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1월 31일 오후 4시 36분

연초 회사채 시장 ‘완판’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신용등급 AA급 우량채부터 BBB급 비우량채까지 대규모 매수 주문이 몰리고 있다. 회사채 발행 일정이 촘촘하게 몰리면서 이례적으로 기업 4~5곳이 같은 날 수요예측을 하는 ‘빅데이’가 반복되는 분위기다.

○회사채 시장 ‘문전성시’

'BBB급'도 완판…연초부터 달아오른 회사채 시장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을 한 50여 개 기업 가운데 한화솔루션과 CJ ENM이 일부 미매각된 것을 제외하곤 모두 목표 물량을 채운 것으로 집계됐다. 미매각된 회사채 물량도 추가 청약을 통해 투자 수요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발행 규모가 큰 AA급 우량채가 시장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다. KB증권(8000억원) 현대제철(5000억원) LG유플러스(5000억원) 등이 연초 회사채 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수혈했다. 신용도가 낮은 BBB급 비우량채에도 ‘훈풍’이 불고 있다. BBB급 회사채 선호도가 높은 개인투자자 등 리테일 시장에서 매수세가 뜨거웠다. 지난달 회사채 수요예측을 한 BBB급 기업인 SLL중앙, AJ네트웍스, 두산퓨얼셀은 모두 목표 물량을 넘는 매수 주문을 받았다.

회사채를 통한 자금 조달을 시도하는 기업이 늘어나면서 투자 수요 확보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같은 날 회사채 수요예측을 하는 기업이 대거 몰리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예컨대 지난달 22일에는 호텔롯데 HD현대중공업 등 다섯 곳이, 23일에는 현대트랜시스와 CJ ENM 등 네 곳이 동시에 회사채 수요예측을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리스크가 엮인 업종은 여전히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대건설 등 일부 대형 건설사를 제외하면 중소형 건설사들은 회사채 시장에 쉽게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부동산 PF 위험 노출도가 높다고 평가되는 캐피털사도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역대급 수치를 기록한 일반 기업 회사채와 달리 지난달 기타금융채(카드·캐피털채) 순발행액은 7235억원에 그쳤다.

○‘옥석 가리기’ 심화할 듯

태영건설 워크아웃이라는 돌발 변수에도 올 들어 수급 환경이 빠르게 개선되면서 회사채 순발행액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한 것으로 관측된다. 연내 기준금리 인하 기대가 커지면서 회사채 투자심리가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채 금리도 안정세를 찾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이날 AA-급 3년 만기 회사채 금리는 0.019%포인트 떨어진 연 3.982%에 마감하는 등 연 4% 밑으로 내려갔다. 여기에 기관들이 지갑을 여는 ‘연초 효과’로 풍부한 유동성까지 더해졌다.

기업들이 자금 조달 시기를 앞다퉈 연초로 당긴 것도 회사채 순발행액이 급증한 요인이다. 당장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자금을 미리 확보하겠다는 움직임이 강하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정혜진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총선 전후로 건설·금융권의 구조조정 우려가 재차 고조될 수 있다는 전망 등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들어서도 회사채 시장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대 1조6000억원 규모의 조(兆) 단위 회사채 발행을 추진 중이다. 이외에 SK텔레콤 대한항공 코웨이 등 30여 곳이 이달 수요예측을 할 계획이다.

회사채 시장 ‘옥석 가리기’가 갈수록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미 많은 기관이 회사채 물량을 확보한 만큼 실적과 신용도 등을 더 깐깐하게 살펴 매수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정윤정 교보증권 연구원은 “투자자들이 개별 기업의 재무 여건과 업황 등을 따지기 시작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