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흘간 화재' 테슬라 메가팩…"리튬은 없는 게 낫다"?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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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는 에너지 분야 소식을 국가안보적 측면과 기후위기 관점에서 다룹니다.
에너지저장의 세계-下 지난해 9월 테슬라의 호주 퀸즐랜드주 메가팩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메가팩은 테슬라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기반으로 만든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다. 외신에서는 "메가팩이 또…?"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2021년에도 호주 빅토리아주에 설치된 메가팩 배터리에서 불이 붙어 완전히 진압하는 데만 꼬박 사흘이 걸렸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배터리 ESS'의 탈(脫)리튬 연구가 가속화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테슬라는 2015년 가정용 ESS 파워월을 공개해 처음 시장에 발을 들인 이후 2019년엔 산업용 ESS(메가팩)를 출시했다. 작년 4월엔 중국 상하이에도 메가팩 전문 생산공장(메가팩토리)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외 첫 메가팩토리로 중국을 택한 것은 신재생에너지 1위 시장인 중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가연성 유기 전해질을 사용하는 리튬 배터리는 근본적으로 화재 위험성을 안고 있다. 메가팩의 '3일 화재'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발전소급 대규모 ESS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양은 전기차 한 대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양보다 훨씬 더 많다"며 "그만큼 화재를 일으키는 불량 배터리가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은 자체 배터리 및 ESS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테슬라를 제외하면 배터리 제조 기반이 부족한 미국은 연간 소비 물량의 90%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에 미국 정부는 2022년 세금 공제 혜택 등이 담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꺼내들었다. 유럽 역시 연간 배터리 수요의 80%를 중국 등 해외에서 충당하고 있는 실정인 만큼 역내 생산을 늘리기 위해 70억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내걸었다. EU와 별개로 '그리드 부스터' 계획을 밝힌 독일 정부는 ESS 확충을 통해 전력망의 과부하를 덜어내고 있다.
미국을 필두로 호주, 중국 등 세계 주요국에서는 장주기 ESS를 키우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짧게 발전하는 단주기 ESS보다 안정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리튬 계열 배터리 방식의 ESS는 발전 시간이 4시간 이하라는 점에서 통상 단주기 ESS로 분류된다. 이에 반해 장주기 ESS는 6~8시간 이상 발전 시간이 지속된다. 양수발전소도 통상 장주기 ESS로 분류되지만 입지 조건이 까다로운 탓에 다양한 장주기 ESS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발전량이 들쑥날쑥한 신재생에너지원에는 40% 가량의 신뢰도를 인정하고 있는 데 반해 장주기 ESS의 안정성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다양한 장주기 ESS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이산화탄소 기반의 장주기 배터리를 개발한 이탈리아 에너지돔, 액화 공기를 저장했다가 발전하는 영국 ESS업체 하이뷰 파워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 기업들이 장악한 나트륨황(Nas) 배터리도 ESS용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중에서도 주로 수계 전해질을 사용하는 플로우 배터리가 차세대 장주기 ESS용 배터리로 주목받고 있다. 노르웨이 미의 여신 '비나디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광물 바나듐을 기반으로 한 바나듐 플로우 배터리(VFB)가 대표적이다. 에너지 밀도가 낮아 크기가 크지만, 화재 위험성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전기차 배터리보다 ESS용으로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기업 에이치투가 VFB 분야 강자로 꼽힌다.
한국 정부도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확대 보급에 따라 2036년까지 장주기 ESS를 20.85기가와트(GW) 규모로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동 중인 발전소 규모가 총 135GW 가량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비중을 장주기 ESS에 할당한 셈이다. ESS 업계 관계자는 "원자력발전이 확대될 경우 (신재생에너지발전보다) 단가가 싼 전력을 사와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성 측면에서 ESS 업계에도 긍정적"이라고 전망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에너지저장의 세계-下 지난해 9월 테슬라의 호주 퀸즐랜드주 메가팩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메가팩은 테슬라의 리튬이온 배터리를 기반으로 만든 대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다. 외신에서는 "메가팩이 또…?"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2021년에도 호주 빅토리아주에 설치된 메가팩 배터리에서 불이 붙어 완전히 진압하는 데만 꼬박 사흘이 걸렸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배터리 ESS'의 탈(脫)리튬 연구가 가속화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테슬라가 올인한 메가팩…화재 위험성 내포한 리튬 계열
잇단 화재는 테슬라 ESS 사업이 처한 딜레마를 보여준다. 테슬라는 전기자동차, 리튬이온 배터리 제조라는 본업 외에도 ESS 사업을 키우고 있다. 전기차 충전과 신재생에너지의 간헐성(낮과 밤, 날씨 등에 따라 발전량이 들쑥날쑥한 문제)을 해결하려면 '전력 저장'이 차세대 먹거리가 될 것이라 판단해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화려한 전기차 시장에 늘상 가려져 있던 ESS가 세계 각국의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테슬라는 2015년 가정용 ESS 파워월을 공개해 처음 시장에 발을 들인 이후 2019년엔 산업용 ESS(메가팩)를 출시했다. 작년 4월엔 중국 상하이에도 메가팩 전문 생산공장(메가팩토리)을 짓겠다고 발표했다. 미국 외 첫 메가팩토리로 중국을 택한 것은 신재생에너지 1위 시장인 중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가연성 유기 전해질을 사용하는 리튬 배터리는 근본적으로 화재 위험성을 안고 있다. 메가팩의 '3일 화재'가 언제든 재현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발전소급 대규모 ESS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양은 전기차 한 대에 들어가는 배터리의 양보다 훨씬 더 많다"며 "그만큼 화재를 일으키는 불량 배터리가 포함돼 있을 가능성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유럽 등 서방 국가들은 자체 배터리 및 ESS 기술력을 확보하기 위해 혈안이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테슬라를 제외하면 배터리 제조 기반이 부족한 미국은 연간 소비 물량의 90%를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다. 이에 미국 정부는 2022년 세금 공제 혜택 등이 담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꺼내들었다. 유럽 역시 연간 배터리 수요의 80%를 중국 등 해외에서 충당하고 있는 실정인 만큼 역내 생산을 늘리기 위해 70억달러 규모의 보조금을 내걸었다. EU와 별개로 '그리드 부스터' 계획을 밝힌 독일 정부는 ESS 확충을 통해 전력망의 과부하를 덜어내고 있다.
미국을 필두로 호주, 중국 등 세계 주요국에서는 장주기 ESS를 키우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짧게 발전하는 단주기 ESS보다 안정성이 높다는 판단에서다. 리튬 계열 배터리 방식의 ESS는 발전 시간이 4시간 이하라는 점에서 통상 단주기 ESS로 분류된다. 이에 반해 장주기 ESS는 6~8시간 이상 발전 시간이 지속된다. 양수발전소도 통상 장주기 ESS로 분류되지만 입지 조건이 까다로운 탓에 다양한 장주기 ESS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
화재 위험 없는 '비(非)리튬, 장주기' ESS에 여신(女神)이?
미국 에너지부는 IRA가 발효되기 1년 전 이미 '장주기 에너지 저장 계획(Long Duration Storage Shot)'을 발표했다. 미 에너지부는 "2030년까지 에너지 저장 비용을 2020년 대비 90% 낮은 킬로와트시(kWh)당 0.05달러로 평준화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와 동시에 "기존의 리튬 배터리를 넘어선 다양한 에너지 저장 기술이 구축돼야 한다"며 장주기 ESS를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낙점했다. 미 캘리포니아 주정부는 2021년부터 ESS 프로젝트 입찰에서 단주기 ESS를 배제하거나 비(非)리튬 계열 배터리 기술 등 요구조건을 내걸었다. 시장을 선점한 리튬 배터리가 진입하지 못하게 장벽을 세워 장주기 ESS용 배터리를 육성하겠다는 취지다. 미국 최대 전력망기업 PJM은 장주기 ESS의 신뢰도(ELCC)를 100%로 부여하기로 했다.발전량이 들쑥날쑥한 신재생에너지원에는 40% 가량의 신뢰도를 인정하고 있는 데 반해 장주기 ESS의 안정성을 인정한다는 의미다. 다양한 장주기 ESS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이산화탄소 기반의 장주기 배터리를 개발한 이탈리아 에너지돔, 액화 공기를 저장했다가 발전하는 영국 ESS업체 하이뷰 파워 등이 대표적이다. 일본 기업들이 장악한 나트륨황(Nas) 배터리도 ESS용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중에서도 주로 수계 전해질을 사용하는 플로우 배터리가 차세대 장주기 ESS용 배터리로 주목받고 있다. 노르웨이 미의 여신 '비나디스'의 이름에서 유래한 광물 바나듐을 기반으로 한 바나듐 플로우 배터리(VFB)가 대표적이다. 에너지 밀도가 낮아 크기가 크지만, 화재 위험성이 극히 드물기 때문에 전기차 배터리보다 ESS용으로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기업 에이치투가 VFB 분야 강자로 꼽힌다.
한국 정부도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신재생에너지 확대 보급에 따라 2036년까지 장주기 ESS를 20.85기가와트(GW) 규모로 구축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동 중인 발전소 규모가 총 135GW 가량인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비중을 장주기 ESS에 할당한 셈이다. ESS 업계 관계자는 "원자력발전이 확대될 경우 (신재생에너지발전보다) 단가가 싼 전력을 사와 저장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성 측면에서 ESS 업계에도 긍정적"이라고 전망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