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 간암, 췌장암 등은 몸속에서 암이 상당히 진행돼도 증상만으로 판별하기 어렵다. 초기에 소화불량이나 식욕부진 등을 호소할 수 있다고 알려졌지만 이들은 다른 질환을 앓고 있을 때도 자주 나타나는 흔한 증상이기 때문이다. 건강검진을 잘 받아 암을 찾아내는 게 중요하다고 의사들이 설명하는 이유다. 최근 미국에선 ‘급격한 체중 감소’가 암 발생의 신호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의도와 달리 체중이 갑자기 빠진다면 병원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다.
갑자기 몸무게 10% 빠졌다면…암 발생 신호?
26일 의료계에 따르면 미국 다나파버암연구소는 최근 미국의사협회지(JAMA)에 의도치 않게 체중이 줄어든 사람은 1년 안에 암 진단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를 주도한 브라이언 울핀 다나파버암연구소 췌장암연구센터 소장은 “운동을 시작하거나 식단을 조절하는 등 살을 빼기 위해 습관을 바꾸지 않았는데도 살이 빠진다면 의사를 만나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고 밝혔다.

살이 빠지는 데엔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운동량이 늘거나 식사량을 줄이는 등의 의도적 행동이 없었다면 다른 질환 탓에 생긴 증상은 아닌지 의심해야 한다. 체중이 빠질 때 의심해볼 만한 질환은 예상보다 다양하다. 갑상샘 호르몬이 많이 나오는 항진증이 있을 때 환자들은 체중 감소를 흔히 호소한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등의 증상도 함께 나타나는 환자가 많다.

소화기계 질환 탓에 소화력이 떨어지거나 당뇨병이 생길 때도 체중이 준다. 류머티즘 관절염도 마찬가지다. 정신질환 중엔 우울증이 생기면 체중 감소를 호소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울핀 소장팀은 ‘암’에 주목했다. 갑자기 체중이 줄면 암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1976년부터 30~55세 미국 간호사들의 건강 상태를 등록한 ‘간호사 건강 연구’, 1986년부터 40~75세 남성 건강전문인력들의 건강 상태를 등록한 ‘건강전문가 연구’ 등 두 그룹의 데이터를 찾아 2016년까지 15만7474명을 분석했다.

이 조사를 통해 연구진은 2년마다 직접 보고한 체중 데이터를 확보했다. 전체 분석 대상 중 1만5809명에게 암이 생겼다. 10만 인년당 964건의 암이 생겼다고 연구진은 설명했다. 인년은 1명을 1년간 관찰한 것을 기준으로 삼는 연구 지표다.

체중 변화에 따라 조사 대상을 나눠 분석했더니 체중이 10% 넘게 빠진 사람들이 1년 안에 암 진단을 받는 비율은 10만 인년당 1362건이었다. 체중 변화가 없다고 밝힌 그룹에선 이 비율이 10만 인년당 869건으로 떨어졌다. 두 그룹 간 차이는 10만 인년당 493건이었다.

스스로 체중을 빼고자 하는 의도가 적었던 것으로 분류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선 10% 이상 살이 빠진 그룹은 10만 인년당 2687건, 변화 없는 그룹은 10만 인년당 1220건 암 환자가 발생했다. 발병 위험이 2배 이상 높았다는 의미다.

대규모 연구를 통해 체중이 갑자기 줄면 위암 간암 췌담도암 등 상부 위장관계암과 림프종 백혈병 등 혈액암, 대장암, 폐암의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을 확인했다. 유방암과 비뇨기암, 뇌종양, 피부암의 일종인 흑색종은 체중 감소와 큰 연관이 없었다.

실제 체중이 10% 이상 빠진 그룹에선 상부 위장관계암이 생긴 환자가 10만 인년당 173건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그룹에선 36건이었다.

그동안 암이 상당히 진행된 후기 암 환자는 체중이 줄어든다는 게 상식처럼 통용됐다. 반면 암 초기엔 체중 감소가 흔치 않다고 알려졌다. 이번 연구에선 진행 정도와 상관없이 암이 있으면 체중 감소가 나타난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연구팀은 설명했다. 조기 진단의 또 다른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건강한 체중 감량과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체중 감소를 구별하기 위해 진행했다”며 “식습관 개선이나 운동량 증가는 건강한 감량으로 이어지는 반면 예기치 않은 체중 감소는 암 때문일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