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사람들' 이성진 감독 "앞으로도 한국계 이민자로서 고민을 작품에 담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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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열린 미국 에미상 시상식 풍경은 다소 이색적이었다.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를 인정받는 이 시상식에 그야말로 '이방인들의 잔치'가 열렸기 때문이다. 한국계 제작진과 배우들이 대거 투입된 넷플릭스 드라마 '성난 사람들'(BEEF)이 에미상 8관왕에 오르면서다.
2일 화상 간담회를 통해 성난 사람들의 주역 한국계 미국인 이성진(43) 감독과 주연 배우 스티븐 연(41)을 만났다. 한국 언론과 처음으로 만난 이들은 편한 차림새로 등장해 한국어 인사를 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성난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도급업자와 삶이 불만족스러운 사업가, 이들 사이에 난폭 운전 사건이 발생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두 사람은 "(성난 사람들은) 내 마음속 어둠을 타인을 통해 바라보게 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작품"이라며 "캐릭터에서 우리의 일부를 볼 수 있어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난폭 운전에서 시작해 서로의 어둠을 인식하고 유대를 느끼게 돼요. 그 과정을 진실하게 그리고자 했죠."(이성진 감독)
12세에 미국으로 이주한 이 감독은 2008년 미국 시트콤 ‘필라델피아는 언제나 맑음’의 각본을 쓰면서 방송작가로 데뷔했다. 그는 이번 수상을 예상했느냐는 질문에 "확신과 회의를 오갔다"고. "예술을 설명한 벤 다이어그램이 있는데, 한쪽 원에는 자기 의심이고, 다른 쪽에는 고삐 풀린 나르시시즘이 있고 그 교집합이 예술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양쪽을 오갔던 것 같네요. " 스티븐 연은 "(상 받기를) 희망했다"며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신뢰와 자신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품을 통해)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에 사람들이 반응해서 감사할 뿐이에요. "
이들은 연신 동료 배우와 제작진들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을 표했다. 이 감독은 "눈앞에 닥친 일 때문에 창조의 과정을 즐기는걸 잊곤 한다"며 "그럴 때 동료들이 내가 과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지해줬다"고 말했다. 작품 속 대니 역을 맡은 스티븐 연은 "동료가 '대니를 포기하지 말라'고 해줘서 해낼 수 있었다"고 했다.
스티븐 연은 다섯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 단역부터 차근차근 경력을 쌓았다. 좀비 드라마 ‘워킹데드’에 출연했으며 한국계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2021)에 제이콥 역으로 출연해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그도 '대니'를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대니는 우리 모두가 가진 수치심을 집약한 인물입니다. 몹시 무력하고 통제력을 갖고 있지 앉죠. 저도 가장 불안하다고 느낄 때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그런 대니에 완벽히 몰입하고 자신을 내려놓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 작품에는 한인 이민자들의 삶이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한인 교회의 문화를 비롯해 한국 음식 등 다양한 한국적 코드가 곳곳에 녹아있다. 이에 대해 두 사람은 "많은 이들이 대화하고 협력한 결과물"이라고 했다. 일례로 극 중 대니는 미국 록밴드 인큐버스의 히트곡 '드라이브'(1999)를 부르는데, 실제로 이 감독과 스티븐 연이 한인교회에서 찬양팀으로 활동할 때 연주하고 불렀던 곡이라고 했다. 스티븐 연은 "이번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우리의 이야기였다"며 "이민자로서 직접 겪은 현실을 함께 얘기하다보니 비슷한 점이 많았고 이를 진실하게 담아내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실제 난폭운전을 당하게 되면서 이 작품을 구상했다. 정체 모를 난폭 운전자가 그에겐 행운의 날개가 된 셈이다. "제 기억으로 그 차는 흰색 SUV 차량이었고, BMW의 'X3' 모델이었습니다(웃음). 결과적으로 그에게 감사해요. 그날 그가 난폭운전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이 없었을 거예요. 이런걸 보면 삶은 참 희한하면서도 아름다워요. "
이 감독은 "앞으로도 한국계 이민자로 살면서 겪는 고민을 작품에 담을 것"이라고 했다. "그 주제 자체가 제 안에 깊이 박혀있습니다. 작품에도 많은 부분이 담겨있고, 앞으로 내놓을 작품에도 이를 담고자 합니다. "
배우로서 오랜 노력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온 스티븐 연. 그는 이번 수상을 통해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과거에는 왜 내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것이 주어지지 않는지,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저에게 돌아간다면 '괜찮아, 마음 편히 먹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제 자신에게 더 친절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
2일 화상 간담회를 통해 성난 사람들의 주역 한국계 미국인 이성진(43) 감독과 주연 배우 스티븐 연(41)을 만났다. 한국 언론과 처음으로 만난 이들은 편한 차림새로 등장해 한국어 인사를 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성난 사람들은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도급업자와 삶이 불만족스러운 사업가, 이들 사이에 난폭 운전 사건이 발생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두 사람은 "(성난 사람들은) 내 마음속 어둠을 타인을 통해 바라보게 되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작품"이라며 "캐릭터에서 우리의 일부를 볼 수 있어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난폭 운전에서 시작해 서로의 어둠을 인식하고 유대를 느끼게 돼요. 그 과정을 진실하게 그리고자 했죠."(이성진 감독)
12세에 미국으로 이주한 이 감독은 2008년 미국 시트콤 ‘필라델피아는 언제나 맑음’의 각본을 쓰면서 방송작가로 데뷔했다. 그는 이번 수상을 예상했느냐는 질문에 "확신과 회의를 오갔다"고. "예술을 설명한 벤 다이어그램이 있는데, 한쪽 원에는 자기 의심이고, 다른 쪽에는 고삐 풀린 나르시시즘이 있고 그 교집합이 예술이라고 하더라고요. 저도 양쪽을 오갔던 것 같네요. " 스티븐 연은 "(상 받기를) 희망했다"며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에 대해 신뢰와 자신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작품을 통해)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이야기를 할 수 있고, 그에 사람들이 반응해서 감사할 뿐이에요. "
이들은 연신 동료 배우와 제작진들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을 표했다. 이 감독은 "눈앞에 닥친 일 때문에 창조의 과정을 즐기는걸 잊곤 한다"며 "그럴 때 동료들이 내가 과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지해줬다"고 말했다. 작품 속 대니 역을 맡은 스티븐 연은 "동료가 '대니를 포기하지 말라'고 해줘서 해낼 수 있었다"고 했다.
스티븐 연은 다섯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해 단역부터 차근차근 경력을 쌓았다. 좀비 드라마 ‘워킹데드’에 출연했으며 한국계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2021)에 제이콥 역으로 출연해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그도 '대니'를 연기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대니는 우리 모두가 가진 수치심을 집약한 인물입니다. 몹시 무력하고 통제력을 갖고 있지 앉죠. 저도 가장 불안하다고 느낄 때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거든요. 그런 대니에 완벽히 몰입하고 자신을 내려놓는 게 쉽지만은 않았어요. " 작품에는 한인 이민자들의 삶이 구체적으로 그려진다. 한인 교회의 문화를 비롯해 한국 음식 등 다양한 한국적 코드가 곳곳에 녹아있다. 이에 대해 두 사람은 "많은 이들이 대화하고 협력한 결과물"이라고 했다. 일례로 극 중 대니는 미국 록밴드 인큐버스의 히트곡 '드라이브'(1999)를 부르는데, 실제로 이 감독과 스티븐 연이 한인교회에서 찬양팀으로 활동할 때 연주하고 불렀던 곡이라고 했다. 스티븐 연은 "이번 드라마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우리의 이야기였다"며 "이민자로서 직접 겪은 현실을 함께 얘기하다보니 비슷한 점이 많았고 이를 진실하게 담아내려고 했다"고 강조했다.
이 감독은 실제 난폭운전을 당하게 되면서 이 작품을 구상했다. 정체 모를 난폭 운전자가 그에겐 행운의 날개가 된 셈이다. "제 기억으로 그 차는 흰색 SUV 차량이었고, BMW의 'X3' 모델이었습니다(웃음). 결과적으로 그에게 감사해요. 그날 그가 난폭운전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작품이 없었을 거예요. 이런걸 보면 삶은 참 희한하면서도 아름다워요. "
이 감독은 "앞으로도 한국계 이민자로 살면서 겪는 고민을 작품에 담을 것"이라고 했다. "그 주제 자체가 제 안에 깊이 박혀있습니다. 작품에도 많은 부분이 담겨있고, 앞으로 내놓을 작품에도 이를 담고자 합니다. "
배우로서 오랜 노력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온 스티븐 연. 그는 이번 수상을 통해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법을 배우고 있다"고.
"과거에는 왜 내게 마땅히 주어져야 할 것이 주어지지 않는지, 화를 내기도 했습니다. 과거의 저에게 돌아간다면 '괜찮아, 마음 편히 먹어'라고 말해주고 싶네요. 제 자신에게 더 친절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배우는 중입니다. "
최다은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