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환 'Just gazing-resting'.
정영환 'Just gazing-resting'.
날이 추운 1월은 대표적인 ‘미술 전시 비수기’다. 주요 미술관에서 열리는 ‘블록버스터 전시’가 예년에 비해 줄어든 올해는 더욱 그렇게 느껴지기가 쉽다. 몇 안되는 상반기 대형 전시들도 모두 2월 이후에 시작한다. 화랑가도 마찬가지다. 올해는 주요 대형 화랑 대부분이 2월부터 전시를 열 계획이다.

그런데도 요즘 미술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연초부터 재미있는 전시가 많아서 즐겁다”는 얘기가 나온다. 유명 작가의 블록버스터 전시가 줄어든 대신, 예술성 있는 작가들의 신선한 작품을 선보이는 전시들이 예년보다 늘었다는 이유에서다. 작가의 이름값이 높지 않고 언론 노출도 적지만 톡톡 튀는 조형이나 강렬한 색채 등으로 최근 미술계의 호평을 받고 있는 ‘숨겨진 보물’ 같은 전시들을 정리했다. 모두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①기괴하고 독창적인 이미지, 김정욱

서울 인사동 OCI미술관에서는 한국화가 김정욱(54)의 개인전 ‘모든 것’이 열리고 있다. 한국화라고 해서 얌전한 산수화를 기대하고 들어간 관객들은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흑백으로 그린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로 부릅뚠 눈과 시선, 마구 뒤섞인 이목구비 등이 기괴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조각과 도자기 작품들도 마찬가지로 독특하다. 미술관 측은 “인간과 에너지, 생명, 우주를 향한 호기심을 ‘김정욱스럽게’ 작품에 풀어낸 전시”라고 설명했다.
김정욱의 작품.
김정욱의 작품.
이미지와 달리 재료와 기법은 철저히 한국적이다. 한지와 장지, 먹 등 전통재료를 사용했다. 취향에 따라 작품이 무섭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독창적인 작품세계’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여실히 느낄 수 있는 전시다. 2월 8일까지 열린다.

②톡톡 튀는 색채, 최나무

최나무 '녹색 불을 지르는 사람'.
최나무 '녹색 불을 지르는 사람'.
서울 인사동 갤러리밈에서 열리고 있는 최나무 작가(46)의 개인전 ‘녹색 불을 다루는 사람’에 들어서면 통통 튀는 강렬한 개성의 색채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형광빛이 도는 초록색과 노란색, 주황색 등을 사용해 내면의 에너지와 열정을 상징하는 ‘불’을 표현했다.

형광빛 색채와 흘러내리고 폭발하는 듯한 표현, 이를 통한 자기표현은 한국 작가 그림 중 손꼽힐 정도로 강렬한 에너지를 전달한다. 작가는 “활활 타오르며 불을 쏘아대고 지르는 캐릭터를 통해 에너지를 전달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2월 18일까지 열린다.

③ 아름다운 상상의 숲, 정영환

정영환 'Mindscape'.
정영환 'Mindscape'.
서울 논현동 서정아트에서는 ‘푸른 숲 화가’로 알려진 정영환(54)의 개인전 ‘에코 인 사일런스’가 열리고 있다. 정영환은 세필붓과 전통 서양화법으로 미묘한 색채의 아름다운 숲 풍경을 정교하게 그리는 화가다. 그의 작품에는 독특한 안정감이 있다. 숲의 모든 나무와 잎사귀를 기하학적인 규칙에 따라 배열한 덕분이다.

세련된 이미지 덕분에 작년 3월 서울모빌리티쇼에서 현대차와 디지털 아트를 만드는 협업을 하기도 했다. 당시 행사장에서 작가는 현대차의 콘셉트카인 ‘제네시스 X 컨버터블’을 자신의 풍경화 속에 그려 넣었다. 작가는 “이명과 청력 문제 등으로 최근 몇 년 새 두통과 우울증에 시달렸다”며 “숲 그림들을 그리면서 스스로가 위로받았기에, 관람객들도 함께 그림을 보며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시는 2월 17일까지.

④ 스위스 신예 작가, 제레미

제레미의 'Miss Cyclope'.
제레미의 'Miss Cyclope'.
해외 젊은 신예 작가들의 도발적인 전시도 열리고 있다. 서울 삼청동 페레스프로젝트에서 열리고 있는 스위스 신예 작가 제레미(28)의 아시아 첫 개인전 ‘폭풍의 눈’이 대표적이다. 그는 고대 신화와 판타지 문학, 성소수자 문화 등을 주제로 한 독창적인 화풍의 작품들을 선보인다. 페레스프로젝트 서울은 “2021년 제네바예술대학교(HEAD)를 졸업한 작가 제레미는 고대 신화와 판타지 문학을 소재로 한 독창적인 화풍으로 유럽 예술계에서 주목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조은혜 디렉터는 “미인대회에서 우승을 한 외눈박이 괴물 키클롭스, 서로 끌어안고 키스를 하는 천사와 악마 등은 어디서도 볼 수 없던 색다른 풍경”이라며 “전시장에 준비된 사운드 트랙과 함께 작품을 감상하면 상상의 한계를 넘나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3월 3일까지 열린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