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증권 제공.
사진=KB증권 제공.
2020년 발생한 800억원대 해외파생상품 투자손실과 관련해 KB증권의 반대매매 실행이 잘못이라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반대매매의 근거였던 금융투자협회 표준약관 역시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서울고등법원 제18 민사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지난 26일 KB증권이 위너스자산운용을 대상으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했다. 원고 일부 승소를 판결했던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KB증권의 '일본 닛케이225 지수 옵션투자 사모펀드' 반대매매와 관련해 위법성을 인정했다.

2심 재판부는 KB증권이 위너스운용 등 투자자를 대상으로 140억원 상당 미수금을 청구한 것을 기각했다. 또 위너스운용 측 투자자가 손실 본 금액의 30%를 배상할 것을 주문했다.

이번 판결이 현재 진행 중인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어 KB증권의 손실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국내 증권사들도 앞으로 해외 파생상품 중개 시 함부로 반대매매를 진행할 수 없게 됐다.

반대매매로 촉발된 미수금 청구 소송


사건의 발단은 코로나19 펜데믹이 발발한 2020년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KB증권은 증시 급락으로 옵션가격이 하락하자 일본 오사카거래소에서 위너스운용이 운용 중인 닛케이 225 주가지수 풋옵션 전부에 대해 반대매매를 진행했다. 계좌에 평가손실이 발생하자 추가 증거금 납부요청(마진콜) 없이 미결제약정을 모두 청산한 것이다.

반대매매는 금융투자협회의 '해외 파생 상품시장 거래총괄 계좌설정 약관' 제14조 제2항에 따른 것이다. 약관은 장중 시세 변동으로 고객의 평가위탁총액이 증거금의 20%보다 낮은 경우 필요한 만큼 고객의 미결제약정을 반대매매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대매매 과정에서 발생한 미수금은 KB증권이 부담했으며, 이후 위너스운용에 미수금과 지연 손해금을 청구했다.

위너스운용은 반대매매를 하면 안 되는 상황에서 KB증권이 임의로 반대매매를 실행해 손실을 확정했다고 오히려 투자자의 손실금을 KB증권이 배상해야 한다고 맞섰다. 항소심을 제기한 위니스운용은 해당 상품은 만기까지 권리실행이 불가능한 '유럽형' 옵션인데도 평가손실만을 이유로 반대매매를 진행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오사카거래소 및 해외 증권사들도 니케이225 옵션 가격 등락을 증거금 산정에만 반영하지, 반대매매 근거로 보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금투협 약관, 자본시장법 위반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금투협 약관에 따라 반대매매를 실행한 KB증권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해당 금투협 약관을 자본시장법상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2심 재판부는 “투자자 보호 및 건전한 거래 질서 도모라는 자본시장법 관계 법령의 입법 목적을 고려하여 볼 때, 이 사건 약관 제14조 2항은 자본시장법을 위반하여 그 효력을 인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금투협 표준약관을 위너스운용 상품에 적용할 수 없다는 해석도 내놨다. 재판부는 “약관 제14조 2항은 유럽형 옵션인 닛케이 풋옵션에 대하여 적용될 수 없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이 사건 반대매매는 적법한 법률적 근거 없이 실행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설명했다.

위너스운용 측 법무법인 클라스한결의 김광중 변호사는 “국가별 상품별 파생상품 약관이 달라야 하는데도 증권사마다 금투협 표준약관을 일괄적으로 쓰는 관행이 있었다"며 "국내 자본시장 선진화와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의미 있는 판결"이라고 말했다.

항소심에서 위니스운용 측 대리인으로 합류한 법무법인 린의 임진석 변호사는 "마진콜 없이 일방적인 반대매매를 해서 투자자들의 평가손실을 확정시키면 안 된다는 자본시장법의 원칙이 다시금 사법부를 통해 분명하게 확인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란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