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계스포츠의 계절이다. 2024 강원동계청소년올림픽대회가 지난 19일 개막, 전세계 78개국 1800여 명의 선수들이 열띤 시합을 치르고 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도 성공적으로 개최한 경험이 있는 한국은 동계스포츠의 강국으로 자리잡았다.

동계올림픽에서의 성적만을 봐도 인상적이다. 1992년 알베르빌 올림픽에서 김기훈이 사상 첫 금메달(김기훈 쇼트트랙 1000m)을 땄다. 이 대회를 시작으로 한국은 올림픽 쇼트트랙에서만 95개의 메달을 따냈다. 세계 최강의 전력이다. 상대적으로 열세인 스피드스케이팅 부문에서도 2010년 밴쿠버에선 모태범과 이상화가 각각 500m에서 금메달을 땄다. 이상화는 2014 소치올림픽에서 대회 2연패라는 한국 스피드 스케이트 사상 기념비적인 기록을 세웠다. 피겨에선 김연아가 밴쿠버올림픽에서 압도적 기량으로 우승해, 전세계인에게 감동을 줬다.

그 배경엔 한반도의 '추위'가 있다. 1960년대만 하더라도 겨울철 서울 한강 전체가 꽁꽁 얼 정도로 추웠다. 기후변화의 영향도 없던 때라서 강들은 겨우내 얼어있었다. 또한 겨울은 유난히 길었다. 긴 겨울 시민들은 스케이트를 들고 가까운 강과 저수지로 나갔다. 특별한 겨울 스포츠나 놀이가 없던 때 스케이트는 한국인에게 거의 유일한 겨울 스포츠이자 놀이였다.
1959년 12월 25일 시민들이 서울 한강교 아래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1959년 12월 25일 시민들이 서울 한강교 아래서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한경디지털자산
1959년 12월 서울 한강교 아래서 시민들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나무 울타리를 친 스케이트장이 꽤 넓직하다. 탁트인 한강 위 은반에서 겨울 바람을 가르며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의 기분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1963년 1월 11일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시민들/한경디지털자산
1963년 1월 11일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시민들/한경디지털자산
1963년 서울 효창운동장이 스케이트장으로 변신했다. 서울시가 스케이트를 좋아하는 시민들을 위해 평평하고 넓은 효창운동장에 물을 채우고 얼려, 거대한 야외스케이트장으로 변신시킨 것이다.1960년대 겨울철 스케이트의 인기가 어느 정도 였는지 실감케 하는 장면이다. 중년의 여성, 교복 입은 학생, 어린이 등 스케이트를 타는 계층도 다양하다.
1984년 2월 3일 서울 서대문구 외곽 야외 스케이트장 풍경/한경디지털자산
1984년 2월 3일 서울 서대문구 외곽 야외 스케이트장 풍경/한경디지털자산
어른과 어린이들이 함께 서울 변두리 비닐하우스 옆에서 즐거운 표정으로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1984년 2월 3일의 사진이다. 1980년대 서울 변두리 지역엔 이렇게 겨울 동안 야외스케이트장이 설치됐고, 동네 아이들은 겨우내 얼음판 위에서 놀았다.
1981년 1월 29일 서울 동대문실내링크에서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하고 있는 어린이들/한경디지털자산
1981년 1월 29일 서울 동대문실내링크에서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하고 있는 어린이들/한경디지털자산
위 사진은 어린이들이 1981년 1월 29일 서울 동대문구 동대문실내링크에서 피겨스케이팅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1980년대 초반엔 아직 스키 등 다른 겨울 스포츠가 활성화되지 않았었다. 또한 초등학생들에 대한 사교육이 심각하지 않았던 그 시절, 방학 동안 스케이팅과 피겨스케이팅을 배웠던 어린이들이 꽤 있었다.
1989년 7월27일 청소년으로 붐비는 서울 잠실 롯데월드아이스링크/한경디지털자산
1989년 7월27일 청소년으로 붐비는 서울 잠실 롯데월드아이스링크/한경디지털자산
이런 한국인들의 '스케이트 사랑'을 파악한 롯데는 1989년 7월 서울 잠실에 롯데월드아이스링크를 열었다. 한국은 '3저호황'으로 전대미문의 경제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여름철에 빙상스포츠를 즐기려는 한국인들의 욕구를 정확하게 예측해 문을 연 롯데월드아이스링크는 '대박'이었다.
1989년 7월6일자 조선일보 1면
1989년 7월6일자 조선일보 1면
한 일간지는 1989년 7월6일자 1면에 '여름 스케이팅'이란 제목으로 반소매 차림의 청소년들이 활짝 웃으며 스케이트를 타는 장면의 사진을 게재했다.
1990년 12월11일자 한겨레신문
1990년 12월11일자 한겨레신문
1990년 12월 11일자 또 다른 일간지는 지면 전체를 '은빛안고 '씽씽' 겨울을 가른다'라는 제목으로 방학을 맞아 빙상스포츠 교실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기획기사를 게재했다.

김연아, 이상화, 전이경, 최민정, 진선유, 황대헌....그 수많은 스케이트 스타들이 빛날 수 있었던 배경엔, 한국인의 뿌리 깊은 '은반 사랑'이 있다.

신경훈 디지털자산센터장 kh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