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하면서도 세심한 매력 물씬…잉키넨, 새해 첫 단추 잘 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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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악단 연주회
드보르자크와 슈트라우스 연주
알프스 교향곡 극적 효과 탁월
슈파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힘·기교 등 나무랄 데 없는 수준
드보르자크와 슈트라우스 연주
알프스 교향곡 극적 효과 탁월
슈파체크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힘·기교 등 나무랄 데 없는 수준
KBS교향악단은 2024년의 첫 정기연주회에서 드보르자크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라는 조합을 들고나왔다. 꽤 모험적인 선곡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유는 두 작곡가가 서로 다르다. 드보르자크의 두 곡은 지명도에 비해 잘 연주되지 않는 편이다. 반면 슈트라우스의 대작 ‘알프스 교향곡’은 거의 매해 빠지지 않고 국내 어디선가 연주하기는 하지만, 여러모로 ‘가성비’가 나쁜 곡이다. 연주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일단 규모 자체가 크고, 평소에 잘 쓰지 않는 악기들을 요구해 빌리는 비용이 추가로 붙는다) 각 연주자에게 대단히 높은 기량을 요구하기 때문에 연주 빈도와 비교해 성공적인 결과가 나오는 경우는 의외로 적다.
‘카니발 서곡’은 KBS교향악단이 2022년 4월 27일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의 지휘로 연주한 바 있다. 하지만 연주 스타일은 그때와 사뭇 달랐다. 에셴바흐는 전반적으로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면서 활기와 역동성에 치중한 연주를 들려준 데 비해 이번에 지휘를 맡은 상임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은 평소처럼 전체적인 짜임새를 탄탄히 구축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고 폭넓은 표현을 추구했다. 트롬본을 통상적인 수준보다 더 강조한 것은 전체적인 균형감을 해치기는커녕 연주에 생생함을 더해줬다. 다만 악장을 맡은 앤드루 해버론(그는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악장이기도 하다)의 바이올린 독주가 좀 지나칠 정도로 달콤하게 들리기는 했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바이올린 독주를 맡은 요세프 슈파체크는 전체적으로 힘과 표현, 기교 등 여러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수준을 보였다. 1악장에서는 긴 호흡으로 무척 안정적인 연주를 들려줬으며, 고적함과 칸타빌레를 잘 결합한 2악장은 꿈결처럼 흘러갔다. 3악장에서 다소 음조가 불안정한 대목이 있었으나 대체로 아주 훌륭한 연주였다. KBS교향악단 역시 3악장 일부 대목에서 약간 난조를 보인 것을 제외하면 독주자를 멋지게 뒷받침했다.
잉키넨은 곡의 짜임새를 안정적으로 구축할 줄 알고 곡에 내재한 ‘줄거리’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데 단연 강점이 있는 지휘자다. ‘알프스 교향곡’처럼 규모가 큰 표제음악은 이런 장점을 극대화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실제로 잉키넨은 이 곡에서 기대 이상의 연주를 들려줬다. 섬세한 현악기군을 비롯해 모든 파트가 정성스럽고 세심하게 연주했으며, 각 장면의 묘사가 생생했고 전환도 뚜렷했다. ‘일출’ ‘정상에서’ 등 어느 오케스트라나 당연히 멋지게 연주해야 옳을 장면은 말할 것도 없고, ‘숲속에 들어감’의 장대함이나 ‘천둥·번개와 폭풍, 하산’의 극적 효과 역시 모자람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특히 깊은 인상을 받은 대목은 ‘일출’ 못지않게 장대하고 찬란하게 연출한 ‘일몰’이었다. 다른 연주에서 간혹 접할 수 있는 쇠잔한 느낌이 아니라 ‘해냈다’는 뿌듯함에 젖어 석양을 바라보는 느낌. 이렇게 연주하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막상 그런 느낌을 주는 공연은 그리 많지 않다. ‘목장에서’에서 카우벨(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워낭)이 다소 소극적으로 들렸다거나, ‘해는 점차 희미해지고’ ‘여운’ 등의 일부 대목에서 금관에 음정 실수가 있었다고 지적하는 것은 전체 공연의 높은 수준을 감안하면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잉키넨과 KBS교향악단은 올해의 첫 단추를 멋지게 끼워 보였다. 앞으로 남은 다른 공연들 역시 이처럼 높은 완성도로 소화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황진규 음악평론가
‘카니발 서곡’은 KBS교향악단이 2022년 4월 27일 크리스토프 에셴바흐의 지휘로 연주한 바 있다. 하지만 연주 스타일은 그때와 사뭇 달랐다. 에셴바흐는 전반적으로 템포를 빠르게 가져가면서 활기와 역동성에 치중한 연주를 들려준 데 비해 이번에 지휘를 맡은 상임지휘자 피에타리 잉키넨은 평소처럼 전체적인 짜임새를 탄탄히 구축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고 폭넓은 표현을 추구했다. 트롬본을 통상적인 수준보다 더 강조한 것은 전체적인 균형감을 해치기는커녕 연주에 생생함을 더해줬다. 다만 악장을 맡은 앤드루 해버론(그는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악장이기도 하다)의 바이올린 독주가 좀 지나칠 정도로 달콤하게 들리기는 했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 바이올린 독주를 맡은 요세프 슈파체크는 전체적으로 힘과 표현, 기교 등 여러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수준을 보였다. 1악장에서는 긴 호흡으로 무척 안정적인 연주를 들려줬으며, 고적함과 칸타빌레를 잘 결합한 2악장은 꿈결처럼 흘러갔다. 3악장에서 다소 음조가 불안정한 대목이 있었으나 대체로 아주 훌륭한 연주였다. KBS교향악단 역시 3악장 일부 대목에서 약간 난조를 보인 것을 제외하면 독주자를 멋지게 뒷받침했다.
잉키넨은 곡의 짜임새를 안정적으로 구축할 줄 알고 곡에 내재한 ‘줄거리’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데 단연 강점이 있는 지휘자다. ‘알프스 교향곡’처럼 규모가 큰 표제음악은 이런 장점을 극대화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실제로 잉키넨은 이 곡에서 기대 이상의 연주를 들려줬다. 섬세한 현악기군을 비롯해 모든 파트가 정성스럽고 세심하게 연주했으며, 각 장면의 묘사가 생생했고 전환도 뚜렷했다. ‘일출’ ‘정상에서’ 등 어느 오케스트라나 당연히 멋지게 연주해야 옳을 장면은 말할 것도 없고, ‘숲속에 들어감’의 장대함이나 ‘천둥·번개와 폭풍, 하산’의 극적 효과 역시 모자람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특히 깊은 인상을 받은 대목은 ‘일출’ 못지않게 장대하고 찬란하게 연출한 ‘일몰’이었다. 다른 연주에서 간혹 접할 수 있는 쇠잔한 느낌이 아니라 ‘해냈다’는 뿌듯함에 젖어 석양을 바라보는 느낌. 이렇게 연주하는 게 당연해 보이지만 막상 그런 느낌을 주는 공연은 그리 많지 않다. ‘목장에서’에서 카우벨(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워낭)이 다소 소극적으로 들렸다거나, ‘해는 점차 희미해지고’ ‘여운’ 등의 일부 대목에서 금관에 음정 실수가 있었다고 지적하는 것은 전체 공연의 높은 수준을 감안하면 큰 의미는 없어 보인다.
잉키넨과 KBS교향악단은 올해의 첫 단추를 멋지게 끼워 보였다. 앞으로 남은 다른 공연들 역시 이처럼 높은 완성도로 소화해낼 수 있기를 바란다.
황진규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