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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아파트 평당 최고 천만원.』 1992년 4월4일자 한 신문 기사의 제목이다. 내용은 이렇다. '여의도 단지에서 값이 가장 비싼 아파트는 한강 고수부지공원에 인접한 서울아파트. 69평(전용 200㎡)이 6억8000만~7억2000만원, 50평(전용 139㎡)이 4억8000만~5억2000만원으로 평당 1000만원 안팎이다.' 이때 당시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전용 157㎡ 시세는 5억5000만원선. 압구정 현대만큼이나 유력한 국회의원과 법관 등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꼽힌다.
지금의 시세는 어떨까. 두 아파트 모두 10을 곱하면 현재 시세가 나온다. 압구정 현대 전용 157㎡는 작년 5월 52억원에 마지막으로 거래됐다. 여의도 서울아파트 전용 139㎡는 작년 7월 47억원에 손바뀜했다. 3.3㎡당 시세는 각각 1억929만원(압구정 현대), 1억1158만원(여의도 서울)으로 거의 같다. 서울아파트는 1976년 2개 동, 192가구로 지어졌다. 전용 139㎡와 전용 200㎡ 등 대형평수로만 구성됐다는 게 특징이다. 용적률이 210%에 달해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에 적합해 보이는데도 여의도의 '대장 아파트'로 지목되곤 한다. 이유는 예전부터 일반상업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재건축 때 1000% 이상 용적률을 채울 수 있다는 얘기다.
같은 일반상업지역이면서 남쪽으로 접한 공작아파트와 또 다른 건 300가구 미만이란 점이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을 따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도정법은 기부채납과 임대주택, 소형평형 의무비율 등의 규제가 적용된다. 하지만 300가구 미만 아파트는 그런 규제가 없는 건축법에 따른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다. 심지어 조합설립도 없이 소유자와 시행사가 사업단을 꾸려 사업시행계획 인가와 건축허가만 받고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기부채납도, 임대주택도 없이 용적률 1000%까지 아파트를 지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도 적용되지 않는다.
입지도 한강변 여의도 아파트 중에서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마포대교를 타고 여의도로 들어올 때 가장 앞서 서울아파트가 보인다. 단지 코앞이 여의도 한강공원, 뒤편이 공작아파트이며 여의도더현대가 인접해 있다.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이 단지 북쪽에 붙어 있다. 서쪽의 한국전력공사 남서울본부 부지는 한전이 매각을 위해 변전소 이전을 추진 중이다. 단지에서 여의동로를 따라가면 여의도고와 여의도중, 여의도초가 나란히 붙어 있다. 단지 한강변으로는 학교가 없기 때문에 일조권에 따른 층수 제한도 받지 않는다.
이렇게 최상의 조건을 갖췄는데도 여태 재건축을 한 발도 떼지 못한 이유는 뭘까. '건축법에 의한 재건축'은 주민동의율 100%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건축법에 의한 재건축 아이디어는 2001년에 제정된 도정법에 대한 우회 수단으로 생겨났다. 단지가 처음 재건축을 추진한 건 1999년이다. 당시 재건축 노후도 연한이 20년이었기 때문에 1970년대 들어선 여의도 아파트지구의 단지들이 재건축에 돌입할 수 있게 됐다. 그때 재건축에 성공한 곳이 백조아파트(롯데캐슬엠파이어)와 한성아파트(여의도자이), 미주아파트(롯데캐슬아이비)다. 이들 단지는 9~10년 만에 재건축을 완료했다. 서울아파트도 70층 재건축을 추진했다. 그때만 해도 주민동의율이 80%를 넘어 별 무리 없이 추진될 수 있을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추진 3개월 만에 이주비 협상 등에서 주민과 시공사가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여기에 여의도의 대규모 고밀개발을 우려한 서울시가 행정지도를 통해 압박을 넣으면서 지연됐다. 그러다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이 2001년 제정되면서 재건축이 좌초됐다.
도정법에 대한 우회 수단으로 등장한 게 건축법 재건축이었다. 소유자는 삼성물산을 시공사로 선정해 공동사업단을 꾸렸다. 설계안은 77층 1개 동 혹은 61층 2개 동, 299가구(전용 224㎡, 244㎡, 264㎡, 297㎡)로 마련했다. 서울시 건축심의까지 받았지만, 당시 건설교통부가 이같은 우회를 막기 위해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시행하면서 무산됐다. 건교부는 건축법으로 주상복합 아파트를 지으면 토지소유자에게 아파트를 우선 공급할 수 없도록 했다. 2015년에는 공동사업시행자로 선정된 여의공영이 GS건설과 손잡고 다시 건축법에 따른 77층 재건축을 시도했지만 '100%'의 벽을 넘지 못해 2년 만에 GS건설이 포기했다. 2018년 다시 사업단을 꾸려 전용 139㎡ 소유자에겐 36억원, 전용 200㎡ 소유자에겐 51억원에 매입하겠다고 나섰다. 그래도 주민 동의율 100%를 채우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아파트가 도정법과 건축법 사이에서 헤매는 동안 나머지 여의도 16개 단지는 일제히 재건축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재건축은 안전진단→정비계획→조합설립(사업시행자 지정)→건축심의→사업시행계획인가→관리처분계획인가→이주·철거로 이어진다. 안전진단조차 하지 않은 단지가 서울아파트 하나다.
같은 시기 처음 재건축을 추진했던 공작아파트는 정비구역 지정을 거쳐 대우건설을 시공사로 선정하며 가장 앞서나가고 있다. 가장 오래된 여의도 시범조차 신속통합기획을 통해 작년 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에서 정비계획이 수정 가결됐다. 장미·초원·화랑아파트 등 가구 수가 200가구에도 못 미치는 다른 단지는 인근 대교나 삼부 등 규모가 큰 아파트와 논의 중이던 통합재건축이 무산되면서 늦어진 상태다. 서울아파트 인근 공인중개사 A씨는 "서울아파트에선 재건축 추진 방식을 두고 아직도 주민 간 이견이 크다"며 "1동과 2동이 한강변 앞뒤로 있어 동 주민 간의 간극도 있기 때문에 당분간은 재건축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