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미래 사회에 걸맞은 의학교육
내과 이 모 교수는 강의 시간에 교재 슬라이드를 8개 제작해 8명의 학생에게 나눠줬다. 선행 학습을 통해 2시간의 강의 중 10분간은 학생이 발표하고 예상 시험문제도 출제하도록 했다. 그동안 듣는 수업에 익숙하던 학생들이라 별다른 기대가 없었지만 강의는 교수의 예상을 뒤집었다. 수업 준비도 좋았고 발표는 토론수업으로까지 이어졌다.

‘거꾸로 학습(flipped learning)’의 형태다. 거꾸로 학습을 위해서는 강의실 구조는 물론 교수와 학생의 사고방식도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 교육개혁이 전제돼야 한다.

가끔 의과대학 1등 졸업이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한다. 이 학생이 탁월한 의학 연구자가 될 수 있을까? 명의가 될까? 아니면 마음이 따뜻한 의사로 성장할까? 질문을 해보지만 바로 답이 나오지 않는다.

한국의 의과대학은 학점으로 줄을 세운다. 학생은 좋은 학점을 받아야 전망 좋은 임상과에 지원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과도한 경쟁이 시작된다. 창의력보다 암기력이 우선되고, 동료를 이끌고 도와주는 리더십은 사라진다.

연세대 의과대학은 10여 년 전 절대평가제를 도입했다. 학점 대신 통과·실패(pass·fail) 제도를 통해 협동정신과 문제 해결 능력 등 학업성취도를 높이는 제도다. 10년이 지나자 놀라운 변화가 생겼다. 학생 주도의 해외 출판 연구논문이 제도 시행 전 ‘제로(0)’에서, 이제 매년 50여 편이나 나온다. 학생들은 변화한 커리큘럼으로 신약이나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교수와 연구기관, 회사에서 연수를 받는다. 세계보건기구에 특별활동을 신청하거나 저개발국가 의료 활동에 나서기도 한다.

대학은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특히 의대는 혁명적으로 바뀌는 의학과 의료 분야에 대비해 교육제도 혁신을 이뤄야 한다. 의학지식은 73일마다 두 배씩 늘어난다. 폭증 수준이다. 더 이상 교수가 모든 걸 가르칠 수 없다. 정보 습득 경로와 속도는 더 다양하면서 빨라지고 있다. 이제 암기능력보다 필요한 정보를 얼마나 정확하게 찾고 이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다양한 문제를 해결하는 융합적 사고능력이 중요한 시대가 됐다. 그래서 렉투리오 같은 교육플랫폼 등이 개발돼 널리 사용되고 있다. 연세 의대 역시 교육 플랫폼 ‘세빛’을 운영하고 있다.

의학과 의료의 빠른 변화로, 이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기대는 더 커지고 있다. 이런 필요에 부응하기 위해 대학은 어떻게 가르치고 배울지 항상 교수법을 고민하고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연세대 의대가 의학교육학과와 의학교육원 등을 설립한 이유기도 하다.

학생 중심의 능동적인 학습이 가능할 때, 학생이 평생학습자로 성장할 때 우리는 우리 의학과 의료의 미래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교육과정 혁신은 계속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