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장 재판’은 김명수 대법원장 재임 기간(2017~2023년)에 본격화됐다.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권력을 개혁하겠다며 도입한 인사제도들이 늦장 재판을 부추겼기 때문이다. ‘법관의 꽃’인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가 폐지되자 승진길이 막힌 고법 판사들은 일할 동력을 잃었고, ‘법원장 추천제’는 인기 투표로 전락했다.

1일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전국 판사 수는 2017년 말 2903명에서 2022년 말 3016명으로 늘었고, 1심 재판에서 민사 합의사건 처리 건수는 같은 기간 102만 건에서 76만 건으로 줄었다. 판사는 늘고 사건은 줄었는데, 1심 판결 기간은 평균 294일에서 420일로 43% 길어졌다.

법조계 안팎에선 ‘법원의 허리’ 역할을 하는 고법 판사가 줄줄이 이탈하면서 ‘재판 지연’이 심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표를 낸 고법 판사는 2019년 1명에서 2020년 11명, 2021년 9명, 2022년 13명, 2023년 15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신임 판사들이 이 자리를 채웠지만 전문성이 떨어져 재판이 지연되기 일쑤였다.

잦은 재판부 교체도 재판 지연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재판부가 바뀌었을 때 피고인이 원하면 주요 증인신문 녹음파일을 법정에서 다시 들어야 한다. 그럴 때마다 재판은 늦어진다. 4년11개월을 끈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1심 재판은 2021년 2월 재판부 전원이 교체되면서 7개월간 과거 증인신문 녹취파일을 재생하기도 했다.

지난해 말 취임한 조희대 대법원장이 ‘재판 지연 해소’를 약속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법원행정처는 예규를 개정해 법관의 사무 분담 기간을 1년씩 연장했다. 이달 정기 인사부터 재판부 교체 주기가 재판장 3년, 배석판사 2년으로 늘어난다. 판사 업무를 돕는 재판연구원 정원도 350명에서 400명으로 확대했다.

하지만 판사 증원은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3214명인 판사 정원을 2027년까지 370명 증원하는 판사 정원법 개정안이 2022년 발의됐지만 2년째 국회에 묶여 있다. 올해 판사 순증 인원은 21명뿐이다.

허란/민경진 기자 wh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