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울면 사람들도 운다, 그냥 줄줄 운다… ‘신의 연기자’ 안도 사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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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여배우 열전
우는 여자 안도 사쿠라, 그녀가 우는 이유
우는 여자 안도 사쿠라, 그녀가 우는 이유

그건 곧 아주 가끔은 자기가 얼마 전에 했던 역할, 캐릭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해 이상 행동을 보일 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배우가 종종 폭력적(?)으로 굴거나 이상야릇하게 관능적으로 구는 것은 그 혹은 그녀가 그런 역할을 하는 중이거나 그걸 끝낸 지 얼마 안돼서 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신의 연기’를 하는 배우와 산다는 것은 그 기이함을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걸 쉽게 해낼 수 있는 민간인, 곧 일반인은 그리 많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그 평범한 상대 파트너가 위대해 보일 때가 있다. 안도 사쿠라는 좋아할 배우이지 좋은 배우자는 아니라고 얘기하는 이유이다. 이건 결코 ‘디스’가 아니다.
안도 사쿠라는 현재의 일본 영화계에 있어 살아 있는, 연기의 화신이다. 전설이라고 얘기하기에는 아직 젊다. 안도 사쿠라는 도통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만드는데 ‘연기 신’이 갖는 1차 특징이 바로 그것이다. 20대 초반부터 40대 후반, 심지어 5,60대의 연기까지 도통 그 연령의 스펙트럼이 장난이 아니다.

안도 사쿠라가 한국에 얼굴을 ‘대중적으로’ 알린 것, 매니아들이야 그 전부터 이미 알고 있었겠지만, 아무튼 그런 작품은 ‘백엔의 사랑’이다. 2014년 작품이고 그녀가 28살 때였는데 극중 인물 이치코는 서른두살의 백수로 나온다. 나이부터, 이른바 N포 세대(N가지를 포기한 세대. 청년실업세대), 매력없는 여성이라는 캐릭터까지 그 싱크로율이 거의 완벽에 가깝게 구사된 작품이다.
안도 사쿠라는 영화 속 백엔 숍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변태점장에게 겁탈을 당할 뻔 하지만 정작 좋아하는 바나나맨, 곧 퇴물 권투선수에게서는 퇴짜를 맞는 여자로 나온다. 이치코는 자신이 성적으로 공격의 대상이지 애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고 절망한다. 그래서 분기탱천 일어서는데 그게 바로 권투를 시작하는 일이다. 안도 사쿠라는 이치코처럼 처음엔 도무지 어떻게 할 수 없는 외모와 몸매로 나오다가 극중에서 쉐도우 복싱이 거의 완벽하게 익혀질 때쯤이면 완전히 탈바꿈한 모습, 매력적인 이미지로 바뀐다.
안도 사쿠라는 초절정의 미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안도 사쿠라는 세상사에서 예쁘다는 것은 매우 부차적이다 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는 여배우이다. ‘안’생긴 배우에게 하는 가장 큰 칭찬은 ‘매력적이다’일 것인데 안도 사쿠라가 ‘백엔의 사랑’에서 다듬어진 몸매로 나오는 숏(shot)을 보여 줄 때쯤에는 급기야 섹시하다고 느끼게 된다.
이제 그녀=이치코는 극중 남자의 사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순간, 이치코는 링 위에서 흠씬 두들겨 맞고 멍이 가득한 채 다시 못생긴 얼굴로 돌아 간다. 백엔 숍에서 바나나만 사먹는다 해서 바나나맨이란 이름이 붙여진 남자 (애인) 복서는 그런 그녀를 다독이며, 권투(삶)가 그런 것이야, 실전(산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거야, 라며 위로한다. 그 위로가 뭉클하게 한다. 이치코는 깨달음의 눈물을 흘리는데 안도 사쿠라가 참 우는 연기를 잘한다는 건 이 영화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어쨌든 이 ‘어느 가족’은 가족은 아닌데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남자 시바타 오사무(릴리 프랭키)와 여자 시바타 노부요(안도 사쿠라)는 소매치기나 절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고 사실 부부도 아니다. 그들이 모시고 사는 시어머니도 오사무의 엄마가 아니다. 같이 사는 시누이도 당연히 혈육이 아니다. 성(性)을 파는 여인이다. 아들 쇼타는 소매치기 일을 전수하기 위해 데려다 키우는 아이이고 막내 미유는 어느 집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데리고 온 것이다. 시바타 부부는 아이 둘을 정성스럽게 키우고 가족들을 극진하게 대하며 산다. 이들은 행복한 ‘어느 가족’이다. 그러나 세상이 이런 그들을 가만히 놔둘리 없다. 가족 모두 미유의 유괴범으로 몰린다. 안도 사쿠라 연기의 진수는 취조실 취조 과정에서 나온다.
카메라는 여순경의 등 뒤에 있다. 여 순경은 목소리만 나온다. 여순경이 노부요에게 묻는다. 아이 미유가 당신을 뭐라고 불렀나요? 엄마라고 불렀느냐 그렇지 않았느냐는, 아이가 여자를 엄마로 인지하고 있었느냐 그렇지 않았느냐의 문제여서 법정에서 굉장히 중요한 증거자료로 사용될 것이다. 안도 사쿠라는 차마 진술을 쉽게 이어가지 못한다. 처음엔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얘기도, 처음부터 엄마라고 불렀다는 거짓말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진실과 위증 사이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것은, 살다 보면 늘 그렇지만, 우는 것이다. 여자는 그냥 줄줄 운다.
카메라는 안도 사쿠라의 미디엄 바스트 숏에서 얼굴 클로즈 업을 이어 가며 비교적 롱 테이크로 비추는데 바로 자신의 코앞에 놓여진 카메라를 응시한 채(이때 여순경 배우는 카메라 뒤로 빠진다.) 감정을 잡고 그냥 우는 것, 그냥 줄줄 우는 것은 신의 연기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장면을 보고 많은 사람들도 운다. 그냥 운다. 줄줄 운다. 안도 사쿠라는 사람들을 그렇게 만드는 배우이다.


사람들은 그녀의 최근작으로 다들 ‘괴물’을 애기하겠으나 그보다 더 좋았던 작품은 ‘한 남자’였다. 물론 ‘괴물’도 좋다. 다만 안도 사쿠라의 역할에 더 진한 감성이 묻어난 것으로 개인적으로는 ‘한 남자’를 꼽고 싶다는 얘기이다. 츠마부키 사토시가 같이 나오며 이시카와 케이 감독이 만들었다. 예전에 ‘우행록 : 어리석은 자의 기록’을 만들었었던 인물이다.
‘한 남자’에서 안도 사쿠라는 남편과 사별 후 우연히 만나게 된 남자와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키우며 새로 딸까지 낳고 살아가는 여인으로 나온다. 문제는 벌목꾼이었던 이 남자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은 다음부터 벌어진다. 남자의 모든 것이 다 가짜였기 때문이다. 이름도, 출생지도, 과거도 모두. 존재 자체가 다른 사람이었던 것이다.
모든 것을 알게 된 여자는 말한다. 나는 지금까지 누구와 살았던 것일까요? 근데 그건 우리 모두, 누구와 같이 살면서 중간중간 느끼게 되는 공포와 미스터리 같은 감정이 아니었던가. 내가 살고 있는 저 남자는 누구인가. 영화 내내 보여주는 안도 사쿠라의 담담한 연기가 일품이었던 작품이다. 안도 사쿠라는 조용한 표정, 단아한 행동, 다소곳한 연애, 다정한 육아, 달콤한 부부애 연기를 해낸다. 담담함의 일관성이다. 그 분위기가 일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