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G 이사회가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로부터 1조원대 송사에 휘말린 것으로 확인됐다. 전현직 사장이 자사주 1085만 주를 경영권 유지에 활용하는 동안 사외이사들이 감시 의무를 소홀히 해 회사에 손실을 끼쳤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기업 사외이사 등을 대상으로 조(兆) 단위 소송을 제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2일 법조계 및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싱가포르계 행동주의 펀드인 플래시라이트파트너스(FCP)는 지난 10일 KT&G 감사위원회 위원장 앞으로 소제기 청구서를 보냈다.

KT&G 감사위원회는 FCP의 청구서를 검토해 다음달 10일까지 FCP가 지목한 백복인 KT&G 사장 등 전현직 사내외 이사 21명에 대해 회사 차원에서 배상금 청구 소송을 진행할지 결정해야 한다. KT&G 감사위원회가 전현직 사내외 이사를 상대로 소송하지 않으면 FCP가 주주 대표 소송을 제기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가액은 1085만 주를 지난 9일 종가(주당 9만600원)로 환산한 금액이다.

자사주 편법 활용을 감시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외이사에게 소송을 제기한 것은 국내 상장사 중 처음이다. 쉰들러의 현대엘리베이터 소송과 KT 소액주주연대 소송 모두 대표이사에 한정했다.

KT&G는 2001년부터 조금씩 자사주를 매입한 뒤 이사회 결의만 거쳐 백 사장과 민영진 전 사장 등 KT&G 전현직 임직원이 몸담은 재단·기금에 무상 증여해 최대주주(작년 3분기 말 기준 9.6%)로 만들었다.

소각 또는 매각을 통해 주주 가치를 높이는 데 써야 할 자사주를 재단·기금에 증여하는 방식으로 KT&G 사장의 경영권 강화에 썼다는 게 FCP 주장이다.

KT&G 측은 "소제기 청구서에 나온 자사주는 약 50만 주로 소송가액도 1조원에 훨씬 못 미친다"고 했다.

박동휘/하헌형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