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견 건설회사가 수도권과 지방 소규모 재건축·재개발 틈새시장 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대형 건설사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지방 미분양 등으로 숨을 고르는 사이 일부 중견 건설사가 가격 경쟁력과 건축 노하우를 앞세워 수주를 늘리고 있다. 부동산 상승기 때 대형 건설사의 물량 공세로 도시정비 수주에서 어려움을 겪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시공사 찾기가 어려웠던 재건축 조합도 최근 중견 건설사의 영토 확장을 반기는 분위기다.

○중견 건설사 나서자 사업성 쑥

"재건축 틈새 공략"…HJ·한신·대보 '방긋'
2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HJ중공업 건설부문은 지난달 부산 사하구 당리1구역과 괴정2구역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연이어 수주했다. 당리동과 괴정동에 각각 136가구, 225가구를 짓는 소규모 정비사업이다. 하지만 대규모 브랜드타운 조성의 첫걸음이라는 게 내부 평가다.

당리1구역과 괴정2구역은 서로 맞붙어 있다. 부산지하철 1호선 사하역도 가깝다. 그러나 소규모 재건축이어서 그동안 사업성 확보가 쉽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HJ중공업이 인접한 당리2구역과 괴정3구역까지 수주를 준비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시공사 선정을 앞둔 당리2와 괴정3구역까지 묶어 4개 구역, 800가구의 ‘해모로’ 브랜드타운으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이다. 주민도 브랜드타운 조성 기대가 크다. 개별로 진행할 경우 사업성이 낮아 공사비 부담이 커 시공사 선정이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조합 관계자는 “중견 건설사가 참여해 사업성 확보 기대가 크다”며 “대형 건설사에 비해 공사비는 상대적으로 낮은 데다 대단지로 조성하기 때문에 사업성이 최소 15% 향상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비사업 일감을 늘리는 건설사가 적지 않다. ‘한신더휴’ 브랜드를 쓰는 한신공영은 지난해에만 서울 금천구 시흥 현대아파트, 경기 고양 행신2-1구역, 의왕시 우성4차, 부산 동래구 낙민1구역 등을 잇따라 수주하며 ‘1조 클럽’(1조1000억원)에 가입했다. 대보건설도 2021년 정비사업에 진출한 이후 15건의 수주 실적을 올렸다.

두산건설은 지난달에만 4개 사업을 수주하는 등 영업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연간 수주 규모만 2조5246억원에 달했다. 코오롱글로벌도 올해 부산 사하구 하단1구역의 재건축 시공권을 확보하는 등 소규모 도시정비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있다.

○대형사 빈자리 채우는 중견 건설사

최근 중견 건설사의 정비사업 수주가 늘어나는 이유는 부동산 경기 침체와 관련이 있다. 몇 년 전 부동산 급등기엔 대형 건설사가 소규모 정비사업까지 독식하며 중견 건설사의 설 자리가 좁았다. 중견 건설사 임원은 “조합 입장에서도 유명 브랜드를 달기 위해 공사비가 더 들더라도 대형건설사를 선택한다”며 “최근엔 대형 건설사가 수주전에서 빠지면서 중견 건설사에 기회가 늘었다”고 했다.

치솟은 공사비와 금리 부담 등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부 신용도 높은 중견 건설사는 중도금 무이자 혜택 등을 제시하고 공사비도 합리적 수준으로 책정하고 있다. 한 수도권 가로주택정비사업 조합장은 “대형사가 3.3㎡당 800만원 넘는 공사비를 요구할 때 중견사는 200만원 낮춰 제시했다”며 “공사비가 워낙 비싸다 보니 조합원도 브랜드보다 실리를 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 들어 일부 중견 건설사는 정비사업 수주 목표도 높여 잡고 있다. 2021년 연간 정비사업 수주 목표를 2500억원으로 설정한 HJ중공업 건설부문은 올해 8000억원으로 올렸다. 정부의 정비사업 규제 완화와 맞물려 소규모 사업지에서 기회가 더 늘어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보건설도 지난해 수주액(3200억원)보다 10% 높은 3500억원을 목표치로 설정했다. 대보건설 관계자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사업성이 높다고 판단되면 적극적으로 수주전에 참여할 계획”이라고 했다. 한신공영 관계자도 “서울이면 무조건 뛰어들고 경기도에서도 수주전에 적극 나설 예정”이라고 말했다.

유오상 기자 osy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