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키예 말라키아주 도심에 방치된 폐건물. 1년이 지났지만 말라키아시 내부엔 철거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다. 오현우 기자
튀르키예 말라키아주 도심에 방치된 폐건물. 1년이 지났지만 말라키아시 내부엔 철거 작업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다. 오현우 기자
"지진으로 마음이 무너진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이곳을 찾아왔어요. (우리는) 집을 잃었지, 꿈을 잃은 게 아니니까요."
튀르키예 동남부 지역 아디야만의 임시 거주촌에서 과학 교육 멘토로 활동하고 있는 데릭 메디즈(오른쪽)와 교육 멘토인 유수프. 오현우 기자
튀르키예 동남부 지역 아디야만의 임시 거주촌에서 과학 교육 멘토로 활동하고 있는 데릭 메디즈(오른쪽)와 교육 멘토인 유수프. 오현우 기자
지난 4일(현지시간) 튀르키예 동남부 지역 아디야만시에 있는 'K2 컨테이너 임시 정착촌'에서 만난 메릭 데니즈(21)씨는 정착촌에 있는 과학 교육 봉사를 하는 이렇게 얘기했다. 데니즈씨는 아다나 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대학생으로, 정착촌에 설치된 '튀르키예 과학·기술 워크숍 센터'에서 과학 멘토링 봉사를 하고 있다.

데니즈도 지난해 2월 6일 튀르키예 동남부 11개주에서 발생한 강진으로 삶의 터전을 잃었다. 한동안 트라우마와 무력감에 시달렸다고 했다. 이를 극복하려 정착촌을 찾아갔다. 아이들에게 과학 교육을 해야한다는 사명감때문이었다. 그는 "언젠가 튀르키예가 정보기술(IT) 강국인 한국처럼 되는 게 목표다"라고 말했다.

재건에 시동 건 튀르키예

1년 전 먼지와 비명이 내려앉은 땅에 생기가 다시 움트기 시작했다. 지난해 진도 7.7의 대지진을 겪은 튀르키예 얘기다. 역대 최악의 지진 피해를 겪은 튀르키예가 재건 속도를 끌어올리며 새로운 튀르키예를 건설하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이날 튀르키예 동남부 지역 말라티야주의 주도인 말라티야시 도심은 저녁 9시를 넘긴 늦은 시간에도 활기가 넘쳤다. 도시 한 가운데에 있는 말라티야공원 쇼핑센터는 마감 한 시간 전에도 방문객들로 북적였다. 1년 전 대지진을 피해가 컸던 지역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튀르키예 말라티아주 말라이야시 도심에 있는 음식점 전경. 지진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철거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오현우 기자.
튀르키예 말라티아주 말라이야시 도심에 있는 음식점 전경. 지진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철거되지 않은 채 방치되고 있다. 오현우 기자.
지난해 2월 6일 튀르키예 동남부 지역 11개 주에선 진도 7.7의 지진이 발생했다. 5만 3537명이 사망했고, 10만 7200여명이 다쳤다. 터전을 잃은 이재민 수는 330만명에 육박했다. 무너진 건물 수는 79만채에 달했다.

말라티아 주에서도 이재민이 11만 7232명이 발생했다. 말라티아 도심에선 지진의 상흔이 남아 있었다. 상가 건물은 벽체로 뜯겨 나갔고, 유리창이 온전한 건물을 찾기 어려웠다.

전날 말라티아주(州) 예실리우르트에 조성된 컨테이너 거주촌에서 만난 센기즈(45)씨는 “가족 6명이서 컨테이너 집에 살고 있지만, 고통이 곧 멈출 것이라고 믿는다”며 “‘형제의 나라’ 한국을 비롯해 국제 사회가 구호활동을 해준 덕에 겨울을 무사히 넘겼다”이라고 말했다. 센기즈씨는 지난해 지진으로 인해 일자리를 잃었다. 회사 건물이 붕괴해서다.

센기즈는 튀르키예 재난관리청(AFAD)에서 단기 청소 근로자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센기즈는 “봄이 오면 더 크고 따뜻한 집으로 이사할 수 있게 된다”며 “곧 상업 지구도 재건을 끝내면 일자리를 다시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빠른 재건에 활기 살아난 튀르키예

말라티아 주민들이 활기를 되찾은 이유는 재건 활동의 영향이 크다. 지진 발생 직후 텐트에 머물던 말라티아 이재민 11만여명은 3만 2295채 규모의 컨테이너 정착촌으로 이주했다. 말라티아 주 정부는 이들을 위해 주거용 건물 2만 3000여채를 마련했다.
튀르키예 남동부 지역에 있는 말라티야시 임시 컨테이너 정착촌 풍경. 이 곳에선 지진 이재민 4000여명이 모여 살고 있다. 오현우 기자
튀르키예 남동부 지역에 있는 말라티야시 임시 컨테이너 정착촌 풍경. 이 곳에선 지진 이재민 4000여명이 모여 살고 있다. 오현우 기자
신규 주택 단지 약 30만채가 튀르키예 전역에서 건설 중이다. 튀르키예 정부는 오는 6~8일 추첨을 통해 주택 소유권을 이재민들에게 무상으로 이전할 방침이다. 이르면 오는 3월부터 순차적으로 입주한다.

지진 피해가 수습되면서 경제도 반등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2월 세계은행(WB)은 튀르키예의 대지진 피해액이 약 342억 달러를 넘길 것이라고 추산했다. 2021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4%였다. 2차 피해액을 합산하면 총피해 규모는 GDP의 10%에 달할 것으로 추산됐다.

공급망 시장조사기관 레실링크도 튀르키예 대지진이 발생한 뒤 제조업 정상화까지 약 8개월이 소요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예상보다 빠르게 피해가 수습됐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지진 발생 후 3개월 만인 작년 5월 제지 산업을 제외한 모든 산업 분야의 성장률이 지진 이전으로 회복했다. 지난해 튀르키예 실질 GDP 증가율도 4%로 추정된다.

여전히 미진한 내진 설계

일각에서는 이재민들이 입주하게 될 신규 주택에 결함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진 설계를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공사를 강행했다는 우려가 잦아들지 않고 있다.
지진 1년째 맞은 튀르키예…"형제의 나라 덕분에 겨울 무사히 넘겼어요" [튀르키예 지진 1년]
이날 아디야만주의 신규 주거단지 건설 현장에선 내진 설계에 필요한 철근이 눈에 띄지 않았다. 콘크리트 블럭과 경량 철골만 산적해있었다. 메흐멧 트를르 아디야만 부주지사는 내진 설계 여부를 묻는 질문에 “경량 철골(Light steel)을 활용해서 지진에 끄떡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신규 건설 현장 사진을 검토한 안형준 건국대 건축과 교수는 “이렇게 철근이 충분하지 않으면 내진 설계 효과는 미미할 수 밖에 없다”며 “경량 철골 구조로 대체해도 내진 설계를 보강해야 강진에 버틸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규 주택의 건축 방식인 조적조 구조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콘크리트 블록을 쌓아 올려 벽을 만드는 ‘조적조’ 방식은 지진같은 횡력에 취약하다. 말라티아와 아디야만시에 짓고 있는 주택은 모두 조적조 구조가 적용됐다.

튀르키예 정부가 다음 달 31일 치러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끌기 위해 졸속 행정을 벌였다는 비판이다. 여당인 정의개발당(AKP)은 2019년 치러진 지방선거 당시 동남부 지역에서 참패당했다. 정치적으로 상징성이 큰 이스탄불, 앙카라, 이즈미르, 아다나 등 4대 도시에서도 야권에 시장 자리를 내줬다.

동남부 지역의 민심을 끌어당기기 위해 날림 공사를 강행했다는 분석이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튀르키예 동남부에 짓고 있는 신규 주택 20여만채는 지난해 11월 착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2월까지 약 4개월 동안 20만채를 완공했다는 설명이다. 튀르키예 주택개발부(TOKI)에 따르면 튀르키예의 연평균 주택 시공 능력은 6만~7만건에 그친다.

말라티아·아디야만(튀르키예)=오현우 기자