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 (c) Artbuyer.at/Bridgeman Images
오스트리아 작곡가 안톤 브루크너. (c) Artbuyer.at/Bridgeman Images
“구스타프 말러는 끊임없이 신을 찾았고, 안톤 브루크너는 이미 신을 찾았다.”

독일 출신의 지휘 명장 브루노 발터가 남긴 말이다. 말러와 함께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교향곡의 거장’ 브루크너는 대중에게 친숙한 작곡가는 아니다. 교향곡 하나의 연주 시간이 길면 1시간 30분을 가뿐히 넘기는 데다 형식과 구조도 복잡해 웬만한 사람 귀에는 어렵게 들리기 마련이라서다. 클래식 애호가 중에서도 모든 시대 작품을 정통한 이른바 ‘고수’들이 찾아 듣는 음악으로 통한다.

그러나 일단 한번 빠지면 결코 헤어날 수 없는 게 바로 브루크너의 작품 세계다. 말러가 장대하면서도 격렬한 관현악법과 염세적인 세계관으로 청중을 놀라게 한다면, 브루크너는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에너지와 속세를 초월한 듯한 종교적 통찰력으로 듣는 이를 옴짝달싹 못 하게 만든다. 그의 음악만을 깊이 추종하는 마니아층을 일컫는 ‘브루크네리안’이란 단어가 따로 생겨났을 정도다. 브루크너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고 싶다면 올해가 적기다. 브루크너의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라서다. 세계 곳곳에서 그를 기리는 클래식 공연들이 쏟아진다.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 (c)Opera di Firenze, Alberto Conti
인도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 (c)Opera di Firenze, Alberto Conti
‘브루크너의 고향’ 오스트리아에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상징적인 음악회를 연다. 매년 1월 1일이면 90여 나라에 실황 중계되는 신년 음악회에서 브루크너 ‘카드리유’ 관현악 버전을 연주하면서 브루크너를 기린 빈 필하모닉은 오는 3월 오스트리아 린츠로 건너간다.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과 그의 이름을 딴 콘서트홀인 브루크너하우스 개관 50주년을 대대적으로 축하하기 위해서다. 빈 필하모닉은 이 자리에서 브루크너가 59번째 생일 다음 날에 완성했다고 알려진 교향곡 7번을 연주한다. 지휘봉은 전설적인 지휘자 주빈 메타가 잡는다. 이에 앞선 2월엔 프란츠 벨저 뫼스트 지휘로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선보이고, 8월엔 리카르도 무티 지휘로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을 들려준다.

오는 9~10월 오스트리아 린츠 브루크너하우스에서 열리는 11번의 콘서트 시리즈에선 세계 최초로 그의 교향곡 전곡(기본 9곡·습작 포함 11곡)이 시대악기로 연주된다. 브루크너가 살던 시대에 사용되던 악기와 연주법을 그대로 되살려 작곡가가 실제 의도한 소리를 재현하는 시도다. 샹젤리제 오케스트라(필리프 헤레베허 지휘), 콘체르토 쾰른(켄트 나가노 지휘), 계몽주의 시대 오케스트라(아담 피셔 지휘) 등 유럽 유수 악단들이 대거 참여한다.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명장 크리스티안 틸레만. (c)Stephan Rabold
독일 출신의 세계적인 명장 크리스티안 틸레만. (c)Stephan Rabold
베를린 필하모닉은 2~3월 브루크너 교향곡 00번과 0번을 들려준다. 브루크너가 정식 교향곡으로 발표하지 않은 두 편의 습작으로, 실연으론 좀처럼 듣기 어려운 작품들이다. ‘현존하는 최고의 브루크너 전문가’로 불리는 지휘 거장 크리스티안 틸레만이 지휘봉을 잡는다. 1월엔 대니얼 하딩 지휘로 브루크너 교향곡 4번 ‘로맨틱’을 연주하고, 5월엔 프랑수아 자비에 로트 지휘로 브루크너 교향곡 3번을 선보인다. 6월엔 베를린 필하모 음악감독을 지낸 명장 사이먼 래틀이 지휘를 맡아 브루크너 교향곡 6번을 들려준다. 빈 필, 베를린 필과 ‘세계 3대 악단’으로 꼽히는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는 약 1년 반 동안 브루크너 교향곡 전곡 사이클을 선보인다.

국내 오케스트라들도 브루크너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분주하다. KBS교향악단은 오는 7월 18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9번을 연주한다. 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지낸 오스트리아 명지휘자 한스 그라프(현 싱가포르 심포니 음악감독)가 포디엄에 오른다.

9월 27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선 독일 자르브뤼켄의 도이치 방송 교향악단 수석지휘자 겸 KBS교향악단 음악감독 피에타리 잉키넨 지휘로 브루크너 교향곡 5번을 들려준다. 서울시향은 올해 음악감독으로 정식 취임한 명장 얍 판 츠베덴 지휘로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들려준다. 12월 12~1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무대에 오른다.
네덜란드 출신의 지휘 명장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제공
네덜란드 출신의 지휘 명장 얍 판 츠베덴. 서울시향 제공
인천시향은 경기 아트센터인천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7번(4월 26일)과 8번(5월 17일)을 한 달 간격을 두고 무대에 올린다. 악단의 예술감독 이병욱이 지휘를 맡는다.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2월 28일 경기 부천아트센터에서 브루크너 교향곡 6번을 들려준다. 지휘봉은 광주시향 예술감독 홍석원이 잡는다. 6월 28일 광주예술의전당에선 홍석원 지휘의 광주시향이 브루크너 교향곡 7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