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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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정부가 상대적으로 부진한 국내 증권시장을 부양하기 위해 '일본 정책' 연구하기에 나섰다. 일본 증시가 정부 주도로 펼친 정책에 힘입어 최근 활기를 보이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더군다나 이번 일본정책 연구는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직접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3일 당국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작년 말부터 국내 연구기관 등에 일본 증시 부양 정책 연구를 지시했다. 일본 정부가 전례 없는 강경책으로 '고질적 저평가' 상태를 수습한 것처럼 우리 정부도 이를 벤치마킹해 난국을 돌파하겠단 취지다. 일본 증시 부양 벤치마킹은 김 위원장의 숙원 과제 중 하나였다.

저PBR주 콕 집어 책임 물은 日정부…증시 오름세

코스피지수는 올 들어 7% 넘게 하락했지만 닛케이지수는 9%대 상승했다. 이웃 나라는 잘 나가는데 우리나라 증시만 죽쑤고 있으니 당국도 고민이 많다. 때문에 당국은 일본을 벤치마크 대상으로 삼았다. 당국은 특히 일본이 작년 이맘때 상반기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기업들을 상대로 개선안을 촉구해 효과를 본 만큼 그 발걸음을 그대로 따라가기로 했다.

실제로 많은 국내외 시장 전문가들은 '저PBR주 개선'을 일본 증시 호황의 비결로 꼽고 있다. PBR이란 기업이 보유한 자본 대비 시가총액이 얼마나 큰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회사가 들인 자본과 시장에서 인정하는 값어치가 같으면 PBR이 1이다. 때문에 PBR값이 크면 시장에서 해당 기업이 고평가되고 있단 뜻이고 1보다 작을 경우에는 저평가되고 있단 의미가 된다. 현재 우리나라 유가증권시장 평균 PBR은 0.89다.
여의도 거리. 사진=한경DB
여의도 거리. 사진=한경DB
작년 3월 일본 도쿄증권거래소는 PBR 1 이하인 상장사를 집어 "자본수익성과 성장성을 높이기 위한 개선 방침과 구체적인 이행 목표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주가를 끌어올리지 못하면 상장 폐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실상 강제성을 띠는 것이다. 도쿄증권거래소는 올해부터 개별 상장사 기업지배구조보고서 등을 통해 구체적인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적어서 낸 기업들 명단을 달마다 공표하기로 했다.

정책 효과는 뚜렷하게 확인되고 있다. 지난 15일 일본 도쿄증권거래소가 발표한 업계 참여 현황 자료를 보면, 작년 말 기준 PBR 1 이하 공시 대상기업 3300여곳 중 1115곳이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주주를 위한 경영 개선계획을 적거나 적을 예정인 것으로 조사됐다. 거래소는 PBR이 낮은 기업일수록, 또 시가총액이 큰 대형사일수록 참여도가 컸다고 분석했다. 시총 1000억엔(약 9000억원) 이상의 대형주들이 모인 '프라임 시장'에서 78%(검토 중 포함)가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써낸 것이다. 업종별로 보면 대표적 저PBR 업종으로 지적됐던 은행주들이 94%로 대부분 참여해 주목을 끌었다.

한국은행 동경사무소는 작년 6월 낸 보고서에서 "시장 참가자들은 도쿄거래소의 경영개선 요청에 따른 상장사 변화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일본 기업에 의한 적극적인 자사주 매입이 밝혀진 5월 이후로 일본 주가가 견조한 움직임을 보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향후 중기적으로 일본 증시에선 ROE와 PBR 등 기업가치의 실질적인 개선 여부가 주가 상승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PBR 벤치마킹해야" 日 정면교사하는 韓…코스피 화답할까

일본에서 효과를 확인한 만큼 당국의 발걸음은 빨라졌다. 지난 17일 금융위가 내놓은 2024년 업무 추진계획 속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일본을 벤치마킹한 대표적인 정책이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취지는 상장사 기업가치 제고를 유도하기 위함이다. 자산총액 5000억원 대상의 유가증권시장 상장사가 의무제출 공시해야 하는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는 배당정책·배당실시 계획 통지, 내부통제정책 마련, 집중투표제 채택 등 항목에 대한 준수 여부를 기입해야 한다. 여기에 '기업가치 제고계획'도 같이 기재하도록 하겠다는 게 당국 계획이다. 아울러 공시우수법인 선정 시 기업가치 제고계획을 써낸 기업에 가점을 주기로 했다.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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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 타깃 대상은 PBR 1 이하의 기업들이다. 궁극적으로는 이들 기업의 PBR을 보다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목표다. 다만 방안은 골자만 나온 상태고 세부적인 내용은 오는 3월까지 구체화될 예정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은 내부적으로 검토를 1년 넘게 한 사안이며, 실패한 지점은 취하지 않을 것이기에 완전히 일본을 따라갔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상장법인과 학계 등 의견 수렴 단계를 준비 중이며 PBR을 비롯해 어떤 지표들을 기준으로 삼을지 확정할 예정"이라며 "일본만큼 큰 효과를 거둘지는 예단하기 어렵지만 주변 정책환경이 갖춰진다면 국내도 증시 부양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밝혔다.

시장 관계자들은 이번 정부 정책의 관건의 실효성을 '강제 정도'가 가를 테지만, 잘만 작동하면 중기적으로 코스피가 크게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이 일본 자산증식 계획처럼 국내 저PBR주의 수익률 제고를 촉구하게 될 경우 연내 코스피지수가 3000까지 가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라고 관측했다.

자산운용사 한 대표는 "정부가 주가도 경영의 한 축으로 보겠다는 의지를 사실상 밝힌 것이라 본다"며 "우리로선 이미 관련 수혜주들을 추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국내의 경우 규제산업과 맞물려 PBR을 낮게 받을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은 만큼 다각도로 접근해야 할 것이고, 일본처럼 '안 하면 상장폐지' 식의 강제적인 조치여야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전망"이라고 밝혔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