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유치원보다 싼 대학 등록금…"서울대 장비, 과학고보다 열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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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 선 대학 (2) 17년째 등록금 동결
대학 연구 역량 고사 위기
턱없이 적은 韓 고등교육 투자비
OECD 평균보다 30% 이상 낮아
재정 악화로 R&D 경쟁력 약화
교수 월급 동결돼 우수인력 외면
인재 모셔와도 돈벌이로 내몰려
대학 연구 역량 고사 위기
턱없이 적은 韓 고등교육 투자비
OECD 평균보다 30% 이상 낮아
재정 악화로 R&D 경쟁력 약화
교수 월급 동결돼 우수인력 외면
인재 모셔와도 돈벌이로 내몰려
최근 서울 한 주요 대학은 인공지능(AI) 학과 교수로 미국 대학 박사 출신을 채용하는 데 막판 실패했다. 면접도 잘 마무리했지만 연봉이 발목을 잡았다. 학교가 제시한 연봉은 1억원. 해당 교수가 미국 대학에서 제안받은 연봉은 3억원이었다. 대학 핵심 관계자는 “비교 불가능한 수준 차이라서 막판 설득도 하지 못했다”며 “고급 인재를 교수로 뽑기가 너무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국내 대학의 물적, 인적 기반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등록금 동결, 대학 재정 고갈 ‘악순환’이 장기화하면서 새로운 연구개발(R&D) 투자는 고사하고 고급 인재를 교수로 모시는 것도 버거운 처지가 됐다.
법적으로 올해 대학은 등록금을 5.64% 올릴 수 있다.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3.76%) 1.5배 범위’에서 인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학들은 정부 지원과 무형의 압박으로 동결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등록금을 동결 또는 인하했을 때만 학생 소득 수준에 따라 장학 혜택을 주는 국가장학금II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다. 지난달 말 교육부는 전체 대학에 등록금 동결을 권고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작년 전체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연간 757만원이다. 방학(4개월)을 제외한 월별 등록금이 100만원이 안 되는 셈이다. 해외 대학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은 금액이다. 미국 사립대 등록금(4만2162달러)의 5분의 1에 못 미친다. 대학가에서는 “대학교 등록금이 강아지 유치원보다 싸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온다.
고등교육 정부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202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고등교육 투자비는 1인당 1만8105달러다. 한국은 이보다 30% 이상 낮은 1만2225달러에 불과하다. 반면 초등과 중등 교육 투자비는 OECD 평균보다 각각 약 24.5%, 42.6% 높다. 초·중등까지는 전폭 지원하다가 고등 교육에는 인색한 것이다. OECD 국가 가운데 고등교육비가 초·중등보다 적은 나라는 그리스, 콜롬비아와 한국뿐이다.
대학 재정이 날로 악화하면서 교육 환경도 나빠지고 있다. 우수 인력을 교수로 선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교수 연봉이 동결돼 다른 일자리와 비교해 임금이 턱없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서울 주요 사립대의 A교수는 “최근에 20년 전 월급명세서를 우연히 찾았는데 지금 연봉과 1600만원밖에 차이 나지 않아 놀랐다”며 “20년간 1년에 80만원씩 오른 셈인데 이런 마당에 어떻게 인재를 뽑을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지방 국립대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한 지방 국립대 총장은 “국립대 교원 월급은 2023년 기준 기본급이 1호봉 217만7600원~33호봉 609만4200원”이라며 “우수 교수 유치는 꿈도 꾸지 못한다”고 했다.
어렵게 모셔 온 인재도 연구 대신 ‘돈벌이’로 내몰린다. 대학에서 진행하는 과제는 정부과제, 기업과제로 크게 나뉜다. 정부과제는 학생 인건비, 장비 구입 등을 제외하고는 쓸 수 없다. 결국 교수들은 부족한 연봉을 채우기 위해 기업과제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한 공과대 교수는 “교수로 일하다 보면 연구를 위해 돈을 포기할 것인지, 돈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고 했다.
기기를 빌려 쓰려고 왕복 7시간을 오가는 경우도 있다. 울산에 있는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생 A씨는 “수억원대 자기공명영상(MRI) 관련 장비를 쓰기 위해 3주 동안 매주 3일을 버스로 3시간 반 거리에 있는 서울대에 와야 했다”며 “학교 예산으로 장비 구입은 꿈도 꿀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사립대의 연구비는 2011년 5401억원에서 2022년 4429억원으로 11년 전보다 18% 감소했다. 실험실습비도 같은 기간 2163억원에서 1598억원으로 26%, 도서구입비는 1514억원에서 1128억원으로 25% 줄었다. 입법조사처는 “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 수입 감소가 사립대 교육과 연구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대학·대학원생 교육 투자가 초·중·고생보다 적은 기형적 구조와 대책 없는 대학 등록금 동결 정책을 전면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혜인/강영연 기자 hey@hankyung.com
국내 대학의 물적, 인적 기반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등록금 동결, 대학 재정 고갈 ‘악순환’이 장기화하면서 새로운 연구개발(R&D) 투자는 고사하고 고급 인재를 교수로 모시는 것도 버거운 처지가 됐다.
◆20년 동안 1600만원 오른 교수 월급
26일 한국경제신문이 주요 대학의 등록금심의의결위원회 결정을 종합한 결과, 서울 주요 10개 대학 중 고려대를 제외한 9개 대학이 올해 학부 등록금을 동결하기로 했다. 고려대는 등심위를 진행하고 있어 인상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지만 동결이 유력하다. 2008년 이후 17년째 동결이다.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등록금이 인하된 것과 다름없다.법적으로 올해 대학은 등록금을 5.64% 올릴 수 있다. ‘직전 3개 연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3.76%) 1.5배 범위’에서 인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대학들은 정부 지원과 무형의 압박으로 동결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등록금을 동결 또는 인하했을 때만 학생 소득 수준에 따라 장학 혜택을 주는 국가장학금II 지원을 받을 수 있어서다. 지난달 말 교육부는 전체 대학에 등록금 동결을 권고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작년 전체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연간 757만원이다. 방학(4개월)을 제외한 월별 등록금이 100만원이 안 되는 셈이다. 해외 대학에 비해서도 턱없이 낮은 금액이다. 미국 사립대 등록금(4만2162달러)의 5분의 1에 못 미친다. 대학가에서는 “대학교 등록금이 강아지 유치원보다 싸다”는 자조 섞인 농담이 나온다.
고등교육 정부 지원도 턱없이 부족하다. 2023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 고등교육 투자비는 1인당 1만8105달러다. 한국은 이보다 30% 이상 낮은 1만2225달러에 불과하다. 반면 초등과 중등 교육 투자비는 OECD 평균보다 각각 약 24.5%, 42.6% 높다. 초·중등까지는 전폭 지원하다가 고등 교육에는 인색한 것이다. OECD 국가 가운데 고등교육비가 초·중등보다 적은 나라는 그리스, 콜롬비아와 한국뿐이다.
대학 재정이 날로 악화하면서 교육 환경도 나빠지고 있다. 우수 인력을 교수로 선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교수 연봉이 동결돼 다른 일자리와 비교해 임금이 턱없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서울 주요 사립대의 A교수는 “최근에 20년 전 월급명세서를 우연히 찾았는데 지금 연봉과 1600만원밖에 차이 나지 않아 놀랐다”며 “20년간 1년에 80만원씩 오른 셈인데 이런 마당에 어떻게 인재를 뽑을 수 있겠냐”고 토로했다.
지방 국립대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한 지방 국립대 총장은 “국립대 교원 월급은 2023년 기준 기본급이 1호봉 217만7600원~33호봉 609만4200원”이라며 “우수 교수 유치는 꿈도 꾸지 못한다”고 했다.
어렵게 모셔 온 인재도 연구 대신 ‘돈벌이’로 내몰린다. 대학에서 진행하는 과제는 정부과제, 기업과제로 크게 나뉜다. 정부과제는 학생 인건비, 장비 구입 등을 제외하고는 쓸 수 없다. 결국 교수들은 부족한 연봉을 채우기 위해 기업과제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한 공과대 교수는 “교수로 일하다 보면 연구를 위해 돈을 포기할 것인지, 돈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고 했다.
◆대학원생은 장비 찾아 왕복 7시간
예산 부족으로 연구에 필요한 실험 장비도 제때 구입하지 못하고 있다. 한 대학 교수는 “학교에서 지원하는 장비 구입 사업 규모가 10년 넘게 동결되면서 살 수 있는 장비 수가 매년 줄고 있다”며 “‘서울대에 있는 실험기기가 과학고보다 못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라고 했다.기기를 빌려 쓰려고 왕복 7시간을 오가는 경우도 있다. 울산에 있는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연구하는 대학원생 A씨는 “수억원대 자기공명영상(MRI) 관련 장비를 쓰기 위해 3주 동안 매주 3일을 버스로 3시간 반 거리에 있는 서울대에 와야 했다”며 “학교 예산으로 장비 구입은 꿈도 꿀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사립대의 연구비는 2011년 5401억원에서 2022년 4429억원으로 11년 전보다 18% 감소했다. 실험실습비도 같은 기간 2163억원에서 1598억원으로 26%, 도서구입비는 1514억원에서 1128억원으로 25% 줄었다. 입법조사처는 “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 수입 감소가 사립대 교육과 연구활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교육 현장에서는 대학·대학원생 교육 투자가 초·중·고생보다 적은 기형적 구조와 대책 없는 대학 등록금 동결 정책을 전면 재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혜인/강영연 기자 he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