등이 편곡한 버전이 자주 연주됩니다.
알캉 편곡
켐프 편곡
다양한 피아노 솔로용 편곡 가운데 켐프의 피아노 편곡은 피아노라는 악기의 섬세하고도 다채로운 아티큘레이션 표현을 통해 원곡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어 오늘날 많은 피아니스트들에 의해 자주 연주되고 있습니다.
위의 알캉과 캠프의 두 버전을 비교해보더라도, 안단테(캠프) 또는 안단티노(알캉)의 템포 하에 선율선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멜로디를 뒷받침하는 다른 성부, 특히 6개 단위의 16분음들의 아티큘레이션은 켐프의 편곡이 훨씬 정교하고 세밀합니다.
특히 이 곡은 아래 악보에서 보시는 것처럼 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하는 레가토(빨간색 밑줄 부분) 및 그와 대조적으로 한 음 한 음 끊어서 연주하는 스타카토(파란색 밑줄 부분)를 대조시켜 다채로움을 더하고 있고, 아울러 베이스라인은 8분 쉼표가 지속적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박효진 (위 악보 부분)
이처럼 처음에는 마지막 3개의 16분음을 스타카토로 하여 대조를 주지만, 곡의 중반에 이르러서는 아래와 같이 중간의 2개의 16분음을 스타카토로 하여 살짝 다르게 변형되면서 계속 이어집니다. 그와 동시에 베이스라인의 쉼표의 공간 역시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박효진 (위 악보 부분)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래와 같이 전체 16분음을 스타카토로 처리하여(Piu Andante 부분) 더욱 표정을 다채롭게 합니다. 박효진 (위 악보 부분)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이 곡을 편곡한 켐프 자신은 실제 연주에서 위와 같은 아티큘레이션을 잘 구분해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켐프 연주의 경우 아래 부분(특히 아래 악보의 마지막 두 마디 부분과 같은 음형 또는 마지막 코다의 스타카토 등)은 어느 정도 아티큘레이션을 구분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켐프 (위 악보 부분)
그러나 이러한 부분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를 다 들어보면 전반적으로 악보상의 아티큘레이션을 정확히 구분해내지는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주 선율선을 좀 더 부드럽게 이어나가기 위해 페달을 많이 쓰다보니 악보상의 아티큘레이션 표기나 쉼표 공간의 표현을 희생하는 쪽으로 연주 방법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아예 편곡을 할 때 다른 작곡 전공자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드는 대목입니다.
사실 켐프 뿐만 아니라 그의 편곡 버전을 따라 연주하는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도 위의 켐프의 연주 방식과 같이 페달을 많이 사용하면서 악보상의 섬세한 아티큘레이션을 구분하여 표현해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유명한 니콜라예바의 아래 연주 또한 이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 연주는 스타카토 표현을 완전히 배제한 듯합니다.
니콜라예바
그나마 랑랑의 경우는 흥미롭게도 처음에는 악보상의 스타카토를 전혀 구분하지 않다가 중후반으로 가면서 군데군데 아티큘레이션 표현에 신경을 쓰는 듯합니다.
랑랑 (중후반 부분 연주)
이러한 주류적인 연주 경향와 반대로 악보에 기재된 아티큘레이션을 구분하여 표현하고 또 페달을 절제하여 악보상의 쉼표의 공간 등까지도 섬세하게 잘 구현한 연주로는 아래의 두 가지 연주를 들 수 있습니다. 그 중 리파티의 연주는 템포가 저의 개인적인 취향보다 살짝 빠르기는 하지만 아래 리플링의 연주와 함께 레가토와 스타카토의 대조를 끝까지 악보대로 잘 살린 드문 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Riefling
리파티
그러면 우리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이 작품을 어떻게 연주하였을까요?
임윤찬의 시칠리아노는 전반적으로 신중한 템포에다가 칸타빌레적인 표현과 절묘한 아고긱, 강약의 뒤나믹스의 대비 등이 탁월한 멋진 연주였습니다만, 아쉽게도 이 곡의 선율선의 칸타빌레적인 표현에 치중한 탓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레가토로만 일관하며 악보상의 스타카토를 구분하여 표현해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종래의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처럼 페달을 많이 사용하여 악보에 기재된 쉼표의 공간들도 느끼기가 어려웠습니다.
유튜브에는 임윤찬이 연주한 시칠리아노의 악보를 켐프 편곡 버전이 아닌 (아티큘레이션의 구분이나 쉼표의 공간들이 없는) 다른 악보로 잘못 인용한 영상도 있는데(아래 악보), 아마도 임윤찬의 연주에서 아래 악보와 같이 아티큘레이션의 구분이나 쉼표의 공간들이 거의 들리지 않기에 그가 사용한 악보에 대해 착오를 일으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임윤찬의 연주는 켐프의 악보 그 자체를 엄격히 지키기보다는 켐프의 실제 연주 또는 켐프의 연주 방식을 따르는 기존의 연주 관행들에 따라 연주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다 보니 켐프가 부분적으로나마 악보에 충실하게 스타카토를 표현한 아래 부분에서도 임윤찬은 스타카토 표현을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아래 해당 부분 비교 참조).
켐프
임윤찬
그런데 흥미롭게도 전체 연주에서 임윤찬이 딱 한 번 아래 부분에서 악보에 기재된 대로 스타카토 표현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
임윤찬의 스타카토
그렇게 전체 연주에서 딱 한 번의 짧은 순간이었고, 악보 그대로도 아니었지만 임윤찬은 남다른 뉘앙스로 스타카토를 표현하였습니다. 사실 평소 임윤찬의 다른 연주들에서 악보에 따른 정확한 아티큘레이션 표현 능력에 감탄하였고, 특히 그의 스타카토에는 늘 남다른 섬세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기에 그의 시칠리아노 연주가 더욱 아쉬웠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바램이겠지만, 그가 앞으로 이 곡을 악보상의 아티큘레이션, 특히 레가토와 스타카토의 대조와 쉼표의 공간들을 디누 리파티 등 몇몇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처럼 잘 살려서 한 번 다시 연주해주었으면 하는 희망과 기대를 품어봅니다.
© 임성우 - 클래식을 변호하다
임윤찬 시칠리아노 실황
이 시칠리아노는 바흐의 플루트 소나타 BWV 1031의 2악장에 해당하는 곡입니다. 최근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 플루트 소나타가 과연 바흐의 작품인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우수에 가득한 선율이 너무 아름다워 흔히 '바흐의 시칠리아노'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곡 (플루트)
이 바흐의 시칠리아노는 피아노 솔로를 위한 곡으로 다양하게 편곡이 이루어졌는데, 샤를발랑텡 알캉이나 빌헬름 켐프 등이 편곡한 버전이 자주 연주됩니다.
알캉 편곡
켐프 편곡
다양한 피아노 솔로용 편곡 가운데 켐프의 피아노 편곡은 피아노라는 악기의 섬세하고도 다채로운 아티큘레이션 표현을 통해 원곡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그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절묘하게 표현하고 있어 오늘날 많은 피아니스트들에 의해 자주 연주되고 있습니다.
위의 알캉과 캠프의 두 버전을 비교해보더라도, 안단테(캠프) 또는 안단티노(알캉)의 템포 하에 선율선은 서로 비슷하지만 그 멜로디를 뒷받침하는 다른 성부, 특히 6개 단위의 16분음들의 아티큘레이션은 켐프의 편곡이 훨씬 정교하고 세밀합니다.
특히 이 곡은 아래 악보에서 보시는 것처럼 부드럽게 이어서 연주하는 레가토(빨간색 밑줄 부분) 및 그와 대조적으로 한 음 한 음 끊어서 연주하는 스타카토(파란색 밑줄 부분)를 대조시켜 다채로움을 더하고 있고, 아울러 베이스라인은 8분 쉼표가 지속적으로 기재되어 있습니다. 박효진 (위 악보 부분)
이처럼 처음에는 마지막 3개의 16분음을 스타카토로 하여 대조를 주지만, 곡의 중반에 이르러서는 아래와 같이 중간의 2개의 16분음을 스타카토로 하여 살짝 다르게 변형되면서 계속 이어집니다. 그와 동시에 베이스라인의 쉼표의 공간 역시 계속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박효진 (위 악보 부분)
그리고 마지막에는 아래와 같이 전체 16분음을 스타카토로 처리하여(Piu Andante 부분) 더욱 표정을 다채롭게 합니다. 박효진 (위 악보 부분)
그런데, 이상하게도 정작 이 곡을 편곡한 켐프 자신은 실제 연주에서 위와 같은 아티큘레이션을 잘 구분해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켐프 연주의 경우 아래 부분(특히 아래 악보의 마지막 두 마디 부분과 같은 음형 또는 마지막 코다의 스타카토 등)은 어느 정도 아티큘레이션을 구분하려는 노력을 합니다. 켐프 (위 악보 부분)
그러나 이러한 부분에도 불구하고 그의 연주를 다 들어보면 전반적으로 악보상의 아티큘레이션을 정확히 구분해내지는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도 주 선율선을 좀 더 부드럽게 이어나가기 위해 페달을 많이 쓰다보니 악보상의 아티큘레이션 표기나 쉼표 공간의 표현을 희생하는 쪽으로 연주 방법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아니면 아예 편곡을 할 때 다른 작곡 전공자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드는 대목입니다.
사실 켐프 뿐만 아니라 그의 편곡 버전을 따라 연주하는 대부분의 피아니스트들도 위의 켐프의 연주 방식과 같이 페달을 많이 사용하면서 악보상의 섬세한 아티큘레이션을 구분하여 표현해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클래식 애호가들에게 유명한 니콜라예바의 아래 연주 또한 이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데, 이 연주는 스타카토 표현을 완전히 배제한 듯합니다.
니콜라예바
그나마 랑랑의 경우는 흥미롭게도 처음에는 악보상의 스타카토를 전혀 구분하지 않다가 중후반으로 가면서 군데군데 아티큘레이션 표현에 신경을 쓰는 듯합니다.
랑랑 (중후반 부분 연주)
이러한 주류적인 연주 경향와 반대로 악보에 기재된 아티큘레이션을 구분하여 표현하고 또 페달을 절제하여 악보상의 쉼표의 공간 등까지도 섬세하게 잘 구현한 연주로는 아래의 두 가지 연주를 들 수 있습니다. 그 중 리파티의 연주는 템포가 저의 개인적인 취향보다 살짝 빠르기는 하지만 아래 리플링의 연주와 함께 레가토와 스타카토의 대조를 끝까지 악보대로 잘 살린 드문 연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Riefling
리파티
그러면 우리 임윤찬 피아니스트는 이 작품을 어떻게 연주하였을까요?
임윤찬의 시칠리아노는 전반적으로 신중한 템포에다가 칸타빌레적인 표현과 절묘한 아고긱, 강약의 뒤나믹스의 대비 등이 탁월한 멋진 연주였습니다만, 아쉽게도 이 곡의 선율선의 칸타빌레적인 표현에 치중한 탓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레가토로만 일관하며 악보상의 스타카토를 구분하여 표현해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종래의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연주처럼 페달을 많이 사용하여 악보에 기재된 쉼표의 공간들도 느끼기가 어려웠습니다.
유튜브에는 임윤찬이 연주한 시칠리아노의 악보를 켐프 편곡 버전이 아닌 (아티큘레이션의 구분이나 쉼표의 공간들이 없는) 다른 악보로 잘못 인용한 영상도 있는데(아래 악보), 아마도 임윤찬의 연주에서 아래 악보와 같이 아티큘레이션의 구분이나 쉼표의 공간들이 거의 들리지 않기에 그가 사용한 악보에 대해 착오를 일으킨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임윤찬의 연주는 켐프의 악보 그 자체를 엄격히 지키기보다는 켐프의 실제 연주 또는 켐프의 연주 방식을 따르는 기존의 연주 관행들에 따라 연주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러다 보니 켐프가 부분적으로나마 악보에 충실하게 스타카토를 표현한 아래 부분에서도 임윤찬은 스타카토 표현을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아래 해당 부분 비교 참조).
켐프
임윤찬
그런데 흥미롭게도 전체 연주에서 임윤찬이 딱 한 번 아래 부분에서 악보에 기재된 대로 스타카토 표현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
임윤찬의 스타카토
그렇게 전체 연주에서 딱 한 번의 짧은 순간이었고, 악보 그대로도 아니었지만 임윤찬은 남다른 뉘앙스로 스타카토를 표현하였습니다. 사실 평소 임윤찬의 다른 연주들에서 악보에 따른 정확한 아티큘레이션 표현 능력에 감탄하였고, 특히 그의 스타카토에는 늘 남다른 섬세한 뉘앙스가 담겨 있었기에 그의 시칠리아노 연주가 더욱 아쉬웠습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바램이겠지만, 그가 앞으로 이 곡을 악보상의 아티큘레이션, 특히 레가토와 스타카토의 대조와 쉼표의 공간들을 디누 리파티 등 몇몇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처럼 잘 살려서 한 번 다시 연주해주었으면 하는 희망과 기대를 품어봅니다.
© 임성우 - 클래식을 변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