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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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작가 주호민 씨의 아들을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특수교사가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주 씨 측이 교사의 학대발언을 몰래 녹음한 음성파일의 증거 능력을 인정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형사9단독 곽용헌 판사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특수교사 A씨에 대해 벌금 200만원의 선고를 유예했다. 선고유예는 경미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일정 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유예일로부터 2년이 지나면 선고를 면해주는 판결이다.

A씨는 2022년 9월 경기 용인의 한 초등학교 맞춤 학습반 교실에서 당시 9세인 주 씨 아들에게 "버릇이 매우 고약하다. 아휴 싫어. 싫어 죽겠어. 너 싫다고"라고 발언하는 등 정서적으로 학대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아동학대 정황을 파악한 주 씨 측은 등교하는 아들 가방에 녹음기를 넣은 뒤 업 과정에서 녹음된 내용 등을 기반으로 A씨를 경찰에 신고했다. 이후 용인시 아동학대 관련 부서는 A씨의 언행이 피해 아동의 정서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녹음 파일의 증거 효력이었다. 기존 대법원 판례는 '공개되지 않은 타인 간 대화'를 녹음한 파일 등은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라 증거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법원은 지난달 11일 학부모가 자녀의 가방에 몰래 녹음기를 넣어 담임 교사의 정서적 학대 발언을 녹음한 파일은 재판에서 증거로 쓰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주 씨 측은 "몰래 녹음 외엔 장애아동인 아들에 대한 교사의 학대를 밝혀낼 방법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판에서 곽 판사는 "위법수집 증거가 있었다"며 "통신비밀보호법상 공개되지 않는 타인과의 대화에 해당한다는 게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다만 곽 판사는 "(이는) 형법 제20조 정당행위로 보인다"며 "이 사건의 경우 피해자 모친이 아동학대 정황을 확인하기 위해 대화를 녹음한 것이기 때문에 정당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곽 판사는 "피해자가 다닌 학급은 CCTV가 설치돼 있지 않아 녹음 외엔 학대 정황을 확인하기 어려운 점을 고려할 때 녹음파일은 충분히 증거로 인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곽 판사는 또 녹음된 A씨 발언이 '정서적 아동학대'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는 "녹음된 음성 크기 등에 비춰 보면 감정 이해가 어려운 자폐성 장애아동이라고 해도 정신건강·발달을 저해할 위험과 가능성이 존재했다고 보인다"며 "특수교사로서 전문성을 가진 피고인에게 미필적으로나마 정서적 학대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선고 직후 주 씨는 취재진에게 "자기 자식이 학대당했음을 인정하는 판결이 부모로서는 반갑거나 전혀 기쁘지 않다"며 "이 사건이 장애 부모와 특수교사들 간에 어떤 대립으로 비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A씨의 변호인은 항소할 뜻을 밝혔다. 김기윤 변호사는 "(피해 아동 측이) 몰래 녹음한 부분에 대해 재판부가 증거 능력을 인정했는데 경기도교육청 고문 변호사로서 재판부에 상당한 유감을 표한다"며 "몰래 녹음에 대해 유죄 증거로 사용할 경우 교사와 학생 사이에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교원단체들은 일제히 반발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장애 학생들과 밀착 접촉하는 과정에서 폭언·폭행까지 감내하던 특수교원들의 교육 활동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며 "'교육활동 중인 교원의 영상·화상·음성 등을 촬영·녹화·녹음·합성해 무단으로 배포하는 행위'를 교육활동 침해 행위로 명시한 현행 교육부 고시도 무력화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민경진/강영연 기자 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