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데드맨 스틸컷. 팔레트픽처스 제공
영화 데드맨 스틸컷. 팔레트픽처스 제공
“죽는 게 힘드냐 사는 게 힘드냐. 사는 게 더 힘들지, 사는 건 돈이 드니까. ” (영화 ‘데드맨’ 중)

삶의 바닥을 찍은 한 남자가 있다. 장기라도 팔아서 돈을 마련하려는데 누군가가 장기를 팔지 말고 이름을 팔라고 한다. 겉으로만 사장처럼 지내는 ‘바지 사장’을 해보라는 제안이었다. 깊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콩팥도 팔려고 했는데 이름 좀 빌려주는 게 대수일까.

남자는 열심히 바지사장 일을 하고 업계의 에이스로 자리매김 했다. 사랑하는 아내와 곧 태어날 아이를 생각하며 열심히 일하던 어느날, 뉴스에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보게된다. 무려 1000억원 횡령범 당사자로 말이다. 삶의 바닥을 찍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영화 ‘데드맨’은 바지사장 일을 하던 이만재(조진웅 분)가 이름을 내어준 대가로 모든 것을 잃고 세상에는 ‘죽은 사람’이 되면서 겪는 이야기다. 이만재는 이름 하나로 깡패, 정치권 등 여러 인물들과 얽히게 되고, 빼앗긴 자신의 인생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준원 감독은 2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름값, 책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 바지사장이라는 소재를 택했다”며 “개인에서부터 자본, 권력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과연 책임을 지고사는가’라는 마음 속 질문을 영화를 통해 풀어냈다”고 밝혔다.
팔레트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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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잘못 팔았다가 죽음 사람이 된 그에게 정치 컨설턴트 심 여사(김희애)가 협업을 제안한다. 심 여사는 만재가 횡령했다는 돈이 정치권으로 흘러 들어갔을 것으로 보고 사건의 배후를 쫓고, 이 과정에 만재를 이용하기로 한다. 여기에 만재처럼 바지사장으로 일하다 목숨을 잃은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려는 희주(이수경)도 이 추적에 합세한다.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지사장'이다. 이를 통해 '이름값'과 그에 따른 책임을 지지 않을 경우 얼마나 혹독한 대가를 치뤄야 하는지 영화는 생생히 묘사한다. 이름은 벼랑 끝에 내몰린 이들이 손쉽게 팔 수 있는 것 중 하나다. 그렇게 팔린 명의는 주로 범죄에 활용된다. 우리 주변에도 흔하다. 보이스피싱를 비롯한 금융사기 등이 대표적이다.
팔레트픽처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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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감독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2006)의 각본을 공동 집필했다. 이번 작품이 그의 첫장편 데뷔작이다. 그는 돈을 받고 이름을 파는 사람들을 5년에 걸쳐 취재해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고. 봉준호와 인연이 깊은 그는 "초창기 대본 작업때 봉 감독이 많은 조언을 해줬다"고도 했다.

많은 시간을 들여 작업한 만큼 영화에는 많은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것을 담고자 한 탓일까. 다소 잔가지가 많고 산만하다는 느낌을 준다. 이만재라는 한 개인의 이야기가 중심인듯 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초점을 맞추는 이야기는 정경유착이다. '결국 배후는 정치권'이라는 전개는 다소 기시감이 든다. 최종 '빌런'이 등장하기까지 벌어지는 소소한 반전들 또한 크게 임팩트 있지는 않다.

이 가운데 복잡하고 다양한 내용을 다루려다보니 캐릭터의 입체성이나 스토리 전개가 촘촘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무리 또한 급작스럽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지루할틈 없는 전개와 배우들의 호연은 충분히 흥미롭다. 조진웅은 수완좋은 바지사장부터 죽음의 문턱에서 살아돌아온 이만재라는 인물의 다채로움을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김희애의 연기 변신도 볼거리다. 김희애는 극중 냉철하고 노련한 정치계의 그림자 심 여사로 분해 신선한 연기를 선보였다. 감독이 의도한 '메시지 전달' 측면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연휴에 재밌게 즐기기에는 충분한 작품이다. 오는 2월 7일 개봉. 상영 시간 108분.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