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가치 느끼려면 간절함 필요
김용걸 발레리노
도전하고자 마음먹는 과정이 공짜여서 그런지, 그것을 머릿속과 가슴에 담아두고만 있다가 헛된 메아리처럼 날려 보내는 ‘노 쇼(no show)’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결국 자신이 품었던 그 도전에 대한 생각과 의식을 어떻게 자신의 신체가 반응하게 하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결국 실행의 문제라는 얘기다.
자신의 삶을 쟁취해 낸, 그리고 해내고 있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보면 그 도전에 대한 의식을 행동으로 옮겨버리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왜 대부분 사람은 도전이라는 행위에 대해 그리도 주저하고 망설일까? 그건 분명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그 실패로 인해 갖게 되는 주위의 ‘의식’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도 의식하는 그 존재들이 우리의 도전하지 않음에까지도 의식을 할까’를 생각해보면 당연히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그들에게 우리는 아무런 관심사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우리가 그들을 ‘의식’함으로써 그들의 관심을 갈구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꾸준함.’ 이 세상을 거꾸로 뒤집어 버릴 수 있을 정도의 변화를 꾀한다면 꾸준함만큼의 강력한 힘을 가진 행동도 없을 것이다. 느리고 더디게 느껴지더라도 그 행위가 지속적이고 반복적이라면 꾸준함의 힘은 실로 어마어마한데, 문제는 그 꾸준함을 이어 나가는 힘이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인가다. 결국은 그것이 타인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자신의 내면으로부터인지에 따라 극명하게 갈릴 것이며, 이는 실제로 극명한 차이의 결과를 낳게 된다.
‘간절함.’ 이 한 단어가 가진 의미에 스스로를 위험이라는 동굴 속으로 자신을 던지는 사람들을 발견하곤 한다. 도박과 같을 수도 있을 스스로의 던짐이라는 끝은 그 누구도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확실한 건 그 간절함이라는 동굴에 자신을 한 번도 던져본 적이 없는 자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삶의 가치와 기쁨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절제.’ 스스로의 통제가 가능한지 여부만큼이나 자신을 기쁘게, 또는 고통스럽게 하는 건 없는 것 같다. 30년 가까이 ‘발레(Ballet)’를 해오며 자주 느끼게 되는 아주 단순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나 자신과 싸우고 있는 순간들이 있다. 더 먹고 싶지만 더 이상 먹어선 안 될 때, 더 자고 싶지만 그만 일어나야만 할 때, 더 쉬고 싶지만 계속해야만 할 때 등.
끝없는 산 비탈길을 오르는 삶인 것 같지만, 산의 중턱에 걸터앉아 잠시 숨 돌릴 수 있는, 주위를 돌아볼 수 있는 그런 삶이라는 산길을 오르는 나만의 여정. ‘도전’과 ‘꾸준함’, 그리고 ‘간절함’과 ‘절제’. 2024년 갑진년, 스스로를 되돌아보기 위해 다시금 되새겨 보게 되는 단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